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트윈플러스파트너스
1962년 개봉한 영화 ‘여판사’에서 남편이 아내 진숙에게 던지는 대사다. 그리고 이 ‘여판사’를 복원하는 일을 맡게 된 중년 여성감독 김지완(이정은)은 아들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엄마, 영화 하지 마. 아빠가 뭐라 하는지 알아? 꿈꾸는 여자랑 살면 외로워진대.”
신수원 감독의 ‘오마주’는 1960년대 활동하며 세 편의 영화를 찍은 우리나라 두 번째 여성 영화감독 홍재원(김호정), 그리고 60년 뒤인 현재 세 번째 영화까지 완성시킨 여성 영화감독 김지완(이정은)을 등장시켜 60년 세월의 간격을 둔 여성 영화인의 삶을 바라본다. 홍재원은 실제 우리나라 두 번째 여성 영화감독인 홍은원을 모델로 했다. 우리나라 최초 여성 판사 황윤석을 모델로 한 ‘여판사’ 속 진숙이나 우리나라 첫 여성 편집기사를 모델로 한 이옥희(이주실)까지 아우르면, 꿈꾸는 여성들의 모습을 담은 영화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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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보다는 좋아졌지만 그때와 여전히 일맥상통한 부분은 ‘오마주’의 씁쓸한 부분이자 동시에 코믹한 부분이기도 하다. 지완의 아들 보람(탕준상)의 입을 통해 들은 것처럼 지완의 남편 상우(권해효)는 꿈꾸는 여자랑 살기 때문에 외로워한다. 그가 외로워하는 부분이 늘상 타령하는 ‘밥 줘’가 충족 안 되는 때문 아닐까 하는 의심은 들지만, 어쨌든 ‘여자는 주부가 되는 게 가장 행복한’ 거라 믿던 영화 ‘여판사’ 속 남편과 상우는 60년의 간극이 있음에도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엄마와 스킨십이 스스럼없고 숙제이긴 하지만 엄마에게 이따금 시를 편지 보내는 다정한 사이인 아들 보람 또한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못 먹어 애정결핍이라고 당당히 주장하곤 한다. 하이라이트는 상우의 엄마이자 지완의 시어머니가 지완의 집으로 간다며 전화가 왔을 때. 전화를 받자마자 부리나케 냉장고 청소를 시작하던 지완에게 전화 너머로 퉁박을 주는 장면은 60년 전이나 지금이나 공감되어 ‘웃픈’ 감정을 선사한다. 여자가 담배 피우는 모습이 검열로 잘려 나가야 했던 것과 비교하면, 물론 좋아진 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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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로 ‘존경’을 의미하는 오마주(homage)는 원작에 대한 존경심의 표출을 드러낸다. 영화 ‘오마주’의 김지완도 홍재원 감독의 필름과 삶을 추적하며 슬럼프에 빠진 자신을 추스른다. 이는 ‘오마주’를 만든 신수원 감독이 홍은원 감독, 더 나아가 지금까지 꿋꿋이 활동하며 포기하지 않았던, ‘끝까지 살아남아’ 꿈꾸던 여성 영화인들에게 보내는 존경과 찬사이다. ‘여판사’ 복원을 마친 뒤 도무지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어하던 수영장에서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지완의 모습을 비추는 영화 마지막 장면은,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 영화인들에게 보내는 신수원 감독의 지지와 응원으로도 보인다. ‘구조적 성차별이 없는’ 이 나라에서 지완처럼 가정을 돌보며 동시에 꿈을 꾸는 이들을 위한 응원이 될 수도 있겠다.
첫 장편 단독 주연을 맡은 이정은의 연기가 놀랍다. 땅에 발을 붙인 채 같은 공기를 호흡하는 현실적인 연기로 엄마이자 아내이자 영화감독으로 살아가는 김지완을 구체적으로 만들어낸다. 오버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은은한 힘,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는 과정에서 그를 납득하게 만드는 눈빛과 표정이 인상적. 좀 더 너른 무대에서 다양한 얼굴의 이정은을 만나고 싶게 만든다. 5월 26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