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전 10시쯤 서울 종로구 낙원동의 한 국밥집. 단골들 사이에 '이천원 국밥집'으로 통한다. 식탁 여덟 개가 손님들도 찼다./사진=김성진 기자
분식집 라면보다 싼 가격. 일요일인 29일 오전 9시쯤 국밥집 여덟 식탁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모두 머리 희끗한 어르신들이었다.
빈 식탁이 안 보여도 손님들은 들어왔다. 자리가 부족하면 처음 본 사이여도 같은 식탁에서 먹는 게 이곳 분위기다.
29일 오전 10시쯤 서울 종로구 낙원동의 한 국밥집 한상차림. 메뉴가 우거지얼큰국 하나라서 주문을 하지 않아도 음식이 나온다. 뚝배기 하나와 공기밥, 깍두기가 나온다. 가게에서 직접 빻은 고춧가루와 굵은 소금이 제공된다./사진=김성진 기자
메뉴는 하나인데 단골이 적지 않다. 이날 만난 손님들은 국밥에 '고향 냄새가 난다' '토속적인 시골맛이 난다'고 했다.
사장 권영희씨(75)는 이런 평가가 익숙하다. 1970년 시어머니에게 가게를 물려받고 52년째 운영해왔다. 권씨는 "메뉴가 단품이라 맛이 없으면 안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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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씨는 마장동 축산시장에서 소뼈를 사다가 육수를 내고 우거지를 직접 말린다. 깍두기도 직접 담근다. 권씨는 "손님이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산 깍두기를 쓰나"라고 했다.
권씨가 가게를 물려받을 당시 국밥값은 400원이었다. 권씨는 가격을 1990년대 1000원, 2000년대 1500원, 2010년 9월 2000원 이렇게 10년 터울로 대략 500원씩 올렸다.
가격 인상이 더딘 건 탑골공원 일대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탑골공원 방문객은 대부분 저소득 고령자다. 밥값에 큰 돈을 쓰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권씨의 국밥집 손님 여럿은 식사를 마치고 300원짜리 자판기 얼음 설탕커피로 입가심을 했다. 탑골공원 일대 무료급식소 두곳에는 매 점심마다 고령자 수백명이 줄을 선다.
그래서 탑골공원 일대는 전반적으로 물가가 싸다. 권씨 국밥집 말고도 주변 식당들은 콩나물 국밥 3000원, 냉면 4000원에 장사를 했다. 컷트와 염색을 6000원에 하는 이발소도 세곳이나 있다.
28년 단골 윤열기씨(60)는 사업에 실패하고 종로구에서 기계공으로 일하며 이 권씨의 국밥집을 알게 됐다. 그는 "이 집은 밥값이 싸고 분위기가 편안하다"고 했다. 이어 "이 집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정(情)이 있다"며 "처음 만난 사람과도 함께 앉아서 서로를 위로하는 곳"이라 했다.
국밥집 사장 권영희씨(75)가 국을 푸고 있다./사진=김성진 기자
권씨는 최근 여동생에게 국밥값을 500원 올리라고 했다고 한다. 가격이 오른다면 2010년 9월 이후 12년 만이다. 재료비 부담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4.8% 올랐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3년 6개월 만에 최고 상승률이다.
단골들은 가격 인상을 이해한다는 분위기다. 10여년 단골이었다는 A씨는 "가격을 올려도 이 집만 한 곳이 없다"며 "이집의 '사람 냄새 나는 정'이 좋아 계속 이용할 것"이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