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단지에 타워크레인이 멈춰서 있다. /사진=뉴스1
가계약서 1.9조 공사비, 3조2000억원으로 불어난 이유 둔촌주공 사태의 핵심은 공사 계약서 작성 과정에 있다. 둔촌주공은 2010년 시공사로 현재 시공사업단(현대건설 (33,250원 ▲850 +2.62%)·HDC현대산업개발 (15,980원 ▲80 +0.50%)·대우건설 (3,635원 ▼10 -0.27%)·롯데건설)을 선정하고 같은 해 가계약을 맺었다. 당시 가계약서는 예정 공사비 수준인 약 1조9000억원에 맺어졌다. '추후 공사비는 협의한다'는 협의서와 함께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시공사를 선정하고 나면 일단 협의서를 쓰는 게 관행처럼 굳어졌지만 조합원들은 정비사업 전문가가 아니어서 추후 어떻게 작용할지 예상하지 못한다"며 "착공 전에 공사비를 확실히 협상하고 계약서를 써야하지만, 공사비 인상이 가능하도록 계약서에 조항을 달아도 조합이 알아차리기 힘들어 시공사 선정 이후에는 시공사가 '갑'이 되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고 했다.
시공사를 선정할 때 조합은 예정 공사비를 책정하고 그 범위 안에서 시공사가 입찰에 참여하게 된다. 예정 공사비는 추정치로, 조합이 만든 설계를 기반으로 가격을 매긴다. 조합 설계는 인허가를 받기 위한 용도로 작업돼 조악한 수준이다. 반대로 시공사는 입찰에 참여하면서 조합의 표를 얻기 위해 '대안 설계'를 꺼내든다. 시공사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작성돼, 조합 설계와 비교하면 품질에서 확연히 차이가 난다. 물론 대안설계는 조합도 요구한다. 대안설계조차 없이 입찰에 뛰어든 건설사는 수주 의지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조합은 월등히 뛰어난 시공사의 설계를 적용하기 위해 설계변경을 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공사비는 늘어난다. 시공사 선정 당시 입찰가로 아파트를 지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조합은 시공사의 공사비 인상 요구에 당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절차상 문제는 없다. 돈이 더드는 대안설계를 조합원들이 선택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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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갈등이 깊어지면 둔촌주공처럼 파국을 맞기도 한다. 실제로 방배6구역은 공약 불이행과 공사비 증액을 이유로 시공사와 갈등을 빚다 지난해 계약해지를 통보하기도 했다. 방배6구역은 2~3차례 설계변경이 이뤄졌다.
시공사는 조합의 표를 얻기 위해 '공사비 인상은 없다'며 홍보하지만 실제로는 설계변경처럼 공사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요인들이 많다. 그러나 조합이 이를 꼼꼼히 확인하고 대처하기에는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태생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때문에 비전문가 중심인 조합이 아닌 신탁방식 정비사업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신탁방식은 신탁사가 수수료를 받고 조합을 대신해 재건축·재개발 등 도시정비사업을 시행하는 방법이다. 신탁사는 무엇보다 정비사업 관련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업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관리하고, 문제 발생시 관계자들과 협상하는 등 조합의 권익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다만 현행 신탁계약서는 조합에 불리한 요소가 많다는 지적이 있어 서울시와 국토교통부는 공정한 계약이 이뤄질 수 있도록 '표준 신탁계약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