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줄 끊긴 바이오 생태계…"이러다 다 죽어" 곡소리만 커진다

머니투데이 김도윤 기자 2022.05.2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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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찬밥신세 바이오, 부활의 조건①바이오 자금줄 동났다…성장산업? 생존 걱정

편집자주 자본시장이 바이오를 외면하고 있다. 현장에선 "이 정도로 자본시장에서 바이오가 철저하게 저평가 받은 적은 없었다"는 토로가 나온다. 막대한 연구 자금과 시간이 필요한 바이오는 자본시장과 떨어져 혼자 설 수 없다. 생존을 위해 지속적인 자금 수혈이 필수적이다. 자본시장과 동행하지 못하면 바이오 생태계는 무너진다. 바이오가 자본시장에서 신뢰를 잃은 이유와 배경, 그로 인한 영향,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짚는다.

돈줄 끊긴 바이오 생태계…"이러다 다 죽어" 곡소리만 커진다


#바이오 벤처 A사는 주요 파이프라인 임상 자금이 필요하다. IPO(기업공개)를 위해 기술성평가를 시도했지만 탈락했다. 기술성평가조차 떨어지니 사내에 과연 상장이 되겠냔 불안이 퍼졌다. 주요 인력이 이탈하는 등 회사의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직전 밸류에이션보다 확 낮은 가격으로 겨우 증자를 했다. 임상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운영 자금으로 쓸 정도 규모다. 후속 연구는 꿈도 못 꾼다.

#바이오 벤처 B사는 주요 기술 개발 과정에서 의미있는 연구 데이터를 확보했다. 이제 연구 고도화와 세계 시장 진출을 시도해야 한다. 그러면 자금이 필요하다. 하지만 꽁꽁 얼어붙은 공모시장의 바이오 투자 수요를 고려하면 IPO에 나서기 겁난다. 그래도 언제까지 미룰 수 없는 일. 고심 끝에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했다. 속마음은 편치 않다. 요즘 같은 분위기에 상장할 수 있을까. 지난해 장외에서 투자를 유치할 때 평가받은 기업가치보다 낮은 밸류에이션으로라도 상장만 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IPO 과정에서 장외에서 평가받은 수준보다 기업가치를 확 높이는 전례를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다.



꽉 막힌 바이오 IPO…바이오 생태계 돈이 안들어온다
바이오 IPO가 꽉 막혔다. 올해는 어느 때보다 바이오 IPO가 어렵다. 그만큼 공모시장에서 철저하게 외면받고 있다. 업계에선 "올해 제대로 된 바이오 상장은 5개도 안 될 것"이란 토로까지 나온다. 그만큼 현장에서 체감하는 바이오 IPO의 벽이 높다.

실제 올해 상장한 바이오 기업은 애드바이오텍, 바이오에프디엔씨, 노을이다. 세 회사 모두 엄밀히 말해 정통 신약 개발 바이오 벤처는 아니다. 올해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한 기업도 6개에 그친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절반 수준이다. 그마저 올해 예심 청구 바이오에 대해 "상장 못할 걸 알면서 기존 투자자에 보여주려는 목적의 상장예비심사 청구도 꽤 될 것"이란 자조섞인 평가도 나온다.



업계에서 어느 정도 기술력을 인정받은 바이오 벤처라도 올해 한국거래소의 상장예비심사를 통과하기조차 버겁다. 상장심사를 철회하는 기업도 속출했다. 장외에서 22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한 디앤디파마텍은 두 번째 도전에도 상장심사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거래소의 심사를 통과해도 시장의 시선이 차갑다. 기술이전 4건으로 2조원 이상의 기술수출 계약을 성사한 보로노이도 지난 3월 공모시장 저평가를 극복하지 못하고 한 차례 상장을 철회했다.

IPO가 막히니 바이오 산업 성장 생태계에 구멍이 뚫렸다. 신약 개발은 제조업은 아니지만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분야다. 10년 이상 걸리는 신약 개발 과정은 임상 비용 등을 포함해 수천억원, 많게는 1조원 이상 든다. 돈이 없으면 연구를 할 수 없고, 연구를 못하면 회사의 존립 의미를 잃는다.


IPO는 바이오가 연구 비용을 조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창구다. 상장 전 벤처캐피탈(VC)의 투자로 초기 단계 일부 자금을 충당할 수 있지만 규모에서 한계는 명확하다. 수백억원 이상 자금을 보다 안정적으로 모으기 위해선 IPO가 필요하다. 그래서 바이오가 창업하고 연구하고 투자를 유치하고 임상 시험 등을 통해 기술을 고도화하려면 IPO는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현장에선 곡소리…상장 못하고 투자 막히고 "다 죽는다"
돈줄 끊긴 바이오 생태계…"이러다 다 죽어" 곡소리만 커진다
IPO가 막히니 바이오 업계 현장에선 곡소리가 난다.

