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생약·한약제제 구분 삭제한 식약처 고시 환영하며

머니투데이 최혁용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한의사 2022.05.13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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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이 골관절염 치료를 위해 처방하는 신바로캡슐과 레일라정, 급성기관지염 치료를 위해 처방하는 브론패스정이라는 전문의약품이 있다.

신바로캡슐은 자생한방병원에서 장기간 사용한 '청파전'이라는 한약(오가피, 우슬, 방풍, 두충, 구척, 흑두 등으로 구성)을 근거로 녹십자가 개발한 천연물신약이며 레일라정은 한의사 고 배원식 선생이 방제한 '활맥모과주'(모과, 당귀, 방풍, 속단, 오가피, 위령선, 육계, 진교, 천궁, 천마, 홍화 등으로 구성)를 근거로 한국피엠지제약이 개발한 천연물신약이다.



브론패스정은 한의학 의서에 수록된 '청상보하탕'(천문동, 오미자, 목단피, 황금, 행인, 백부근 등으로 구성)을 근거로 한림제약이 개발해 2021년 4월 신약으로 허가받아 11월 보험약가에 등재되며 발매됐다.

분명히 한방원리로 한의사들이 만들어 사용한 한약을 토대로 개발된 신약인데 이 천연물신약들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품목허가 시 '한약제제'가 아닌 '생약제제'로 구분되는 바람에 한의사가 사용하지 못한다. (약사법에 한약제제는 한방원리에 따라 배합제조된 의약품으로 정의되고 식약처 고시에 생약제제는 서양의학적 입장에서 본 천연물제제로 돼 있다.)



한의사들은 한방원리에 따라 제조된 한약이 식약처 고시에 따른 품목허가 과정에서 생약제제로 분류됨으로써 의사만이 이를 처방할 수 있고 한의사의 면허범위를 제한한다며 해당 고시의 무효를 주장했다. 그리하여 벌어진 사건이 '2014누2029 고시무효확인' 소송이다.

법원은 해당 고시의 처분성이 없음을 이유로 대상적격을 인정하지 않았고 원고의 고시무효확인을 구할 법률상 이익이 없음을 이유로 원고적격도 인정하지 않아 소를 각하했다.

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의료이원화 체계에서 의약품을 한방원리와 서양의학적 원리로 구분해 품목허가하는 고시 자체에는 문제가 없음을 설시했고 이 판결을 계기로 한의사들은 천연물신약이 한약제제로 구분된 품목허가를 통과해야만 한의사가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런데 지난 4월11일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개정 고시한 '한약(생약)제제 등의 품목허가·신고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고시'(식품의약품안전처 고시 제2022-30호)에서 해당 규정 별표1의 한약(생약)제제의 품목허가 구분에서 중요한 변화가 이뤄졌다. 개정 전 품목허가의 구분에 생약제제, 한약제제로 표시된 부분이 모두 삭제됨으로써 품목허가 과정부터 생약제제와 한약제제로 구분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게 된 것이다. 원래 식약처의 기본입장이기도 하다. 의약품이 안전하고 유효한지를 평가하는 기관이 식약처다. 그 의약품을 누가 쓰는지는 관여할 이유가 없다. 식약처는 개정 전 고시에 대해서도 의약품이 기계적·자동적으로 생약제제, 한약제제로 분류된다거나 특정 의약품에 대한 한의사의 처방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는데 아예 고시를 개정해 생약제제와 한약제제의 구분을 삭제해버린 것이다. 이제 한방원리를 근거로 한 제조의약품임에도 불구하고 품목허가에 표시된 생약제제라는 구분 때문에 한의사가 사용할 수 없다고 하는 불합리는 사라질 전망이다.

도구는 공유돼야 한다. 의약품도 의료기기도 도구일 뿐이다. 의사가 서양의학적 원리로 도구를 사용하면 (양방)의료행위가 되고 한의사가 한의학적 원리로 같은 도구를 사용하면 한방의료행위인 것이다. 이런 해석이 상호협진과 학문의 융복합발전에도 더 큰 도움을 준다.

한의사들도 한약을 기반으로 과학적으로 개발되고 발전되는 형태의 의약품에 대해 반드시 한의사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배타적 태도를 버려야 한다. 각자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의료행위와 한방의료행위가 함께 이뤄지도록 공존하는 것이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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