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금융권과 경찰에 따르면, 우리은행 기업개선부 차장 A씨는 2012~2018년 사이 옛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 관련 계약금을 보관한 에스크로 계좌에서 원금 578억원과 이자 등 약 615억원을 세 차례에 걸쳐 전액 횡령한 혐의(특경가법상 횡령)로 전날 밤 경찰에 긴급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다. 우리은행도 자체 검사를 진행 중이며, 금융감독원은 이날부터 직원을 파견해 검사에 착수했다.
당시 대우일렉 매각은 엔텍합의 인수자금 조달 가능성에 대한 의문과 채권단과의 가격 이견으로 최종 계약(SPA)을 맺지 못 하고 좌초됐다. 엔텍합이 납부한 계약금은 채권단이 몰취해 우리은행이 별단예금(미결제 ·미정리된 일시적 보관금·예수금 등을 처리하는 일시적 계정) 등 은행 계정과는 다른 에스크로 계좌에 넣어두고 당시 M&A 업무를 담당한 기업개선 관련 부서에서 일하던 A씨가 계속 관리했다고 한다. A씨는 기업개선부에서만 10년 넘게 일했고 전날까지도 정상 출근했다. A씨는 계좌가 만들어진 직후인 지난 2012년부터 2018년까지 모두 세 번에 걸쳐 계약금 원금과 이자를 모두 빼낸 뒤 2018년 계좌를 아예 해지해 버렸다고 한다.
은행업계 기업 구조조정 전문가도 "통상 M&A 과정에서 몰취한 계약금은 채권단이 지분비율대로 나눠갖지만 이번 경우는 이란 기업이 계약금 반환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다 ISD까지 제기하는 과정에서 관리 사각지대에 방치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대우일렉 매각 당시 근무했던 기업개선 담당 직원들이 거의 퇴사하거나 부서를 이동해 계좌 존재 자체를 아는 직원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해당 계좌가 해지된 2018년 이후에는 존재하지 않는 계좌여서 내부 통제에 한계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A씨의 횡령 사실이 드러난 건 ISD 패소로 몰취한 계약금을 엔텍합에 반환하기 위해 최근 계좌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파악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는 엔텍합이 제기한 ISD에서 2019년 패소 판결을 받았으나 미국의 대이란 제재로 송금이 여의치 않아 배상금(계약금) 반환을 미뤄왔다. 이후 지난 1월 미국 정부는 배상금 송금을 특별 허가했다.
이 시각 인기 뉴스
업계에선 이번 횡령 사건이 은행 내부 통제시스템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감독당국도 횡령 금액이 워낙 큰 데다 상식적으로 발생하기 어려운 사건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사안이 엄중하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오늘부터 검사에 착수해 사실관계와 구체적인 경위를 파악할 것"이라며 "은행에서 발생한 대형 횡령 사건이어서 심각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