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브로커' 관객몰이 나선다…3조 증발 韓영화 제 궤도 찾나

머니투데이 유승목 기자 2022.05.31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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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두기 해제로 조금씩 활기 찾는 영화시장, '헤어질 결심'·'브로커' 개봉으로 회복세 탄력

영화 '헤어질 결심'의 박찬욱 감독이 28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린 제75회 칸국제영화제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받고 소감을 말하고 있다. 박 감독은 '취화선'(2002)의 임권택 감독에 이어 두 번째로 이 상을 받은 한국 감독이 됐다. /사진=뉴시스, AP영화 '헤어질 결심'의 박찬욱 감독이 28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린 제75회 칸국제영화제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받고 소감을 말하고 있다. 박 감독은 '취화선'(2002)의 임권택 감독에 이어 두 번째로 이 상을 받은 한국 감독이 됐다. /사진=뉴시스, AP


"극장 손님이 끊어지는 시대를 겪었지만, 그만큼 영화관이란 곳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이 질병을 이겨낼 희망과 힘을 가진 것처럼, 영화인들도 영화관과 영화를 영원히 지켜내리라 믿습니다."

지난 28일(현지시간) 열린 '제75회 칸 국제영화제'는 한국 영화인을 두 명이나 시상대로 올렸다. 전 세계에서 내로라 하는 영화인이 모이는 자리에서 박찬욱 감독과 송강호 배우가 각각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할리우드나 영화 종주국 프랑스 정도를 제외하면 한 나라에서 영화 두 편이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수상까지 하는 경우는 드물다. 2019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두각을 드러낸 한국영화가 명실상부하게 세계 영화시장의 주류로 자리매김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단상에 오른 박찬욱 감독의 소감은 칸을 점령한 쾌거를 올린 것 치곤 다소 무거웠다. 그는 수상 후 기자회견에서도 "영화관이 곧 영화"라며 "극장용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배우 송강호(가운데)가 28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린 제75회 칸국제영화제 시상식에서 영화 '브로커'로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호명된 후 고레에다 히로카즈(왼쪽) 감독과 강동원의 축하를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다. /사진=뉴시스, AP배우 송강호(가운데)가 28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린 제75회 칸국제영화제 시상식에서 영화 '브로커'로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호명된 후 고레에다 히로카즈(왼쪽) 감독과 강동원의 축하를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다. /사진=뉴시스, AP
이날 한국 영화의 역동성을 묻는 외신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송강호의 답에서 박 감독의 내뱉은 소감의 의미를 읽을 수 있다. 일본 영화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연출을 맡은 '브로커'로 남우주연상에 오른 송강호는 칸 영화제 한국 2관왕의 배경으로 "한국 관객들이 끊임없이 격려하고, 때로는 질타하는 모습들이 있어 의미있는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한국 영화의 '성장 견인차'가 팝콘을 들고 극장에 들르는 관람객이란 얘기다. 박 감독의 문제의식도 이 지점에 있다. 코로나19로 2년 넘게 한국영화를 양적·질적 성장을 이끈 관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영화 투·제작과 배급, 상영까지 영화산업 전반이 '올 스톱'했단 점에서 '영화 한류' 바람이 멈출 수 있다는 우려다.



한국 영화시장은 2020년부터 바닥이 보이지 않는 추락을 경험하고 있다. 30일 영화진흥위원회 '한국 영화산업 결산'에 따르면 코로나 이전인 2019년 2조5093억원에 달했던 국내 영화산업 총 매출은 2020년 1조537억원, 지난해 1조237억원으로 급감했다. 2년 새 최소 3조원이 증발해버린 셈이다.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된 2020년 11월 서울 시내의 한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한산한 모습. /사진=뉴스1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된 2020년 11월 서울 시내의 한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한산한 모습. /사진=뉴스1
'사회적 거리두기'에 매주 극장을 찾던 관객들이 발자취를 감춘게 직격탄이 됐다. 코로나 이전 2억2700만명에 달했던 관객 수는 2020년 5952만명으로 73.7% 줄었고, 지난해에도 6053만명으로 1.7% 늘어나는 데 그쳤다. 수익성 악화로 극장들이 문을 닫거나 영화티켓 가격을 올리고, 제작사들은 손실 리스크로 개봉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볼 만한 영화도, 볼 관객도 없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회복탄력성도 낮다. 영진위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전후 주요 10개국 극장 매출 회복 순위에서 한국은 30.1%의 회복률에 그치며 미국에 이어 9위를 기록했다. 1위와 2위를 차지한 중국(74%)과 일본(72%)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곽신애 바른손 E&A 대표는 "코로나로 한국영화 개봉이 밀려 투자가 이뤄지지 못해 사실상 기획단계에 멈춰있다"고 지적했다.

업계 전반에서 이번 칸 영화제 수상 소식을 크게 반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올 하반기부터 한국 영화시장이 보릿고개를 넘을 것이란 기대가 나오고 있어서다. 거리두기 해제로 영화시장에 활기가 도는 상황에서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가 극장가에 상륙할 경우 미뤄뒀던 기대작들이 연쇄 개봉 등이 이뤄지면서 시장 전체에 온기가 돌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감염병 등급이 2단계로 낮아짐에 따라 영화관 내 취식이 가능해진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영화관에서 직원이 팝콘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코로나19 감염병 등급이 2단계로 낮아짐에 따라 영화관 내 취식이 가능해진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영화관에서 직원이 팝콘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근 국내 영화시장은 조금씩 활력을 되찾기 시작했다. 지난달 영화산업 매출이 전달 대비 10% 이상 늘었는데, 5월은 매출액과 관객 모두 퀀텀점프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영화관 팝콘 취식이 허용된 직후 개봉한 '닥터 스트레인지2'가 흥행을 주도하더니, '범죄도시2'가 12일 만에 650만 관객을 끌어모으며 불을 지피고 있다.


지인해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4월까지만 해도 큰 변화가 없었던 극장이 5월부터 완전히 달라졌다"며 "지난 2년 간 연기됐던 국내외 영화 라인업이 줄줄이 개봉하며 관객 수가 빠르게 회복하는 중인데, 이는 '콘텐츠만 있으면 극장은 순항한다'는 시장 논리를 뒷받침하는 대목"이라고 분석했다.

브로커와 헤어질 결심은 각각 내달 8일과 29일 개봉할 예정이다. 한 멀티플렉스 관계자는 "기생충은 한국에서 1000만 명의 관객을 끌어모았다"며 "두 영화 모두 평단과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았고, 전 국민적인 관심을 끌었단 점에서 극장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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