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표'에서 '엽전'된 시간, 단 나흘…루나는 어떻게 실패했나

머니투데이 김하늬 기자 2022.05.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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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폐 되면 어쩌나…국내 BIG4 거래소 "루나 코인 40억개"

'수표'에서 '엽전'된 시간, 단 나흘…루나는 어떻게 실패했나


'수표'에서 '엽전'된 시간, 단 나흘…루나는 어떻게 실패했나
권도형 테라폼랩스 최고경영자(CEO)가 발행한 루나(LUNA)의 가치가 '0'으로 수렴했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10만원대 가격을 유지하던 루나가 1원으로 추락하는 데 걸린 시간은 나흘이었다. 루나와 연동된 '스테이블코인' 인 테라(UST)도 동반폭락하며 가상자산 시장을 뒤흔들었다.

'루나-테라(UST)' 동반폭락이 절정(?)에 치달은 12일, 글로벌 가상자산(암호화폐) 시장에선 시가총액 2000억달러(약 257조원)이 증발했다. 비트코인도 장중 한 때 2만6000달러(약 3330만원)까지 곤두박질쳤다.



지난 4월까지만 해도 권 대표는 '한국의 머스크'라 불리며 비트코인을 대량 매수하는 '큰 손'으로 시장을 다시금 깜짝 놀라게 했다. 한 번에 비트코인 15억 달러(약 1조8000억 원)를 산 '고래지갑'이 권 대표로 밝혀져서다. 그는 테라폼랩스를 통해 비트코인을 최대 100억 달러(12조 4000억 원)가량 매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소식에 루나는 지난달 장중 119달러까지 치솟으며 글로벌 가상자산(암호화폐) 시가총액 8위까지 올랐다. 하지만 13일 오전 99%폭락하며 0.1센트까지 주저앉았다.



결국 이날 글로벌 거래소인 바이낸스를 신호탄으로 국내 '업비트, 빗썸, 고팍스' 등 거래소들이 줄줄이 상장폐지 결정을 알렸다.

상폐 되면 어쩌나…국내 BIG4 거래소 "루나 코인 40억개"
'수표'에서 '엽전'된 시간, 단 나흘…루나는 어떻게 실패했나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 등 국내 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소 '빅4'를 통해 국내 이용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루나 자산은 13일 오후 기준 40억개에 달했다. 특히 이날 오전 9시40분, 거래량이 가장 많던 바이낸스가 루나의 상장폐지 소식을 알리자 20억개가 넘는 루나 코인이 국내 거래소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 지난 9일부터 12일까지 루나 가격이 대폭락하며 1달러 아래로 떨어지는 동안에도 국내 이용자들은 루나를 더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루나재단이 테라(UST) 하락을 막기 위해 하루에 수백억~수조원 규모 루나 코인을 추가 발행하면서 폭락장 속 '저가매수' 세력도 증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오후 2시 기준 업비트 거래소에 신고된 루나 자산 개수는 약 15억개다. 업비트 거래소에서 최근 24시간동안 거래된 루나 거래량은 1160억개에 달한다. '루나 폭락 사태'가 처음 나타난 9일 업비트 내 루나 거래량은 15만개에 불과했다. 다음날인 10일 384만개로 급증한 데 이어 11일 3000만 개, 전날인 12일 120억개 등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 기간 루나재단은 '루나-테라(UST)' 연쇄 폭락을 막기 위해 약 6조원의 루나코인을 발행했다. 13일 기준 루나재단이 발행한 코인 수는 6조9000억개다. 이중 대부분은 테라(UST) 구매 및 유동성공급에 사용됐고 일부는 거래소를 통해 유입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날 오전 글로벌 거래소 1위인 바이낸스가 루나의 상장폐지를 결정하면서 국내이용자 일부는 국내 거래소로 물량을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거래소 가운데 업비트는 원화마켓이 아닌 비트코인마켓(BTC)마켓에만 루나를 상장시켜 입출금 거래를 막지 않았다.