위에 언급한 A기업처럼 임상 비용은커녕 운영 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바이오 벤처가 적지 않다. IPO를 해야 할 때 못하면 기존 투자자의 등쌀에 시달릴 뿐 아니라 돈을 못 구해 연구를 진척할 수 없다. 임상 시험에 들어갈 시점에 돈이 없다면 CRO(임상수탁기관)나 규제기관 일정을 맞추지 못해 1년 이상 연구가 지연될 수 있다. 연구가 늦어지는 동안 회사에 마음이 떠난 핵심 연구진이 이탈할 경우 존폐의 기로에 서야 한다.

IPO를 준비하고 있는 바이오 벤처 대표이사는 실제 현장에서 느끼는 어려움은 더 크다고 토로했다. 그는 "바이오는 계속 투자를 받아야 하고 엔젤투자부터 시작해 시리즈A~C, 프리IPO, IPO 이렇게 단계를 밟으면서 기업은 성장하고 투자자는 자금을 회수하고 다시 투자하는 선순환이 구축돼야 한다"며 "지금 바이오 IPO가 막히면서 회사 운영 자체에 애를 먹는 기업이 상당수 있다"고 말했다.

성장이 가로막힌 바이오가 많다 보니 벤처에 돈을 대는 벤처캐피탈도 바이오 투자에 손을 떼고 있다. 이미 투자한 바이오 벤처가 상장을 못해 엑시트(투자금회수)를 못하고 자금이 묶인다. 이렇다보니 벤처캐피탈도 이제 바이오 투자에 선뜻 나서지 못한다. 상장도 못하고 증자도 못하는 바이오 벤처는 생존을 고민해야 한다. 바이오 창업 열기도 식을 수밖에 없다. 악순환이다.

오랜 기간 바이오에 투자한 구영권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요즘 바이오 신규 투자는 거의 어렵다 보면 된다"며 "상장은커녕 투자를 못 받으니 운영자금이 모자라 직원을 내보내는 바이오도 종종 본다"고 말했다.

이어 "바이오 투자 생태계가 망가지면서 많은 벤처가 심각한 상황에 직면했다"며 "회사 문을 닫지 못해 생존만 하는 바이오 벤처가 많다"고 지적했다.

기업과 시장, 눈높이 맞춰야 산다
대표적인 성장 산업인 바이오에 대한 지속된 저평가는 업계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있다. 2005년 도입한 기술특례 상장 요건으로 약 17년간 100개 가까운 바이오 벤처가 코스닥에 입성했지만 눈에 띄는 신약 개발 성과는 찾아볼 수 없다.

반대로 상장 바이오 중 이해할 수 없는 경영 행태로 거래정지된 종목도 있다. 온갖 연구 성과를 홍보하다 돌연 임상 실패 소식을 알리며 투자자 피해를 초래한 기업도 있다. 시장 일각에서 "K바이오는 믿을 게 못 된다"는 하소연이 나오는 이유다.

2020~2021년 바이오가 한창 잘 나갈 때 책정한 기업가치를 여전히 고수하는 기업도 문제다. 이미 주식시장에서 바이오 주가는 곤두박질쳤고, 이에 따라 공모시장에서 바이오에 대한 눈높이를 대폭 낮출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여전히 비상장일 때 평가받은 기업가치보다 무조건 높은 밸류에이션을 요구한다면 IPO는 요원하다. 바이오 기업과 공모시장 간 눈높이 '미스매치'(부조화)를 극복해야 한다.

국내 IB(투자은행) 전문가는 "기업의 역량도 문제지만 최근 바이오 IPO가 어려운 큰 이유 중 하나가 밸류에이션에 대해 시장과 눈높이가 크다"며 "예전 잘 나갈 때 몸값만 생각해선 IPO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바이오 IPO가 살아나려면 기업과 시장 간 밸류에이션 눈높이를 맞추는 작업을 지속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업은 이미 설정된 기업가치가 있어 마음대로 밸류에이션을 낮출 수 없다 하소연한다.

한 비상장 바이오 기업 임원은 "글로벌 임상을 진행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IPO가 아니면 답이 없다"며 "그런데 지금은 IPO도 어렵고 그렇다고 장외에서 증자를 통해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기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어 "다들 밸류에이션이 문제라고 하는데 이미 장외에서 투자 받은 기업가치 기준이 있어 그보다 한참 낮은 가격으론 상장할 수 없다"며 "빨리 공모시장 분위기가 바뀌지 않으면 생존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바이오가 주변에도 많다"고 덧붙였다.

국내 대표적 바이오 투자 전문가인 황만순 한국투자파트너스 대표는 "몇 년 전 바이오가 호황일 때 벤처캐피탈은 서로 투자하려 했고, 많은 바이오 기업이 장밋빛 미래를 바탕으로 높은 몸값으로 돈을 끌어모았다"며 "이제 국내외 시장이 모두 어려운 상황인 만큼 그때 기업가치는 빨리 잊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이어 "시장 환경이 과거보다 어려워졌는데도 높은 공모가를 고집한다면 회사 경영진의 상황 판단 능력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며 "자본시장에 진입하려는 기업 경영자의 유연한 사고 전환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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