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임금협상을 두고 해를 넘겨 이어지는 노사 갈등에 대해 삼성전자 직원들 사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직원들이 모이면 으레 등장하는 임금·복지에 대한 '불만'이 임계치를 넘어서면서 미래를 압박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올지 모른다는 '불안'을 얘기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고임금·고물가가 올해 기업 경영의 최대 복병으로 떠오른 가운데 고발을 마다하지 않으며 치킨게임을 벌이는 노조가 부른 반작용이다.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8년차 한 직원은 5일 "'연봉 정률 인상 대신 정액 인상'을 포함해 노조가 얘기하는 기계적인 인상안에 동의하지 않는 직원들도 많다"며 "노조가 세불리기를 위해 포퓰리즘 요구안으로 직원들을 현혹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모바일사업부 5년차 직원도 "그동안 경영진을 상대로 단기 성과에 급급해 미래 대비를 등한시한다고 비판해온 사람들이 일단 받을 돈부터 챙기겠다는 것을 보면 대체 뭐가 다른가 싶다"고 말했다.
부메랑 된 임금인상, 실적 우려 현실화
삼성전자 내부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 우려대로 과도한 임금인상의 후폭풍이 실적 타격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전망은 임금인상 전쟁이 먼저 시작된 IT·게임업계에서 이미 현실화한 분위기다. 전날 시장 전망에 못 미치는 1분기 실적을 발표한 카카오를 두고 인건비를 포함해 지난해보다 36% 늘어난 영업비용이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개발자 등 직원들의 몸값은 부쩍 높아졌는데 사업 실적이 그만큼 따라주지 못하면서 고정비 부담이 커졌다는 것이다. 카카오의 지난해 직원 평균 보수(스톡옵션 등 포함)는 1억7200만원으로 IT업계 최고 수준이었다. 지난해 카카오 직원들의 급여총액은 5180억원으로 전년(2920억원)보다 77% 뛰었다.
네이버도 지난달 21일 발표한 1분기 실적이 시장 전망치를 10%가량 밑돌면서 비상사태에 들어갔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실적 발표 후 콘퍼런스콜(실적설명회)에서 "올해부터 인건비를 포함해 비용 효율화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보다 15% 이상 뛴 인건비와 복리후생비 등이 실적을 발목 잡았다는 인식을 드러낸 발언이다.
☞ 5월5일 보도 '"숨만 쉬어도 삼성과 격차"…공정이 부른 임금파행' 참조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의 경우 기업 규모와 사업 특성상 이런 영향이 더 클 수 있다고 지적한다. 주력 사업인 반도체 부문 투자액이 연간 영업이익에 육박할 정도로 커지는 상황에서 한번 올리면 되돌리기 힘든 임금의 압박은 실적과 투자 모두를 발목 잡을 수 있다는 얘기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인건비는 15조8450억원으로 전년보다 20.3% 늘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반도체·모바일·가전 등 다양한 분야의 사업을 하기 때문에 개발자 중심의 네이버·카카오나 메모리반도체 위주의 SK하이닉스에 비해 임금 구조가 복잡해 일괄적으로 임금을 대폭 올리기가 쉽지 않다"며 "다른 기업들보다 기본급을 바탕으로 한 성과급도 많아 11만여명의 임직원 연봉을 두자릿수 인상할 경우 인건비 부담이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용도 발목…임금 양극화, 사회적 갈등 비용으로
대기업 위주의 임금 인상으로 대·중소기업간 임금 양극화이 심해지는 데 대한 경고음도 울린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임금근로자 월평균 임금은 대기업이 924만8000원, 중소기업은 382만2000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2배였던 임금 격차가 2.4배로 확대됐다. 기업이 인재 확보를 위해 연봉을 올리는 건 해당 인재들에게는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연봉 메이저 리그에 편입된 극소수만 고액 연봉을 누리는 양극화 구조가 사회 전반의 갈등 비용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IT 등 앞으로 시장이 커지는 산업 분야에서 임금을 둘러싼 노사 갈등은 지나가는 소나기가 아닐 것"이라며 "임금 인상 등에서 너무 경쟁적이 되면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