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지앤지프로덕션
‘붉은 단심’의 주인공인 왕 이태(이준)는 조선시대 11대 왕 선종의 적장자로 나온다. 실제 조선시대 11대 왕은 중종이고, 12대 왕인 인종의 이름은 이호이니 가상의 왕이 주인공인 셈. 하지만 실제 역사와 얼개는 흡사하다. 드라마 속 선종이 박계원을 비롯한 공신들의 반정으로 인해 형을 끌어내리고 즉위한 것은 진성대군이었던 11대 왕 중종이 연산군 대신 왕으로 추대된 것을 떠올리게 하고, 중종에 이어 아들인 인종까지 약한 존재감을 드러냈던 것을 생각하면 ‘붉은 단심’의 이태와 흡사하다. 자연 장혁이 맡은 박계원은 중종반정의 실질적 주인공이었던 박원종을 모델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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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권을 압박할 만큼 절대권력을 자랑하는 사극 속 빌런들은 항상 있어왔지만 대체로 그들은 자신과 가문의 권력을 최우선으로 치는 탐욕스러운 인물이었다. 일차원적인 욕망이 강한 납작한 캐릭터가 많았다는 말이다. 물론 정치적 노선이 달랐던 ‘용의 눈물’의 정도전(김흥기)이나 압도적 존재감을 기품 있게 표현한 ‘정도전’의 이인임(박영규) 같은 인물도 있었지만 로맨스 사극이나 팩션 사극이 많아지면서 묵직한 사극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면서 빌런 포지션의 인물에게 입체성을 불어넣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붉은 단심’의 박계원은 반정을 통해 폭군을 폐위시킨 인물로, 자신만의 뒤틀린 명분으로 후대에도 권력을 틀어쥐려 한다. 그를 위해서라면 연모하던 연인 최가연(박지연)을 주상의 간택 후궁으로 밀어 넣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비정하되 대비가 되어 자신의 정치적 동지가 된 가연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연민이 서려 있는, 복잡다단한 인물.
왕을 폐위시키고 왕을 쥐락펴락하면서도 왕위를 탐하지는 않는 묘한 나라에 대한 충정, 자신의 질녀를 중전으로 올릴 심산으로 오랜 시간 준비했다가도 왕의 틈을 발견하곤 잽싸게 왕의 숨겨진 정인 유정을 손에 넣어 자신의 질녀로 바꿔치기하는 판단력, 유정이 가짜 질녀임을 탄로날 수 있음을 알고도 오히려 왕에게 결정을 들이밀 수 있는 과감함 등 어느 면에서는 왕인 이태보다 더한 무게감과 기품을 엿볼 수 있는 인물인 박계원은 분명 흥미롭다. 그리고 그 흥미로움은 이태와 유정의 관계 이상으로 극에 긴장감을 불어 일으키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사극에서 항상 빛을 발했던 장혁의 묵직한 연기 톤과 카리스마가 한층 농축되어 시너지를 불러 일으키는 것은 물론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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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사극의 주인공이 젊어지면서, 장혁도 ‘나의 나라’와 ‘붉은 단심’에서 선두에 서는 주인공을 놓았다. 그러나 ‘나의 나라’에서도 그랬고, ‘붉은 단심’에서도 장혁은 결코 중심추를 놓치지 않는다. 특유의 울림 있는 목소리 톤으로 연기 톤이 비슷하다는 일각의 평도 있었지만 매번 장혁은 각자의 캐릭터에서 저마다의 서사를 쌓는데 충실했다. ‘붉은 단심’의 박계원은 입체적인 캐릭터를 쌓는데 충실했던 장혁 연기 인생의 분기점이 되어줄 것으로 보인다. 6회까지 보여준 얼굴만도 여럿인데, 앞으로 이태와 유정과 대립하며 노회하게 판을 짜며 보여줄 시시각각의 얼굴들은 얼마나 더 입체적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