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고통으로 버린 돈 연 '40조'…모빌리티가 주차장에 사활 건 이유

머니투데이 최우영 기자, 윤지혜 기자 2022.06.0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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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新모빌리티 대전, 택시에서 주차로(下)

편집자주 모빌리티 플랫폼 경쟁이 택시·대리를 넘어 주차장으로 확전한다. 자율주행 시대에 대비한 '모빌리티 허브'를 선점하기 위해서다. AI(인공지능) 주차장 기술경쟁도 치열하다. 모빌리티 업계가 미래 주차장에 주목하는 이유와 그 잠재력, 경쟁 구도를 짚어본다.

주차장 찾아 삼만리…그 고통 돈으로 따져보니…
-승용차 늘어나는데 여전히 영세한 주차장산업

주차고통으로 버린 돈 연 '40조'…모빌리티가 주차장에 사활 건 이유


승용차는 점점 늘어나는데 주차 공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길바닥에서 주차장을 찾아 헤매느라 받는 스트레스와 시간낭비, 교통혼잡의 폐해를 따지는 '주차고통비용'이란 용어까지 등장했다.



자율주행차 시대를 맞이하면서 주차장 수요는 더 늘고 있다. 차량이 대기하면서 충전과 세차, 경정비를 할 공간이 필요해서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주차장은 관리인이 수기로 운영하는 영세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모빌리티 사업자들이 어둡고 습한 주차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2500만대 돌파한 등록차량…수도권에선 '테트리스' 주차



1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전국 차량 등록대수는 2507만180대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국민 2명 당 1대 꼴로 보유한 셈이다. 2015년 등록대수 2098만9885대에 비해 7년 새 19% 가량 늘었다. 2015년 1656만1665대이던 승용차가 올해 1분기 2055만291대까지 늘어나며 이 같은 증가세를 이끌었다.

하지만 주차장은 이에 비례해 늘어나지 않았다.특히 전국 차량의 44%(1111만8288대)가 등록된 수도권의 주차난은 심각한 수준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주택가의 등록차량당 주차장 면수 확보율은 79.5%에 불과하다. 10대 중 2대는 불법주차를 한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주요 도심지에선 차량을 넣고 빼기를 반복하는 '테트리스 주차'가 횡행하고 있다.

주차의 어려움으로 주차장을 찾아 배회하는 차량들이 빚는 도로 혼잡, 그에 따른 불법 주정차의 성행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주차 고통비용'(Parking Pain)이라고 불린다. 한국공학한림원은 이 같은 주차고통비용이 연간 38조~41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현금만 받아요" 낡은 동네 주차장이 대다수

징검다리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5월 4일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 국내선 주차장이 여행객들의 차량으로 가득 차 있다. /사진=뉴스1징검다리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5월 4일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 국내선 주차장이 여행객들의 차량으로 가득 차 있다. /사진=뉴스1
이 같은 주차 고통은 근본적으로 수요와 공급차에 따른 것이다. 주차 수요가 높은 도심은 주차장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할뿐더러 땅값 역시 비싸다. 차량의 이동으로 인한 변동성은 도시 내에 차량 1대당 주차장 1면 이상이 필요하게 만든다. 차량이 몰리는 '피크타임'에 주차장 규모를 맞추게 되면 비효율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주차문제 해결을 위해 주차장 이용 효율을 높이는 방안이 필수적이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주차장의 실시간 이용 상황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주차 수요 예측과 분산에 활용함으로써 원활한 주차장 연계가 가능토록 하는 게 방법이다.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 주차장은 영세 개인사업자가 운영하는 게 현실이다. 업계에 따르면 빅데이터 활용에 능한 기업형 주차장은 전체 주차 시장의 20~30%에 불과하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기업형 주차장의 침투 속도가 빨라지고 있지만 여전히 카드결제조차 안되는 영세 주차장이 대다수"라며 "이는 역설적으로, 그만큼 주차 효율을 높일 영역이 많이 남아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자율주행차 시대 '충전·세차·경정비' 허브 될 주차장

2020년 8월 25일 오전 경기 부천시 중동 계남고가교 주차장에서 부천형 주차로봇 '나르카'시연회가 열리고 있다. 나르카는 원도심 주차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자율주행 로봇으로 QR코드를 이용한 위치인식 방식으로 주차를 한다. /사진=뉴스12020년 8월 25일 오전 경기 부천시 중동 계남고가교 주차장에서 부천형 주차로봇 '나르카'시연회가 열리고 있다. 나르카는 원도심 주차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자율주행 로봇으로 QR코드를 이용한 위치인식 방식으로 주차를 한다. /사진=뉴스1
앞으로 공유 차량을 넘어 자율주행차 시대를 맞이하면서 주차장의 중요성은 더 커질 전망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의 자율주행차 수용성 설문조사에서 일반인 응답자들은 '자동주차시스템' 기능에 가장 많은 평균가격 지불 의사를 밝혔다. 이는 탑승자를 내려준 뒤 차량이 스스로 주차장을 찾는, '자율 발레주차'다.

