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 덕에 돈 벌었으면 세금 더"…伊·英 '횡재세' 카드 꺼냈다

머니투데이 세종=민동훈 기자, 세종=조규희 기자 2022.05.3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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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억눌린 전기요금의 역습(下)

편집자주 지난 정부 시절 물가안정을 이유로 억누른 전기요금이 한국전력공사의 대규모 적자라는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시장의 원리를 거스른 대가는 혹독하다. 한전은 보유 부동산 자산, 자회사 지분 등 팔수 있는 건 모두 팔아 위기를 넘겠다는 각오다. 하지만 왜곡된 전기요금 체계, 전력산업 시장 구조를 개선하지 않고선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6개 발전사 전부 합치자"...오죽하면 노조가 통합 주장할까
(서울=뉴스1) = 정승일 한국전력 대표이사 사장이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한국전력 아트센터에서 열린 '전력그룹사 비상대책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회의는 글로벌 연료가격 급등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으로 촉발된 엄중한 경영위기 상황을 공유하고, 이에 대한 공동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개최됐다. (한국전력 제공) 2022.5.18/뉴스1  (서울=뉴스1) = 정승일 한국전력 대표이사 사장이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한국전력 아트센터에서 열린 '전력그룹사 비상대책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회의는 글로벌 연료가격 급등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으로 촉발된 엄중한 경영위기 상황을 공유하고, 이에 대한 공동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개최됐다. (한국전력 제공) 2022.5.18/뉴스1


올 1분기 한국전력 (19,690원 ▲310 +1.60%)공사가 7조8000억원이라는 역대 최대 규모의 적자를 기록한 것은 우리나라 전력시장의 기형적인 독점 구조와도 무관치 않다. 전력업계에선 '전력구매계약(PPA)' 범위 확대 등을 통한 전력판매 시장의 점진적 개방과 함께 발전자회사 통합 등 구체적인 산업재편까지 거론하고 있다.

29일 전력업계에 따르면 국내 전력시장에서 한전 6개 발전자회사의 점유율은 80%를 넘고 송·배전 부문은 한전이 100% 독점한다. 판매 부문도 한전을 제외한 10개 구역전기사업자 비중이 1%에도 미치지 못한다. 현재 국내 전력시장을 한전그룹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기형적 구조 때문에 '한전의, 한전에 의한, 한전을 위한 전력산업'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그렇다고 한전이 수혜를 보는 것도 아니다. 정부 입장에선 한전을 틀어쥐고 전기요금을 정책수단으로 활용하게 됐고, 이로 인해 전력시장에선 '수요와 공급에 의한 가격결정'이란 시장의 기본원리가 작동하지 않게 됐다. 한전의 천문학적 적자의 배경이다.

"고유가 덕에 돈 벌었으면 세금 더"…伊·英 '횡재세' 카드 꺼냈다


최근 한전의 실적 악화의 경우 국제유가 급등과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RPS)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는데, 문제는 전력산업 독점과 정부의 규제로 한전이 모든 부담을 떠안는 구조라는 점이다. 최근 국제유가 급등으로 발전비용이 높아진 까닭에 전력구매가격(SMP)가 치솟자 한전은 대규모 적자를 본 반면 민간 발전사들은 역대급 실적잔치를 벌이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GS EPS의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영업이익은 2555억원으로, 지난 1년간 벌어들인 2123억원을 초과했다. 영업이익률은 44.2%에 달했다. 파주에너지는 지난해 933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으나 올해 1분기만에만 2310억원을 돌파했다. 이외에도 SK E&S(1051억원), 포스코에너지(1066억원) 등 대다수의 민간 발전사들이 실적 호조를 보이고 있다. 정부가 부랴부랴 한전이 발전사에 지불하는 전력도매가격(SMP)에 상한선을 두기로 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러한 이유로 2004년 이후 중단된 전력산업재편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력산업재편은 공공재 성격을 가진 '송·배전' 부문을 분리하고 판매 부문에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것이 핵심이다. 윤석열정부도 인수위원회 시절 PPA 허용범위 확대 등을 통해 판매 시장을 점진적으로 개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PPA는 산업계의 RE100(재생에너지 전력 100% 사용) 과제 이행을 위해 필요한 제도다. 지금처럼 모든 전력을 한전이 독점 공급하는 상황에선 기업이 사용한 전력이 신재생에너지인지 화석연료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PPA의 활성화는 사실상 전력 판매 부문에서 한전의 독점을 깨는 제도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판매시장에 경쟁체제를 도입함으로써 전력시장의 혁신과 효율화를 유도하고, 궁극적으로 전기요금의 안정화도 꾀할 수 있다고 본다.


