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의 '괴이', 한배를 탄 멜로와 오컬트

머니투데이 박현민(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2.05.02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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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티빙사진제공=티빙


오컬트(occult)는 호불호가 뚜렷한 장르다. 초자연적인 현상, 악마나 악령 등 소재 자체가 갖는 독특한 결 때문이다. 일상에서는 흔히 겪기 힘든 기이한 세계관을 통한 자극이 무료한 삶에 신선한 영향으로써 작용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섬뜩한 무언가가 유발하는 그 찝찝함을 굳이 시간을 할애해 느끼고 싶지 않은 이들도 상당하다. 지난달 29일 6편 전 편을 동시 공개한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괴이'는, 아무래도 이들 중 전자를 주요 타깃으로 한 작품이다.

이들에게 '괴이'는 소재 자체로 이미 매력적이다. 희소한 한국형 오컬트를 표방한 '괴이'는 귀불이라는 괴상한 존재를 통해, 도시에서 떨어져 고립되기 용이한 진양군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순식간에 공포 한가운데로 몰아넣는다. 사람들은 그저 귀불의 눈을 보는 것 자체로 현혹되며, 머지않아 자신만의 끔찍한 지옥을 경험하고 만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변의 모두에게로 혈흔이 낭자하게 번져나간다.



'괴이'는 어디선가 갑자기 툭하고 튀어나온 작품이 아니다. 이미 영화 '부산행', '반도',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 등을 통해 디스토피아에 특화된 연상호 감독이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나 홀로 그대' 류용재 작가와 공동으로 집필한 시리즈다. 연상호 감독은 종종 자신의 연출작 외에도 tvN 드라마 '방법', 영화 '방법: 재차의' 등처럼 각본가로서 이름을 올린 적이 있는데, 이 작품 '괴이' 역시 이러한 작업의 연장선상인 셈이다.

사진제공=티빙사진제공=티빙


연상호 작품의 세계관은 서로 긴밀하게 맞닿아 있기로 유명한데, 사람들을 이를 '연니버스'로 통칭한다. '연니버스'에 익숙한 사람이면, '괴이'의 배경이 되고 있는 '진양군', 그리고 핵심 소재인 '귀불'이 낯익다. 진양군은 영화 '부산행'에서 좀비 바이러스가 최초로 창궐한 지역으로 언급된 바 있으며, 귀불은 드라마 '방법' 9화에서 악귀가 씐 불상으로 등장해 다른 악의 접근을 막는 위력으로 진종현(성동일)이 소진(정지소)의 '방법'을 막는 장치로 활용됐다. '괴이'와 '방법' 모두에서 조선중기 설화집 '어우야담'에 귀불 관련 내용이 수록됐다는 내용이 작중에 등장하며, 발견 장소도 천보산으로 정확히 일치한다. 다만, 두 작품간 캐릭터 및 내용적 별도 연결고리는 아쉽게도 부재하다.

연상호 감독이 이를 단순 '재활용' 정도로 국한한 탓이다. 그는 "'방법'에서 사용한 귀불이라는 소재를 '한 번 더 써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해 이번 집필 작품인 '괴이'에 사용했다", "불길한 일이 일어나는 공간을 '진양'으로 설정하고 있다"라고 직접 설명을 덧붙인 바 있다. 언젠가 지금보다 좀 더 '연니버스'가 탄탄하게 전개돼 이러한 미세한 접점들이 어떠한 형태로든 매력적으로 발현될 것이라는 기대는 여전히 남아있다.

배우 구교환은 '괴이'의 기대치를 사전에 끌어올린 핵심 존재다. 이미 연상호 감독과 영화 '반도'를 통해서 한차례 호흡을 맞췄던 그는, 극중 악역이던 '서대위'를 굉장히 이색적인 캐릭터로 형상화해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데뷔 첫 상업영화이기도 했던 '반도'를 거쳐 이제는 충무로의 대체불가 존재로 올라선 구교환의 차기작이 '괴이'라는 사실은, 오컬트 장르에 취약한 이들조차 시청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 만큼 매력적인 뉴스였다. 그가 맡은 고고학자 정기훈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올라간 것은, 이미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 적잖은 기대를 구교환이 역할과 연기, 모든 면으로 충족시켜줬다는 점이다.


사진제공=티빙사진제공=티빙
'괴이'의 스토리는 평이하고, 전개는 진부하다. 피가 흩뿌려지는 반복되는 '끔살'을 제외하면, 불현듯 소름이 돋거나, 엔딩 후에 섬뜩한 후유증도 남지 않는다는 것도 왠지 허전하다. 단조로운 구성 내에서 예상 가능한 범주에서 착실하고 정석대로 굴러갈 따름이다. 다수의 작품을 통해 학습이 축척된 오컬트 마니아라면, '괴이'는 상대적으로 평온한 작품 정도로 느껴진다. 하지만 오컬트라는 장르에 갇히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작품을 확장해 바라보면 반응이 좀 달라질 수 있다.

'괴이'의 뿌리는, 사실 '멜로'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피어나는 관계성, 특히 주인공 부부인 정기훈(구교환)과 이수진(신현빈) 사이의 복잡한 감정선의 변화에 더 주목해야할 이유다. 연상호 작가는 애초에 '괴이'를 '부부애가 담긴 멜로물'로 집필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스토리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오컬트 요소가 삽입됐고, 그러한 탓에 전작과 유사한 결과물이 탄생했다. 오컬트에 멜로가 들어간 게 아닌, 멜로에 오컬트 요소가 가미됐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멜로는 오컬트 장르로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작품에 의외의 변곡점을 부여했다. 멜로와 오컬트가 한배를 탄 생소한 장르인 '괴이'를, 우리는 '멜로컬트'(멜로+오컬트) 정도라 부르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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