주차장은 자차 운전자를 위한 세차·경정비 외에 전기차 충전 등 각종 모빌리티 서비스의 거점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이때문에 모빌리티 사업자들이 대기업과 스타트업을 가리지 않고 주차장 확보에 몰려드는 것이다.

모빌리티 전문가 차두원 박사는 "기존에 차량이나 서비스 중심이었던 모빌리티산업의 중심이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주차장이 관심을 받고 있다"며 "그동안 선보인 기술개발과 디바이스 서비스들이 주차장이라는 공간에서 보다 원활하게 유기적으로 통합되는 '공간 혁명'인 셈"이라고 바라봤다.

앱 여니 차가 스르륵…미래엔 주차장이 '발레파킹' 해준다
-황기연 홍익대 도시공학과 교수 인터뷰

다임러와 보쉬가 선보인 자율 발레주차 기술. /사지=메르세데스 벤츠 홈페이지 캡처다임러와 보쉬가 선보인 자율 발레주차 기술. /사지=메르세데스 벤츠 홈페이지 캡처
#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모바일 앱으로 빈 주차공간을 확인한 후 '주차' 버튼을 누르자 차가 자동으로 움직여 해당 공간에 주차한다. 눈여겨볼 점은 자율주행 주체가 차량이 아닌 주차장이라는 것이다. 일정 간격으로 설치된 라이더 센서 기둥과 180개 스테레오 카메라가 차량 주변을 초당 25회 스캔해 물체를 감지, 거리를 측정한 후 차를 원격제어한다.

다임러와 보쉬가 2017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 주차장에서 선보인 '자율 발레주차 시스템'(AVPS)이다. 자율 발레주차란 차량이나 주차장 센서로 정보를 수집한 후 운행궤적과 이동경로를 분석해 차량이 스스로 주차하는 시스템이다. 운전자는 더이상 주차공간을 찾기 위해 어두운 주차장을 헤매거나 비좁은 주차면에 차를 대느라 식은땀을 흘리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황기연 한국공학한림원 자율주행위원회 위원(홍익대 도시공학과 교수)은 최근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주차장은 일반 도로보다 덜 혼잡하고 장애물도 적은 데다, 주행속도도 낮아 자율주행차 기술을 실험하기에 안성맞춤"이라며 "우리나라가 자율주행차 글로벌 1등을 하려면 자율 발레주차 R&D(연구·개발)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학한림원이 주목하는 건 주차장 인프라 기반의 자율 발레주차다. 단순 무인 입차-결제-출차가 이뤄지는 스마트주차장을 넘어 차량까지 주차하는 혁신주차장을 예고한 것이다. 이 경우 차량의 자율주행 단계가 높지 않아도 자율 발레주차가 가능하다는 게 장점이다. 주차장이 자율주행차 기술 한계를 보완하는 동시에 실험장으로 떠오른 셈이다.

황기연 홍익대 도시공학과 교수를 최근 홍익대 연구실에서 만나 인터뷰했다./사진=윤지혜 기자황기연 홍익대 도시공학과 교수를 최근 홍익대 연구실에서 만나 인터뷰했다./사진=윤지혜 기자
황 교수는 "자율주행차는 스스로 주차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주차장이나 회전교차로처럼 신호등이 없고 여러 차량이 엉키는 공간엔 진입을 못한다"라며 "군산에서 자율주행 셔틀에 탑승했을 때 바람에 날리는 낙엽도 장애물로 인식해 브레이크를 밟았다. 노선이나 경로가 제한된 공간에서만 자율주행이 가능한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자율주행 선도기업인 구글 웨이모의 누적 자율주행 거리가 3200만km에 불과하고, 벤츠·BMW 자율주행차 시속이 60㎞/h에 불과한 점을 고려하면 상용화는 더 먼 미래처럼 느껴진다. 이에 황 교수는 "현재까지의 누적 주행거리나 시험환경 등을 고려하면 차량 기술만으론 자율주행이 어려워 비행기 이착륙시 관제하듯 외부에서 제어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율 발레주차는 주차 운영사의 수익성도 높일 수 있다. 입차·출차 시간이 줄어 회전율이 빨라지는 데다, 사람이 드나들지 않아도 돼 좁은 공간에 더 많은 차량을 주차할 수 있어서다. 유휴 공간은 전기충전소나 물류거점으로 활용하는 등 새로운 수익모델(BM)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다만 자율주행차가 확산해도 주차난은 이어질 전망이다. 황 교수는 "자율주행차 시대가 와도 차량 소유문화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차를 탄다는 것은 사회적 공간을 누가 먼저 차지할 것인가에 대한 경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공유차량을 기다리는 시간 등 기회비용을 생각하면 소득이 늘수록 차를 더 살 수밖에 없다"라며 "교통혼잡을 없애기보단 잘 적응하는 방법을 제시하는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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