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거 "증시나 경마장이나, 돈번 사람의 특징은 하나" [김재현의 투자대가 읽기]

머니투데이 김재현 전문위원 2022.05.07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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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멍거의 투자철학②

편집자주 대가들의 투자를 통해 올바른 투자방법을 탐색해 봅니다. 먼저 찰리 멍거의 '가난한 찰리의 연감'(Poor Charlie's Almanack)을 통해 멍거의 투자철학을 살펴봅니다.

2022년 버크셔 해서웨이 주총 현장에 전시된 '가난한 찰리의 연감' 입간판/AFP=뉴스12022년 버크셔 해서웨이 주총 현장에 전시된 '가난한 찰리의 연감' 입간판/AFP=뉴스1


찰리 멍거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경마와 주식투자의 성공 비결이 똑같다고 말한다. 주식투자가 도박으로도 인식되는 경마와 똑같다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기 쉽지만, 알고 보면 멍거가 맞다.

대다수 국가에서 경마는 1867년 조세프 올러(Joseph Oller)가 창안한 패리 뮤추얼(Pari mutuel, 영어로는 mutual betting)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즉 이긴 말에 베팅한 전체 금액 중 비용과 수수료, 즉 하우스 몫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배당률에 따라서 나누어 주는 방식이다.



패리 뮤추얼 방식은 경마, 그레이하운드 경주, 하이 알라이(Jai alai·스페인 스쿼시) 등 비교적 짧은 시간에 순위가 결정되는 스포츠 게임에서 채택됐으며 약간 수정돼서 일부 복권에서 사용되기도 한다.

패리 뮤추얼은 말 그대로 상호(mutual) 간의 내기(betting)다. 다른 사람들의 베팅에 따라 배당률이 달라지기 때문에 우승확률이 높으면 배당률은 낮아지고 우승확률이 낮으면 배당률이 높아진다.



/사진=한국 마사회의 '경마를 처음 시작하는 분들을 위한 교안서' 캡처/사진=한국 마사회의 '경마를 처음 시작하는 분들을 위한 교안서' 캡처
한국 마사회에서 발간한 '경마를 처음 시작하는 분들을 위한 교안서'에서도 경마가 "총 베팅금액에서 시행체에 수수료를 공제하고 그 잔액을 경기결과를 맞힌 사람들이 나누는 방식, 즉 패리 뮤추얼 제도로서 주식시장과 비슷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베팅마다 27%를 공제(단식과 연식은 20%)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패리 뮤추얼이 배당률이 미리 정해진 고정배당률(fixed odds) 게임과 다른 점은 베팅이 종료되기 전까지 배당률이 결정되기 않기 때문이다. 또한 경마가 정태적(static) 패리 뮤추얼 방식이라면 주식시장은 동태적(dynamic) 패리 뮤추얼 방식이다. 마권 판매 마감 이후 배당률이 결정되는 경마와 달리 주식시장은 마감이 없기 때문에 배당률이 끊임없이 바뀐다.

가끔씩 경마에서 100배가 넘는 고배당이 나오지만, 100배나 되는 대박을 잡은 사람은 100분의 1 확률에 베팅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경마에서 정부가 세금, 운영비 등으로 27%를 떼가기 때문에 137분의 1 확률을 맞춰야 100배를 벌 수 있다.


주식시장의 패리 뮤추얼, 철도주식과 IBM
멍거는 주식시장이 경마의 패리 뮤추얼 방식만큼 효율적이라고 말한다. 인기 있는 주식이 장기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지만, 이 주식에 베팅한 사람이 반드시 수익을 얻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멍거가 예로 든 건, 미국 철도주식과 IBM이다. 철도주식은 경쟁 기업과 강성 노조로 인해서 PBR(주가순자산비율)이 0.33배에 불과하지만, IBM주식은 전성기때 PBR이 6배에 달했다. 누구나 IBM의 사업 전망이 철도주식보다 좋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이들이 IBM에 베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격을 고려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과연 PBR 6배인 IBM을 매수하면 PBR 0.33배인 철도주식을 매수하는 것보다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을까? 글쎄다.

벌링턴노던 산타페(BNSF) 기차/사진=BNSF 홈페이지 캡처벌링턴노던 산타페(BNSF) 기차/사진=BNSF 홈페이지 캡처
멍거의 철도주식과 IBM 주식 비교가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르지만, 2009년 버크셔 해서웨이는 미국 2위 철도회사인 벌링턴 노던 산타페(BNSF)를 약 440억 달러에 인수했다. 당시만 해도 대표적인 굴뚝산업으로 치부되는 철도기업을 왜 인수하는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했지만, 십몇 년이 지난 지금 BNSF는 버핏이 자랑스러워하는 투자가 됐다.

