
키 잡은 시공사업단…협상에서 유리한 위치 선점하려는 전략?
중재안에는 증액된 공사비 3조2000억원에 대해 한국부동산원에 재검증을 진행하고, 그 결과에 따라 계약을 변경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시공사업단 측이 조합의 마감재 고급화 요구를 받아들이되 분양지연에 따른 금융비용 손실, 적정 공사기간 연장, 공사중단·재개에 따른 손실 등은 조합이 수용하라고 제안했다.
중재안을 보면 증액된 공사비와 함께 금융비용, 공사중단·재개에 따른 손실 등 각종 손해를 보전받을 수 있어 시공사업단 입장에서 불리한 부분은 없다. 다만 공사비 3조2000억원 인정은 기정사실화된 상황에서 자잿값 인상에 따른 추가 공사비, 공사 지연에 대한 책임소재, 금융비용 등 손실액 보전, 분양가 등을 더 확실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사업대행자(LH 또는 SH)가 들어오면 공사비를 얼마나 보장해줄 것인지, 공사 재개하면서 발생하는 비용을 얼마나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인지 시공사업단 측에서 재고 있을 것"이라며 "조합이 중재안을 모두 수용하겠다며 백기투항한 상태인데, 시공사업단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확보하고 나서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 시공사업단은 "조합 귀책에 따라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시공사업단은 기존 공사 변경계약에 명시된 공사비만 받았으면 될 일이었으나 현재 상황에서는 공사재개를 위한 모든 제반 사항이 계약에 반영돼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 사태의 책임이 조합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조합에 책임소재가 있음을 분명히 하려는 건 책임준공 의무와 관련이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시공사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서 시공사의 신용도를 바탕으로 보증을 받아 조합이 사업비를 대출받을 수 있도록 해준다. 대신 시공사는 책임준공 의무를 진다. 정해진 기간 안에 준공을 마쳐야 한다는 의무인데, 이를 어기면 시공사가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다만 공사 지연의 책임이 시공사가 아닌 다른 이유가 있을 경우 시공사는 손해배상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때문에 조합에 책임이 있음을 짚고 넘어가려 한다는 설명이다.
김예림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시공사의 잘못이 아닌 다른 이유로 공사 기간을 못 맞추는 경우에는 책임을 물지 않는다는 판례가 있다"며 "법정 다툼으로 이어질 경우 앞서 조합이 제기한 '계약무효 소송' 결과가 책임 소재를 가리는 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