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밀수 안했다"는 박지원 사위…1심 "믿을수 없다" 한 이유는

머니투데이 유동주 기자, 성시호 기자 2022.05.28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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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출국면세점 구역에서 인천공항세관본부 관계자들이 UN이 제정한 제29차 세계 마약 퇴치의 날을 앞두고 열린 기념행사에서 마약 탐지견과 함께 여행가방에 숨겨진 마약을 찾아내는 시범을 하고 있다. (인천공항세관 제공) 2015.6.23/뉴스1  = 23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출국면세점 구역에서 인천공항세관본부 관계자들이 UN이 제정한 제29차 세계 마약 퇴치의 날을 앞두고 열린 기념행사에서 마약 탐지견과 함께 여행가방에 숨겨진 마약을 찾아내는 시범을 하고 있다. (인천공항세관 제공) 2015.6.23/뉴스1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의 사위로 알려진 대기업 임원 A씨(40대)가 마약투약 및 밀수혐의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A씨는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마약 투약 혐의는 인정했지만 공항을 통해 마약류를 밀수했다는 혐의는 부인해왔다. 하지만 재판부는 미국에서 귀국하던 과정에서 A씨가 마약류를 짐에 넣고 왔다는 사실을 모르기는 어려웠다고 판단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글로벌 기업에서 근무했던 A씨는 2019년 20여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길에 올랐다.



글로벌 기업 직장 동료가 송별 선물로 건넨 '엑스터시와 대마'가 든 파우치
A씨 주장에 따르면 귀국 직전 직장 동료를 비롯한 지인들과 송별파티가 여러 번 있었고, 그 중 한 자리에서 직장 동료 중 한명이 엑스터시와 대마를 건네줬다. 미국 생활 중 마약류를 접해보지 않았다고 하자, 동료가 '송별 선물'로 줬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엑스터시 1정은 은박지에 대마는 밀봉된 작은 지퍼백에 포장돼 검정 파우치에 함께 들어있었다.

그런데 A씨는 송별 파티에서 받은 이 검정 파우치를 그대로 들고 귀국한 과정과 그 안의 내용물이 마약류인 것을 인지했는지 여부에 대해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일관되고 합리적인 설명을 하지 못했다.


재판에서 A씨는 변호인을 통해 "20년의 미국생활을 접고 귀국하는 과정에서 전 직장 동료가 줬던 검정 파우치에 마약류가 들어있었단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A씨 측은 동료가 건네 준 파우치가 밀봉돼있어 내용물을 확인하지 못한채 짐속에 넣었기때문에 마약류 밀수의 '고의'가 없었다고도 했다. A씨 측 변호인은 "마약류가 백팩에 들어있다는 걸 알았다면 공항 출입국 검사대를 통과해야 하는 데 당연히 버리고 왔을 것이어서 고의성은 인정할 수 없다"고 강조하기도했다.

하지만 A씨는 마약류가 들어있는 검정 파우치를 동료로부터 선물로 받았단 사실은 기억하고 있었고, 다만 보관을 어디에 했었는지는 몰랐다고 직접 진술했다. 선물받을 당시엔 마약류인걸 알고 있었지만, 그후 보관장소를 알지못해 부지불식간에 자신이 귀국행 비행기에 탈 때 직접 메고 있었던 백팩 앞주머니에 검정 파우치가 들어 있단 사실은 몰랐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A씨 "백팩 앞 주머니에 마약류 들어있는 검정 파우치 있는 걸 모르고 비행기에 들고 탔다"
A씨 설명에 따르면, 엑스터시와 대마가 들어 있던 백팩을 그대로 메고 비행기에 탑승한 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지만, 적발되지 않은 셈이다.

A씨 측 변호인은 '마약 밀수'의 '고의성'을 부정하기 위해 마약류가 들었던 검정 파우치에 마약류가 들어 있었던 사실 자체를 몰랐다고 주장했지만, A씨 본인은 검사와 문답 과정에서 검정 파우치에 동료가 선물로 준 엑스터시 등이 들어있었단 사실 자체를 몰랐다고 부정하진 못했다.

변호인은 검정 파우치에 마약류가 들었단 사실 자체를 몰랐단 취지로 변론을 펼쳤지만, A씨가 피고인 신문 과정에서 동료에게 받은 검정 파우치에 마약류가 들어있단 사실을 모르진 않았다는 취지로 답했기 때문에 변호인의 변론 전략은 사실상 실패한 셈이다.

재판부도 검정 파우치에 마약류가 들어 있었단 사실을 A씨가 몰랐을 리는 없다고 지적했다.

