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술특례상장, 바이오 성장 마중물…투자자 피해도한국거래소가 2005년 기술특례를 도입한 뒤 지금까지 이를 활용해 상장한 기업은 150개다. 이중 바이오가 98개다. 바이오가 절반을 훌쩍 넘는 65.3%를 차지한다. 기술특례에 대해 "바이오를 위한 상장 제도"란 표현은 틀린 말이 아니다.
반면 어두운 면도 있다. 17년간 기술특례로 상장한 바이오 중 실제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을 만한 신약 개발 성과를 낸 기업은 없다. 코아스템 (8,240원 ▲80 +0.98%)의 루게릭병 치료제 '뉴로나타-알'의 국내 조건부 허가, 에이비엘바이오 (22,350원 0.00%)와 레고켐바이오 (40,750원 ▲300 +0.74%)의 글로벌 기술이전 정도가 그나마 눈에 띈다. 만족할 만한 성과로 보기 어렵다.
상장 바이오의 주가도 엉망이다. 지난해 기술특례로 상장한 바이오 기업 11개 중 공모가 이상 가격을 유지하는 기업은 한 군데도 없다. 대부분 주가가 반토막났다. 바이오 특례 상장 기업 중 상장 당시 약속한 흑자전환을 실현한 기업도 손에 꼽는다. 급등락을 반복하는 바이오 종목 특성상 주식시장에서 여러 개인투자자가 손실을 입었다. 일부 기업은 "주가로 장난을 친다"는 의구심을 받기도 했다.
바이오 신뢰 추락은 성과 부족 때문…높은 몸값 고집해선 안돼이 같은 과정이 반복되면서 K바이오에 대한 시장 신뢰는 추락했다. 최근 글로벌 증시가 전반적으로 불확실한 상황이지만 국내 바이오의 철저한 저평가는 다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바이오 업계 전반적으로 견실한 연구개발 성과를 확보하거나 기술 역량을 쌓는 데 소홀했고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바이오가 회복하려면 스스로 어떤 결과물을 보여줘야 할 때다. "시간과 돈이 부족해서"란 핑계는 이제 통하지 않는다.
투자 업계의 바이오 한탕주의도 되돌아봐야 한다. 바이오가 높은 몸값을 자랑하던 때 여러 벤처캐피탈(VC)이 바이오를 단기 '먹튀'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다. 창업 초기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할 때 수십억원 수준이던 기업가치가 2~3년새 시리즈B~C, 프리IPO(상장 전 투자 유치)를 거치며 수천억원으로 뛴 사례가 적지 않다. 이 과정에서 초기 투자에 참여한 벤처캐피탈은 스스로 피투자기업의 가치를 뻥튀기하며 편하게 수십배, 수백배 차익을 남겼다. 이때 책정된 바이오 벤처의 높은 몸값은 지금 바이오 IPO를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바이오 투자 전문가인 김재준 미래에셋벤처투자 상무는 "20년 가까이 특레상장 제도을 운영했지만 우리 바이오 기업 중 신약으로 승인을 받거나 실적을 제대로 내는 회사는 찾기 힘들다"며 "거기다 일부 기업의 도덕적 해이가 부각되는 등 K바이오 투자에 대해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분위기가 퍼졌다"고 말했다.
IPO를 앞둔 한 신약 개발 바이오 벤처의 대표이사는 "지난 몇 년간 바이오가 잘 나갈 때 우후죽순으로 생긴 많은 벤처가 모두 고평가를 받으며 돈잔치를 벌인 측면이 있다"며 "장외에서 몸값을 높인 바이오 벤처가 IPO를 못하면서 투자자들이 피해를 보는 사례가 축적됐고 지금 IPO를 못하면 존립 자체가 위험한 기업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앞서 많은 바이오가 연구에 실패한 사례가 있지만 그렇다고 IPO 시장이 경색돼 바이오의 상장 자체를 막는다면 산업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며 "시장에서 냉철한 시선으로 옥석을 가려 역량을 갖춘 견실한 바이오가 제때 IPO를 통해 성장 사다리를 오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