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로 착각" 사람 쏜 사냥꾼, 살인죄 아닌 과실치사 적용…왜?

머니투데이 김성진 기자 2022.05.03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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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산 인근에서 한 엽사가 택시기사를 멧돼지로 착각해 총으로 쏴 숨지게 한 사고가 났다. 이런 '오인 사고'는 해마다 발생한다. 총이 '살상 도구'인 만큼 안전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격 대상 확인도 않고 사격? 엽사 자질 부족"
/사진=임종철 디자이너/사진=임종철 디자이너


지난달 28일 저녁 8시쯤 서울 은평구 북한산 주변 도로에서 70대 택시기사가 엽사 A씨(72)가 쏜 총에 맞아 숨졌다. 택시기사는 구기터널 인근 도로에 택시를 세워놓고 등산로 안으로 약 5m 들어가 소변을 보던 중 총에 맞았다.



A씨는 사고 직후 119에 직접 신고를 했고, 출동한 경찰에게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당시 A씨는 서울 종로구의 한 파출소에서 총기를 받아 멧돼지 사냥을 하던 중이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택시기사를 멧돼지로 착각했다"고 진술했다고 전해졌다.

당시 현장 주변의 가로등과 택시의 전조등 모두 꺼졌었다. 경찰은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법원은 지난 2일 "증거를 인멸하고 도망칠 염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사고가 난 4~6월은 멧돼지들 출산기다. 새끼를 평균 10~12마리, 많게는 15마리 낳는다고 한다. 멧돼지 암컷들이 예민한 시기라 짐승과 사람을 무차별 공격하니 엽사들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30여년 멧돼지 사냥을 한 성기근씨(62)는 "이 시기 엽사들도 극도의 긴장감 속에 수렵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극심한 긴장 속에 사냥을 했더라도 사람을 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게 다른 엽사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37년 멧돼지 사냥을 한 박모씨(58)는 "어둑한 시간이었지만 요즘은 사냥꾼들도 야간투시경과 손전등을 가지고 다닌다"며 "사격 대상을 제대로 확인도 않고 사격한 것은 사냥꾼의 자질이 부족한 것"이라 말했다.

현재 A씨에 대해선 살인죄가 아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적용됐다. A씨에게 '살해 고의'는 없었기 때문이다. 업무상 과실치사는 5년 이하의 징역형이 선고된다. 만약 살인죄가 적용된다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이 선고된다.


형사법 전문인 이민 법무법인 창과방패 변호사 "피해 유족에게 금전 보상 등 피해 회복을 한다면 형량이 더 낮아질 수 있을 것"이라 분석했다.

전국에 면허가진 수렵꾼 3만명..."숙련도 차이 있어, 자질 강화해야"
/사진=임종철 디자이너/사진=임종철 디자이너
오인 사격 사고는 매년 발생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총기 사고는 2016년 18건, 2017년·2018년 15건, 2019년 16건, 2020년 8건으로 꾸준히 발생했다. 오인사고의 비중이 크다. 2020년에 고의 사고는 3건, 오인 사고는 5건이었다.

지난해 7월에도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밤 11시쯤 57세 엽사가 불과 6m 떨어진 복숭아밭에서 일하던 70대 농부를 멧돼지로 착각하고 엽총으로 쐈다. 2020년에도 충청남도 청양군에서 한 엽사가 동료 엽사를 멧돼지로 착각해 총을 쐈고, 총에 맞은 동료는 사망했다.

총기 관리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환경부에 따르면 수렵을 하려면 지자체의 수렵면허와 경찰의 총포 소지허가를 받아야 한다. 멧돼지, 고라니 등 유해조수를 사냥하려면 지자체의 포획·채취 허가를 추가로 받아 '유해조수 피해방지단'에 속해야 한다. 지난해 기준 전국 유해조수 피해방지단에 속한 엽사는 5246명이다. 서울에도 피해방지단에 엽사 57명이 속해 있다.

허가만 받으면 별다른 제한 없이 멧돼지 사냥을 할 수 있다. 총기 사고가 잇따르자 경찰이 수렵 안전을 위해 2015년 '2인 1조' 규칙을 만들었지만 엽사들 반발에 부딪혀 2018년 폐지했다.

허가 받은 엽사들마다 '숙련도 차이'가 있다는 점도 문제다. 박씨는 "수십년 사냥 경력이 있어도 '멧돼지 사냥'은 경험 해본 적이 없거나 해봤더라도 주도적 역할을 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그런 경우 혼자서 멧돼지 사냥에 나섰다간 사고를 낼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1인 사냥'을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씨는 "베테랑 엽사들은 대부분 사냥개 최소 두마리씩 동행한다"며 "사냥개들이 멧돼지를 붙잡으면 사격대상을 충분히 확인한 후 엽총으로 사격하는 방식"이라 말했다.

허가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엽사들의 자격과 책임 의식을 강화해야 한다"며 "재교육과 재심사도 보다 엄격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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