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에 이루지 못한 '꿈'…LG '차량 반도체'로 잇는다

머니투데이 오문영 기자 2022.05.05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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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LG전자 여의도 LG트윈./사진제공=LG전자LG전자 여의도 LG트윈./사진제공=LG전자


LG그룹이 다시 반도체 시장에 진출할 수 있을까. LG의 못다 이룬 반도체 꿈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LG전자 (92,100원 ▼5,100 -5.25%)가 차량용 반도체를 직접 설계하고 검증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하면서다.

업계는 LG가 최근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에 골머리를 앓아온 만큼 공급망 내재화에 대해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LG그룹은 외환위기(IMF) 당시 정부 주도의 빅딜로 LG반도체가 현대전자(현 하이닉스)에 흡수합병되면서 반도체 사업을 접었었다.



LG전자 '車반도체' 설계 역량 확보…국제 기술인증 받아
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LG전자는 최근 ECU(전자제어장치), MCU(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 PMIC(전력관리반도체) 등 차량용 반도체 개발 프로세스를 구축했다.

독일 시험·인증 전문기관 TUV 라인란드로부터 'ISO 26262' 인증을 받은 것이다. ISO 26262는 ISO(국제표준화기구)가 차량에 탑재되는 전기·전자 장치의 시스템 오류로 인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제정한 자동차 기능안전 국제표준규격이다.



LG전자가 최근 독일 시험·인증 전문기관 TUV 라인란드로부터 차량용 반도체 개발 프로세스에 대한 ‘ISO 26262’ 인증을 받았다. 김진경 LG전자 SIC센터장 상무(왼쪽)가 프랭크 주트너 TUV 라인란드 코리아 대표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제공=LG전자LG전자가 최근 독일 시험·인증 전문기관 TUV 라인란드로부터 차량용 반도체 개발 프로세스에 대한 ‘ISO 26262’ 인증을 받았다. 김진경 LG전자 SIC센터장 상무(왼쪽)가 프랭크 주트너 TUV 라인란드 코리아 대표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제공=LG전자
LG전자가 받은 등급은 자동차 기능안전성 가운데 최고 수준인 ASIL(자동차안전무결성수준)-D다. ASIL은 사고의 심각도, 발생빈도, 제어가능성 등에 따라 최저 A등급에서 최고 D등급까지 4단계로 분류된다. D등급은 1억 시간 동안 연속 사용했을 때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고장을 1회 이하로 관리하는 가장 엄격한 등급이다.

프랭크 주트너 TUV 라인란드 코리아 대표는 "LG전자가 차량용 반도체 개발 프로세스를 성공적으로 구축하고 기능안전성까지 확보해 앞으로 미래 자동차 산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진경 LG전자 SIC센터장(상무)는 "빠르게 IT(정보통신)기기화 되고 있는 자동차의 핵심 부품인 차량용 반도체의 기능안전성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개발할 수 있는 체계와 역량을 지속적으로 확보해 나갈 것"이라 밝혔다.


내재화 가능성 거론…공급망 문제에 흑자전환 발목
LG전자는 지난해 말부터 차량용 반도체 개발 사업을 추진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반도체 공급난으로 생산 차질을 빚는 자동차 시장에 대응해 반도체 공급망을 내재화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됐다.

업계에서는 LG전자가 차량용 반도체 개발 역량 확보를 계기로 공급망을 내재화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이르면 1~2년 안에 자체 반도체 칩을 생산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업계 한 인사는 "직접 만든 반도체를 VS(자동차전장)사업본부와 전장사업 자회사, 합작사 등에 공급한다면 공급망을 보다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성동구 장안평 중고차 매매시장 모습./사진=뉴스1서울 성동구 장안평 중고차 매매시장 모습./사진=뉴스1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2020년 말부터 자동차 수요가 가파르게 회복하면서 극심한 칩 부족 현상을 겪는 중이다. 글로벌 주요 완성차 업체들은 MCU 등 수급 문제로 자동차 생산을 중단하거나 납품 일정을 연기하는 상황이다. VS사업본부, 엘지 마그나 이파워트레인, ZKW를 통해 자동차 부품 사업을 진행 중인 LG전자도 이 여파를 피하지 못했다.

특히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은 VS사업본부의 흑자전환 시기가 늦춰진 주요 요인으로 꼽혔다. 지난해 연초부터 VS사업본부의 흑자전환 전망이 시장에서 잇따라 나왔으나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실현되지 못했다. LG전자는 당시 "차량용 반도체 부족에 의한 완성차 생산 감소, 반도체 관련 구매비용 상승, 수급불안에 따른 운용비용 증가 때문"이라며 전장사업 흑자전환이 지연된 사유를 설명했다.

다만 LG전자가 당장에 반도체 판매 사업에 뛰어들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LG전자 관계자는 "내재화 여부에 대해서는 검토 중인 상황"이라면서도 판매 사업 진출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야기되는 것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강제 빅딜에 울었던 LG…車반도체로 숙원 풀까
LG전자가 차량용 반도체 개발 역량을 확보하면서 LG그룹이 20여년 전 반도체 사업을 접었던 일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LG그룹의 반도체사업은 1979년 대한전선 계열 대한반도체 인수를 기점으로 시작됐다. 10년 뒤 고 구본무 회장이 금성일렉트론을 설립하면서 사업이 본격화했고, 경북 구미와 충북 청주에 생산거점도 마련했다. 이후 럭키금성이 1995년에 LG로 그룹명을 바꾸면서 금성일렉트론도 LG반도체로 사명을 변경했다. 당시 1995년 순이익은 9000억원에 달했다.

주력으로 키우던 반도체 사업을 포기하게 된 것은 IMF 위기 때문이었다. 1999년 정부 주도의 빅딜로 현대전자에 LG반도체를 넘기게 된다. 구 회장과 구 회장의 아버지 구자경 명예회장이 당시 이를 격렬히 반대했으나 , 정부와 전경련의 압박에 울며겨자먹기로 LG는 반도체 사업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회사를 넘긴 탓에 구 회장의 상심이 컸다고 전해진다.



이후 반도체 웨이퍼 생산회사인 'LG실트론'을 2017년 SK그룹에 매각했고, 지난해 5월 실리콘웍스(현 LX세미콘)가 계열분리되면서 LG그룹은 반도체 사업에서 손을 떼게 됐다.

재계 관계자는 "과거의 뼈아픈 기억과 LG전자가 만드는 다수의 제품에 반도체가 들어간다는 이유로 언젠가 LG가 반도체 사업을 재추진할 것이란 기대가 있어왔다"면서 "반도체 사업의 미래 중요성을 인식하고 LG전자도 반도체 개발을 지속해온 것으로 이해된다"고 말했다. 이어 "시스템반도체 분야가 LG그룹의 M&A 대상으로 꾸준히 거론돼온 이유"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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