발전부문의 구조조정도 전력산업 개편의 핵심 과제 가운데 하나다. 최근 발전사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전의 발전자회사들을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5개 화력발전사의 비즈니스 모델이 똑같은 만큼 중복투자 우려가 크다는 논리에서다. 발전노조는 통합이 이뤄질 경우 △본사 관리인력 축소 △유사·중복업무 통폐합 △발전원료 통합 구매 등 구조조정이 가능해진다고 주장한다.

노조는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불가피한 일자리 축소도 통합을 통해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지금은 발전자회사들이 별도 법인인 까닭에 인력재배치 등을 위한 교류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발전자회사들을 통합할 경우 폐쇄되는 석탄화력발전소 인력을 다른 발전 자회사 소속이었던 LNG(액화천연가스) 전환발전소 등으로 이동배치함으로써 일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얘기다.

"기름값 뛰어 대박났지? 세금 더 내"...횡재세 물리는 나라, 어디?

(바르샤바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27일 (현지시간) 러시아로 부터 가스 공급이 중단된 폴란드 바르샤바의 가스관 모습이 보인다.   (C) AFP=뉴스1  (바르샤바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27일 (현지시간) 러시아로 부터 가스 공급이 중단된 폴란드 바르샤바의 가스관 모습이 보인다. (C) AFP=뉴스1
유가 등 연료비 급등으로 전력시장이 흔들리는 건 비단 우리나라 뿐이 아니다. 세계 각국 정부는 세금 감면, 취약계층 지원, 도매 시장 규제 등을 통해 전력 소비자 보호에 나서고 있다. 유가 폭등으로 이익이 급증한 에너지 기업들에 '횡재세'(초과이윤세)를 물리는 방안을 검토하는 나라들도 있다.

29일 전력업계에 따르면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등 각국 정부는 전력 소비자들의 부담을 덜기 위해 △전력회사 직접 지원 △세금·부과금 감면 △도매시장 규제 △소비자 직접 지원책을 논의 중이거나 시행하고 있다.

프랑스는 프랑스전력공사(EDF)의 재무건전성 제고를 위해 21억유로(약 2조8300억원)를 유상증자 참여 방식으로 지원할 예정이다. EDF는 3조4000억원 규모의 신주를 발행할 예정인데, 정부가 2조8300억원 어치를 인수한다는 계획이다. 노르웨이는 전력비용을 직접 지원하는 방식을 택했다. 정부는 전력시장 가격이 kWh(키로와트시)당 0.7크로네를 초과하는 경우 초과 비용의 80%을 정부 예산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자금 투입 규모는 1조1400억원 정도다.

포르투갈은 천연가스 가격 급등에 대응하기 위해 전력 현물시장의 가격을 MWh(메가와트시) 당 180유로(244.4원/kWh)로 제한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앞서 우리 정부도 도매가격을 제한하는 '전력시장 긴급정산상한가격' 제도 도입을 행정예고한 바 있다.

"고유가 덕에 돈 벌었으면 세금 더"…伊·英 '횡재세' 카드 꺼냈다
세금 감면과 취약계층 지원은 각국 정부의 공통된 대책으로 활용된다. 오스트리아, 벨기에, 크로아티아, 체코, 프랑스 등 유럽 주요 21개 국가에서 해당 정책이 시행 중이다. 스웨덴은 전력소비량이 월 2000kWh 이상인 가구(180만 가구)를 대상으로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3개월 동안 한시적으로 월 2000크로나(약 26만원)씩 최대 6000크로나를 지원했다. 전체 지원 규모는 60억 크로나(약 7905억원) 수준이다. 영국의 경우 올해 2월 주택용 전기 이용자에게 연간 350만파운드(약 55억원)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이탈리아는 취약계층 지원과 에너지 다소비 기업 세금 공제에 80억유로(약 10조6000억원) 규모의 추가 예산을 편성했으며 프랑스는 소매요금 인상 제한을 위해 전기요금 내 에너지 소비세를 95% 인하했다.

에너지 기업들의 초과이익을 환수하는 나라도 있다. 스페인은 지난해 8월 온실가스 배출권 가격 상승에 따른 도매가격 인상으로 인해 추가 이익을 누리고 있던 일부 무탄소 발전원(수력·원자력)에 대해 해당 이익을 환수하는 법령을 발효했다. 환수 기간은 지난해 9월 15일부터 올해 3월 말까지로 환수 규모는 26억유로(약 3조5000억원)이다.

이탈리아도 에너지 비용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계와 기업에 대한 지원을 목적으로 신재생 발전 사업자의 초과이익을 환수하고 과도한 이익을 거둔 에너지 기업에 대해 25%의 횡재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영국과 헝가리도 횡재세 부과 계획을 세운 상태다. 영국의 경우 정치권을 중심으로 석유·가스 생산업체에 대한 법인세 10% 인상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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