= 5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서울본부세관에서 열린 '2014년도 마약류 밀수 단속동향 발표' 언론브리핑에서 관세청 직원들이 인형이나 신발 등 일반 제품으로 위장해 밀반입하려다 압수된 마약류들을 공개하고 있다.2015.2.5/뉴스1  = 5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서울본부세관에서 열린 '2014년도 마약류 밀수 단속동향 발표' 언론브리핑에서 관세청 직원들이 인형이나 신발 등 일반 제품으로 위장해 밀반입하려다 압수된 마약류들을 공개하고 있다.2015.2.5/뉴스1
재판부 "마약류 든 파우치를 백팩에 넣은 걸 모른채 입국했다는 걸 믿을 수 없다"
재판부는 판결을 통해 "20년간의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짐을 급하게 싸는 과정에서 입국할 당시 가방에 엑스터시 1정과 대마가 들어있는걸 인식하지 못해서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살펴보면 피고인은 미국에서 다니던 회사 송별회에서 지인으로부터 엑스터시가 든 검은색 파우치를 받아 넣어뒀다고 하는데, 피고인은 엑스터시가 가방에 들어있다는걸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고 한달 후 국내로 입국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육군 병장으로 만기제대하는 등 가치관이 국내에서 형성됐고 마약류의 불법성도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수사기관에서도 마약류의 불법성을 알았다고 진술했고 설령 미국에선 마약류에 대해 경미한 처벌만 있을 뿐이더라도 직장동료가 (마약류를)권하는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을 것이고 입국 당시 20년간 생활을 정리하고 입국할 짐이어서 어떤 것을 가져갈 지 확인하였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재판부는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기내 수하물이 무엇이 있는지, 비행기 금지물품이 무엇인지 확인하여야 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가방(백팩)을 들고 탔는데 검색대에 소지품을 올리게 되고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스스로)점검하는 게 자연스럽고 가방 안에 마약류가 있었단 걸 몰랐다고 주장하는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경찰 수사과정에서 '마약류가 가방에 있었단 걸 까먹었는데 가방에 있어서 (같이 투약했던 20대 여성 B씨에게 같이 투약하자고) 전화한 것 입니다'라고 진술했고 열어보니 엑스터시와 손톱 한마디 정도되는 대마가 있다고 했는데 한국에 입국한 이후 엑스터시와 대마를 발견한 계기나 관련 진술이 일관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귀국 후 뒤늦게 가방에서 발견됐더라도 이를 버리지 않고 바로 지인(같이 투약한 B씨)에게 '엑스터시를 가지고 있으니 같이 투약하자'고 제안했는데, 성장 배경이나 법정에서 진술한 마약류에 대한 인식과는 도저히 부합하지 않는다"고도 지적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14일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개항 준비상황을 점검하면서 원형검색기를 체험하고 있다.{본문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14일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개항 준비상황을 점검하면서 원형검색기를 체험하고 있다.{본문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재판부 "마약 투약 경험 없던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마약 들여온 걸 뒤늦게 발견하고 바로 지인에게 투약제의했단 걸 믿을 수 없다"
미국에서도 마약류에 대해 접해본 적이 없고, 마약류를 고의로 귀국 길에 들고 오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도 발견된 마약류를 투약하자고 지인에게 바로 연락했다는 점에서 일관성을 찾기 어렵단 게 재판부 판단이었다.

재판부는 "지인(B씨)과 같이 투약하고 남은 엑스터시를 무상으로 주면서 '미국에서 가져 온 것'이라고 밝히기까지 했는데 자신의 범법행위(밀수행위)를 뒤늦게 인식한 사람으로는 수긍할 수 없는 태도"라며 "미국에서 가져온 대마와 엑스터시를 버리지 않은 것에서 더 나아가 지인에게 권해 적극적으로 마약류 투약 범행까지 저질렀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런 사정을 종합해보면 입국 당시 가방에 들어 있다고 피고인이 인식하고 있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며 "피고인과 변호인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결론냈다.

A씨는 같이 투약한 20대 여성 B씨가 마약류에 취해 운전하다 경찰에 잡힌 뒤, 수사를 받게되자 A씨와의 투약 혐의를 수사기관에 구체적으로 신고했기 때문에 같이 투약한 점에 대해선 재판에서도 부인하지 않았다.

A씨는 지난 2019년 입국시에 들여온 엑스터시와 대마를 20대 여성 B씨와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함께 투약한 혐의로 기소됐다.
B씨는 2017년에 먀약류관리법 위반으로 이미 징역형 집행유예를 받았던 마약류 전과자였다. B씨가 2019년 말 경찰에 단속되면서 A씨와의 투약 사실 등을 경찰에 자백하면서 A씨가 공범으로 기소됐다.

이날 함께 재판을 받은 나머지 2명(20대 남성 1명, 30대 여성1명)은 B씨의 전 남자친구와 지인이다. 그들도 B씨의 자백으로 함께 투약한 혐의가 인정됐다. 나머지 2명은 B씨와 함께 혹은 별도로 투약한 것으로 인정됐다. 대기업 임원이었던 A씨는 B씨와만 알고 지냈고, 나머지 2명은 직접 관련은 없다.

20대 여성 피고인 B씨는 이미 마약류 전과가 있어 실형을 피하기 위해, 경찰에 A씨와의 투약 등 자신이 관련된 마약류 범행을 모두 자백하고 재활기관에 입소해 재활 중임을 호소했다. 친모가 양형 증인으로 출석해 B씨가 미국에서 마약류를 처음 접하게 된 과정에 불우했던 가정사가 있음을 울먹이며 증언하며 선처를 호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양형판단에 있어 "수회에 걸쳐서 합성대마를 포함한 다양한 마약을 매수했고 투약했으며 취한 상태에서 운전까지 하는 등 죄질이 매우 불량한 점, 동종범죄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음에도 또 범행을 저지른 점은 불리하다"고 했다.

재판부는 "한편 대부분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면서 마약류 매수는 (판매가 아니라) 스스로 또는 지인들과 투약하거나 소지하기 위한 것이었던 점, 다시는 저지르지 않겠다는 치료의지를 보이는 점, 같이 투약한 사람과 범죄사실을 제보하는 등 적극 협조한 점은 유리한 양형요소"라면서도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면서 법정구속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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