올해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서한에서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의 가치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4대 거인으로 '보험사업' '애플 지분' 'BNSF' '버크셔 해서웨이 에너지'를 꼽았다.



특히 버핏은 세 번째 거인인 BNSF가 미국 상업의 대동맥 역할을 하면서 버크셔 해서웨이뿐 아니라 미국에게 없어서는 안 될 자산이 됐다면서 만약 BNSF가 운송하는 물량을 트럭이 운반한다면 미국의 탄소배출이 그야말로 급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21년 BNSF의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88억 달러와 60억 달러를 기록했으며 이는 전년 대비 각각 14%, 16% 늘어난 규모다. 버핏은 2021년 BNSF의 운송거리와 화물운송량이 1억4300만 마일과 5억3500만톤에 달한다고 자랑스럽게 밝혔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2019년까지 310억 달러를 이미 배당금으로 회수했으며 BNSF 지분 가치는 2020년 8월 기준, 약 105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미국 S&P 500 지수 상승폭과 영업이익 증가폭을 고려하면 지금 BNSF의 기업가치는 훨씬 더 높을 것이다.



한국 경마 역대 최강마, 당대불패 배당률은 1배까지 하락
국내 최강마 당대불패(기수 조성곤)가 2011년 11월 대통령배 대상경주에서 2연패에 성공하고 있다./사진=한국 마사회국내 최강마 당대불패(기수 조성곤)가 2011년 11월 대통령배 대상경주에서 2연패에 성공하고 있다./사진=한국 마사회
다시 경마로 돌아가보자. 한국 경마에서 역대 최강마였던 '당대불패'는 전성기였던 2012년 단승식(우승마를 맞추는 방식) 배당률이 1.2배까지 떨어졌다. 1000원을 걸었을 때, 1등을 해도 1200원 밖에 못 받는다는 얘기다. 3등 안에 들어올 말을 맞히는 연승식 배당률은 1.0배였다. 1000원을 걸었을 때 1000원을 받는 경우로 사람들이 당대불패가 3등 안에 진입할 가능성을 100%로 봤다는 의미다.

2012년 9월 9일 오너스컵(Owners' Cup, GⅢ) 경마대회 결과 및 배당률/자료=한국 마사회2012년 9월 9일 오너스컵(Owners' Cup, GⅢ) 경마대회 결과 및 배당률/자료=한국 마사회
좋은 기업을 매수하거나 좋은 말에 건다고 해서 시장수익률을 초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럼 패리 뮤추얼 베팅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멍거는 지금까지 패리 뮤추얼 시스템에서 돈을 번 사람들의 특징으로 한 가지를 꼽았다.

"돈을 번 사람들은 자주 베팅하지 않는다."(They bet very seldom) 그들은 주식시장이나 경마를 유심히 관찰하지만, '가격이 잘못 매겨진 베팅'(mispriced bet) 기회를 발견할 때까지 꿈쩍도 하지 않는다.



1993년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에서 멍거와 버핏이 패리 뮤추얼과 경마에 대해 한 말을 살펴보자.(2019년 출판된 '워런 버핏 라이브'에서 인용)

▶멍거: 애널리스트는 현금흐름을 예측하려고 방대한 과거 데이터를 살펴보지만(IQ가 높을수록 더 많은 데이터를 살펴보지만) 시간 낭비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투자는 패리 뮤추얼 베팅에서, 예컨대 확률은 50%인데 배당은 3배인 곳에 돈을 거는 것과 같습니다. 가치투자는 '가격이 잘못 매겨진 도박 대상'(mispriced gamble)을 찾아내는 행위입니다.

버핏: 우리가 경마장의 말을 모두 평가하려 한다면 아무런 우위도 확보하지 못할 것입니다. 평가 대상을 잘 선택해야 우위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과거 통계나 공식에 의존하면, 실적은 화려하지만 곧 아교 공장에 팔려갈 늙은 말에 돈을 걸기 쉽습니다.◀



2009년 버핏의 BNSF 투자가 바로 '가격이 잘못 매겨진 베팅' 기회를 포착한 대표적인 사례다. 다른 투자자들이 굴뚝산업 철도기업의 미래를 비관했기 때문에 BNSF 투자의 승률은 50%지만, 배당률은 3배 이상이었다.

패리 뮤추얼 방식인 주식시장에서 진정한 기회는 누구나 기회라고 생각하는 투자보다는 소수만이 기회라고 생각하는 투자에서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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