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축 후 버려지는 '피 같은' 혈액자원...프리미엄 사료로 재탄생

머니투데이 양곡리(세종)=류준영 기자 2022.06.07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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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친환경 업사이클링 기업 아미노랩의 세종시 신축공장 가보니
국내 첫 혈액자원화 설비 국산화…효소 분해로 아미노산 용액 제조

아미노랩 신축공장 전경/사진=아미노랩아미노랩 신축공장 전경/사진=아미노랩


"여기 공장 설비들은 밀폐형·무방류로 지어져 친환경적인데다 특히 모듈형으로 조립·이동이 쉬워 해외수출도 가능합니다."

지난달 26일 세종특별시 전의면 양곡리 미래산업단지에 위치한 아미노랩 신축공장. 도축혈액을 활용해 사료첨가제, 비료, 바이오 활성소재 등을 만드는 곳이다. 돼지·소에서 얻은 혈액을 자원화하고 활용하는 시설을 갖춘 곳은 국내에서 이 공장이 유일하다. 공장부지는 5,126m2(1,550평) 규모로 연간 900톤(t)의 사료첨가제, 420톤의 비료생산이 가능하다.



악취·분진·폐수 없는 청정설비…수출 가능한 '모듈형 공장'
아미노랩 신축공장 내부 모습/사진=아미노랩아미노랩 신축공장 내부 모습/사진=아미노랩
박해성 아미노랩 대표가 문을 열자 성인키에 3~4배 가량 돼 보이는 30톤급 메인저장탱크가 눈에 들어왔다. 도축장에서 당일 채혈해 탱크로리로 운반해온 생혈액을 임시 보관한다. 박 대표는 "얼마 전 공장 가동 승인을 받아 약 23톤의 돼지혈을 들여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미노랩은 공장에서 1시간 남짓 거리에 있는 충남 홍성 도축장에서 도축혈액을 수급한다. 전국 5위권 도축장으로 하루에 2500여마리 돼지를 잡는데 이 과정에서 5톤 정도의 도축혈액이 버려진다고 한다. 이중 일부는 선지용으로 판매되고 나머지는 정화 처리돼 방류돼 왔다.

아미노랩 공장 내부/사진=아미노랩 아미노랩 공장 내부/사진=아미노랩
생혈저장소엔 혈액 응고를 막기 위한 액화시스템이 설치·운영중이다. 박 대표는 "생혈액을 효소로 분해하기 위해 먼저 물리적으로 응고를 풀어준다. 이곳에서 그 과정을 거친다"고 했다. 이후 혈액은 분무건조실에서 살균을 거쳐 대형 분무건조기에서 스프레이 방식으로 분말화된다. 폐혈의 구성 성분을 보면 80%는 수분, 20%는 단백질이다. 직경 10cm 정도의 배관에 강한 압력을 통해 혈액가수분해물인 아미노산 용액을 분사하고 200℃ 열풍을 가하면 수분이 전부 증발하면서 혈액(단백질)이 가루 형태로 남게 된다. 이 가루가 프리미엄 사료첨가제나 비료 등의 용도로 쓰인다. 전공정은 자동화돼 있어 통제실 외엔 작업하는 인력을 볼 수 없었고 공정 단계에서 악취와 분진, 폐수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공장 전체는 이물질 혼입을 막은 밀폐형 제조설비로 이뤄졌다. 특히 엑스레이 검사기, 건조기, 파이프라인, 벨브 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끼워 맞추듯 제작돼 눈길을 끌었다. 마치 어릴 적 문방구에서 만났던 프라모델처럼 조립이 쉽도록 제작돼 공장을 통으로 수출하기가 용이하다는 설명이다. 박 대표는 "이 공장은 생산뿐 아니라 일종의 모델하우스 역할도 한다"며 "중국 바이어가 이곳을 보고 간 뒤 현지 공장 건설을 추진하는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귀뜸했다. 북미, 유럽 등 환경을 중시하는 국가들을 중심으로 해외진출도 적극 모색하겠다는 목표다.

아미노랩 공장 내부/사진=아미노랩아미노랩 공장 내부/사진=아미노랩
도축혈 1톤 정화처리에 43만원…전세계 재활용 수준 10%
도축혈액은 우수한 단백질 자원임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적으로 약 10%만 재활용되는 실정이다. 보통은 생물학적·화학적 처리를 통해 하천에 방류가 되는데 1톤의 폐혈을 정화하는데 약 43만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불법 폐기하는 경우가 많고, 심각한 수질오염으로 이어진다. 박 대표는 "단지 비용의 문제를 떠나 정화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담수가 필요하다. 환경오염 이상의 심각한 문제들을 야기한다"고 했다.