빗썸과 코인원, 코빗 등 나머지 거래소로 유입된 물량도 약 25억개로 추산된다. 이중 가장 먼저 거래소간 루나 코인 이동을 막은 빗썸은 보유 루나 물량이 700만개 정도로 알려졌다. 나머지는 24억개의 루나 코인이 코인원과 코빗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A거래소 관계자는 "개별 투자자 보호를 위해 종목 상장폐지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상폐가 되면 말 그대로 '휴지조각'이 되니 조금 더 지켜보자는 의견이 팽팽하다"며 "고객들의 매매현황을 내부적으로 살펴가며 면밀히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루나-테라(UST) 알고리즘의 실패…'윈-윈' 대신 '루즈-루즈'가 되는 "죽음의 소용돌이"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비트코인이 미국 금리인상과 루나코인 사태가 겹치며 내림세를 보이고 있는 12일 서울 강남구 빗썸고객센터 전광판에 암호화폐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2022.05.12.[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비트코인이 미국 금리인상과 루나코인 사태가 겹치며 내림세를 보이고 있는 12일 서울 강남구 빗썸고객센터 전광판에 암호화폐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2022.05.12.
권 대표가 고안한 '테라 생태계'에서 루나와 테라(UST)는 상호보완재다. 스테이블코인인 테라(UST)는 미국 달러와 1대1의 고정 가치를 갖도록 일명 '페깅(Pagging)' 알고리즘을 넣었다.

비트코인의 시세가 출렁일 때 마다 더 큰 파급효과를 갖는 코인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스테이블코인은 통화나 상품의 자산을 담보가치로 둔다. 테라(UST)를 위한 일종의 담보역할이 루나 코인이다.

루나는 테라(UST)가 항상 달러와 같은 가격을 유지하는데 사용된다. 테라(UST) 시세가 1달러 아래로 떨어지면 루나를 찍어내 UST를 산다. 시중의 테라(UST) 통화량을 줄여 가격을 올리는 방식이다. 반대로 테라(UST)의 가격이 1달러를 넘기면 테라(UST)를 추가 발행해 가치를 떨어뜨린다.

5월 들어 테라의 시세가 1달러 미만으로 떨어졌는데도 가격이 복구되지 않으면서 루나 폭락까지 이어졌다. 리서치업체 펀드스트랫은 "루나와 테라의 극적인 가격 하락은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증발해버릴 수 있는 데스 스파이럴(죽음의 소용돌이)"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테라(UST)를 매도한다 해도 1달러를 지급하는게 아니라 1달러 상당의 루나를 지급하는 구조다. 동반 폭락으로 루나의 가치가 0에 수렴하게 되면 테라(UST)를 루나로 바꾼다 해도 가치가 순식간에 쪼그라들게 된다. 테라(UST) 매도세가 루나 매도로, 루나 매도 영향이 테라(UST)매도로 반복되는 이유다.

스테이블 코인이 안전하던 착각?…한미 금융당국 한 목소리 "스테이블 코인 규제 필요"

'수표'에서 '엽전'된 시간, 단 나흘…루나는 어떻게 실패했나
'루나-테러' 사태를 계기로 가상자산에 대한 규제 논의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지난 11일(현지시각)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UST 폭락을 언급하며 규제 필요성을 설파했다. 그는"(스테이블코인은) 급격히 성장하는 상품이며 금융 안정성에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스테이블코인 등에 대한 포괄적인 기준이 없는 만큼, 의회에서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체를 은행처럼 규제하는 법안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게 옐런 장관 입장이다.

같은 날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개리 겐슬러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도 전날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스테이블코인과 관련해 거래소를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표방하는 '담보 자산'이 또다시 코인으로 지정될 경우 언제든지 동반 폭락이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스테이블 코인 테라(UST)의 지불준비금은 대부분이 루나다. 코인의 담보가 코인인 셈이다. 반면 UST의 경쟁자로 꼽히는 테더(USDT)는 발행량과 동일한 가치의 달러화나 채권 등 '실물자산'을 지불준비금으로 보유하고 있음을 인증해왔다. 권 대표가 테라(UST)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비트코인을 대량 구매를 선언한 것도 또 다른 '보완재'를 갖추기 위함으로 풀이된 배경이다.

다만 당국이 직접 나서서 할 수 있는 영역은 없다. 발행 코인 자체에 대한 규제 근거가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에 없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법이 만들어지면 범위 내에서 당국이 규율을 할 수도 있겠지만 코인은 민간에 자율로 맡겨져 있는 영역으로 당국이 개입할만한 법적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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