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소부장 육성책 효과 봤다…국산화 결실 이끈 '이것'

머니투데이 오문영 기자 2022.05.10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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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민관합동으로 조성된 반도체 펀드가 중소 중견기업 투자로 핵심 소재의 국산화를 이뤄내는 등 성과를 다수 일궈낸 것으로 확인됐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산업 동반 성장의 첫 모범 사례가 나왔다며 고무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약점으로 지적돼온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을 강화하는 한편 대기업 중심의 기존 관성에서 벗어나 지속 성장을 이어갈 기반을 확보했다는 평가다.

'기대치 상회' 초과 조성…투자도 대부분 집행
반도체 소부장 육성책 효과 봤다…국산화 결실 이끈 '이것'


9일 한국성장금융 등에 따르면 과거 민간자금과 정책자금의 공동출자를 통해 형성됐던 2개의 반도체 펀드(반도체 성장 펀드·시스템반도체 상생 펀드)가 당초 목표를 뛰어넘는 수준의 규모로 초과 조성된 것으로 파악됐다. 투자 집행은 대부분 마무리된 상황이다.



2017년 3월에 조성된 반도체 성장 펀드는 총 2438억원 규모로 초과 조성됐다. 당초 목표였던 2000억원보다 400억원 가량 많다. 이 펀드는 중소·중견 업체 위주로 구성된 반도체 전후방 사업에 집중 투자해 산업 전반의 생태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에 따라 민관이 공동 출자해 만든 펀드다.

현재까지 총 87건, 2149억5000만원 투자가 완료됐다. 투자건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블라인드 펀드에서 팹리스 분야에 약 731억3000만원(36건), 반도체 장비 분야에 129억원(10건), 반도체 소재 분야에 217억5000만원(9건), 응용 신성장 분야에 357억4000만원(28건)이 투자됐다. 프로젝트 펀드의 경우 시스템반도체 분야 282억7000만원(2건), 공정·장비 분야 201억6000만원(1건), 소재 분야 230억원(1건) 등이다.



반도체 소부장 육성책 효과 봤다…국산화 결실 이끈 '이것'
'국내 시스템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 아래 2020년 4월 조성된 시스템반도체 상생 펀드도 본래 목표치(1000억원)를 상회해 꾸려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500억원·300억원을 출자했고, 성장사다리펀드 200억원을 포함해 총 1201억원이 조성됐다.

시스템반도체 상생 펀드는 총 4개의 하위펀드가 조성돼 27건, 총 390억9000만원의 투자가 집행됐다. 팹리스 분야에 208억9000만원(12건), 파워반도체 분야에 10억원(1건), 디자인하우스 분야에 68억9000만원(5건), 응용 신성장 분야에 103억1000만원(9건) 등이다. 하위펀드는 모두 블라인드 펀드다.

소재 국산화 등 성과 잇따라…"韓 반도체 약점 보완"
펀드조성 초기에 이뤄진 투자건을 중심으로 성과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대표적 성과로는 TEMC 사례가 꼽힌다. TEMC는 충북 소재 반도체 특수가스 전문회사로 2017년 11월과 2020년 8월에 반도체 성장 펀드로부터 각 30억원씩 두 차례 투자를 받았다. 업계 관계자는 "2019년에 일본의 핵심 소재 수출 규제가 벌어지면서 국내 소부장 육성과 핵심 소재 국산화 필요성이 대두됐다"며 추가 투자 배경을 설명했다.


TEMC는 투자금을 토대로 2020년 반도체 식각 공정 등에 사용되는 에칭가스의 공동개발을 조기 완료하고 양산에 돌입했다. 에칭가스는 반도체 제조 중 회로의 불필요한 부분을 정교하게 깎아내는 기능을 하는 핵심 소재다. 올해 하반기부터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의존도가 큰 반도체용 희귀가스 네온을 국산화해 국내 공급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현재 코스닥 상장도 앞두고 있다.

반도체 소부장 육성책 효과 봤다…국산화 결실 이끈 '이것'
영창케미칼도 2018년 7월 반도체 성장 펀드로부터 20억원을 투자받아 일본에 의존하던 포토레지스트를 국산화하는 성과를 냈다. 포토레지스트는 반도체 제조 첫 단계인 노광 공정에 쓰이는 소재다. 액체상태의 포토레지스트를 웨이퍼 표면에 바른 뒤 빛을 쏴 회로를 그린다. 영창케미칼은 국산화한 포토레지스트를 현재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에 공급 중이다.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도 성과가 나왔다. 반도체 IP(설계자산) 플랫폼 전문회사인 오픈엣지테크놀로지 얘기다. 이 회사는 2017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출신의 설계 인력이 모여 설립한 업체다. 반도체 설계도인 IP를 제작해 팹리스(반도체 설계회사)들로부터 수수료와 로열티를 수취하는 것이 업이다. 반도체 성장 펀드와 시스템반도체 상생 펀드로부터 총 25억원을 투자 받았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오픈엣지테크노로지는 설립 이후 2022년 1월까지 글로벌 반도체 제조업체와 총 27건 이상의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해에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법인을 설립해 최고급 연구 인력을 확충하고 있다. 국내 반도체 업계 최초로 예비기술성평가에서 AA등급을 받아 올해 한국거래소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할 예정이다.

업계 한 인사는 "중소기업은 투자를 통해 성장하고 대기업은 해외에 의존하던 소재·부품·장비의 국내 공급처를 확보할 수 있는 반도체 산업 동방 성장의 모범 사례"라 평가했다. 이어 "특히 대기업·메모리반도체 편중이라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약점을 보완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면서 "추가 펀드 조성을 통해 성과 창출을 지속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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