아미노랩 사료첨가제/사진=아미노랩 아미노랩 사료첨가제/사진=아미노랩
아미노랩의 주력 생산품인 아미노산 사료첨가제는 광어양식장, 양계장, 양돈장 필드테스트 결과, 면역력 강화 효과로 폐사율을 현저히 감소시키고, 증체율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 대표는 "제주대학교 광어양식장에서 배에 물이 차는 에드워드병균을 주입하고 대조군과 실험군을 비교했더니, 무처리군에선 95%가 폐사했고 저희 사료첨가제를 섭취한 광어는 50%가 살아남았다"며 "양식어민들의 생산성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특히, 이유자돈(젖을 뗀 새끼돼지)의 면역력 향상을 위해 급이하고 있는 혈장단백질 사료첨가제는 현재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데 이를 대체함으로써 연간 150억원 이상의 수입대체 효과도 기대된다"고 부연했다.

도축 후 버려지는 '피 같은' 혈액자원...프리미엄 사료로 재탄생
아미노랩이 복수의 해외시장 조사기관 자료를 인용한 내용을 보면 전세계 사료첨가제 시장규모는 2020년 44조6000억원에서 2025년 59조8000억원으로 연평균 6.1% 성장할 전망이다. 아미노랩은 이달부터 국내 최대 장어양식 단지인 그린피시팜 당진 양식장에서 아미노산 사료첨가제 필드테스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곳은 5000평 규모에 224개의 양식수조를 갖췄다. 1개 수조당 1만2000미를 양식할 수 있어 연간 총 270만미 생산이 가능하다.

박 대표는 "장어는 고급어종으로 생장환경도 까다로워 급이도 매우 엄격하게 진행된다"며 "아미노산 사료첨가제를 40만 마리의 장어에 직접 급이하면서 장어의 면역강화, 증체율 증가효과를 면밀하게 모니터링해 향후 장어양식 사료첨가제 적용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도축혈액에서 뽑아낸 바이오 활성소재를 활용해 머릿결이 부드러워지는 샴푸, 세정력이 좋은 비누 등 소비재 상품도 만들어 오픈마켓에 판매중이다.

KDI연구원·증권사 애널에서 업사이클 창업으로 진로 급선회
박 대표는 연세대학교에서 경제학, 법학 전공을 전공했다. 미국 보스턴 대학 법대로 유학했으나 집안 사정으로 중퇴했다. 이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원, LIG투자증권 리서치 애널리스트로 활동했다. 올해 나이 마흔여덟, 잘나가던 애널리스트를 자리를 박차고 나와 창업 전선에 뛰어든 데는 부친의 영향이 컸다.

그는 "아버님이 식품 대기업 연구소장으로 일하시면서 자체 개발한 효소 배합법을 통해 안정적이고 친화적인 혈액자원화 기술을 확보하셨다. 은퇴한 아버지의 일을 도와드리면서 산업·시장분석을 해보니 이 기술을 활용한 건강기능성식품 쪽에 성장 가능성이 점차 커질 것으로 보여 아버지 회사에 합류하게 됐다"고 말했다.

" 폐기물 이미지 벗어야 업사이클 스타트업 활로 열릴 것"
박해성 아미노랩 대표/사진=아미노랩박해성 아미노랩 대표/사진=아미노랩
아미노랩이 세종시로부터 폐기물종합재활용업(E38) 허가를 받기까지의 과정은 험난했다. 아직 업사이클 스타트업은 옛 폐기물 처리업체와 같이 지저분하고 낙후된 이미지가 강해 시설이 첨단화됐다 할지라도 해당 지역자치단체는 민원인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처지라고 한다.

아미노랩은 청정 자원화 설비 개발로 대한민국신기술(NET)인증과 녹색기술·저탄소 환경인증 등을 획득하며 이런 어려움을 뚫었다.

박 대표는 "저희가 패혈액에 '폐'자를 안 쓴다. 폐자가 붙는 순간 '뭐, 폐기물 처리시설이 생긴다고, 절대 안 돼'라는 반응이 나와서다. 주변에 보면 축산물협회도 축산혈액이라고 표현한다"며 "폐기물 처리시설이란 옛 이미지를 벗고 사회적으로 막연한 불안감과 불신이 사라져야 국내 업사이클 스타트업들의 활로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아미노랩은 현장 방문 이후 2일 캐나다 대사관에서 캐나다 알버타주 투자청((Invest Alberta Corporation; IAC)과 캐나다 진출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투자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알려왔다. IAC는 축산업이 주요산업 중 하나인 캐나다 알버타 주에 아미노랩의 동물혈액 자원화 기술과 시설을 도입할 수 있도록 협조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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