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 '수련이 있는 연못' 국내 첫 공개…故이건희 기증 1주년 기념전

머니투데이 유승목 기자 2022.04.27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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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고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정선·모네·정약용 등 주요 작품 총출동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전통 문화의 우수성만 되뇐다고 해서 우리 문화의 정체성이 확립되는 것은 아니다. 보통 사람들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이 정말 '한국적'이라고 느낄 수 있을 때 문화적인 경쟁력이 생긴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25년 전 자신의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문화부국에 대한 평소 철학을 이렇게 밝혔다. 그가 문화유산을 모으고 보존하는 일을 시대적 의무로 삼고, 평생을 동서고금을 막론한 걸작을 찾아 헤맨 수집가로 살아온 배경이다. 문화유산이란 그 시대를 대표하는 기술력과 으뜸되는 디자인을 한 데 집약한 결과물이란 점에서 이를 향유하는 삶을 풍요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난해 그의 유족이 2만3000여점의 문화유산과 미술품을 기증하면서 기업총수가 아닌 수집가로서 일군 성과가 드러났다. 이 회장이 남긴 기증품이 '이건희 컬렉션'이란 이름으로 공개되자 코로나19(COVID-19) '거리두기'를 뚫고 미술관 나들이 열풍이 불면서다. 비싼 여가로 치부되던 미술관람의 문턱을 낮추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누구나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흐름이 만들어진 것이다.

지난 1년여 간 2030 MZ세대는 물론 5060 중·장년층 사이에서도 미술관 '광클(빠르게 마우스를 클릭하는 것)' 경쟁을 불러 일으킨 이건희 컬렉션이 새롭게 단장했다. 이 회장 유족의 문화재·미술품 기증 1주년을 맞아 대규모 기증품을 선보이는 '어느 수집가의 초대-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이 오는 28일부터 4개월 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공동 주최한 고 이건희기증 1주년 기념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 언론공개회가 열린 27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기증작품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뉴시스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공동 주최한 고 이건희기증 1주년 기념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 언론공개회가 열린 27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기증작품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뉴시스
이번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이건희 회장의 기증품을 나눠 받은 기관들이 전부 참여, 기관마다 각개전투를 벌였던 지난 전시들과 차별화된다. 이 회장의 기증품은 2만3181점 중 2만1693점이 중앙박물관에, 1488점이 현대미술관에 기증됐고 근현대 미술품 102점은 광주시립미술관(30점), 대구미술관(21점), 양구 박수근미술관(18점), 제주 이중섭미술관(12점), 전남도립미술관(21) 등 지역미술관 다섯 곳에 나누어 기증됐다.

이번 전시에선 선사시대부터 금세기까지의 금속·도토기·전적·목가구·조각·서화·유화 등 시기와 분야를 총망라한 295건 355점의 작품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중 국보와 보물만 33점에 달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국립현대미술관은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을 내놨고, 이중섭·김환기·박수근·천경자 등 20~21세기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들이 총출동했다.

대중 공개에 앞서 27일 오전 찾은 특별전은 한국적인 문화와 정체성에 대한 그의 철학이 드러났다. 어느 수집가의 초대를 전시명으로 정한 만큼, 이번 특별전은 수집과 기증의 의미를 되새기고 그가 남긴 기증품의 다양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기획됐다. 문화유산과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전시품을 선별하고, 서로를 연결해 한국 문화의 정체성이 드러나도록 했다는 게 중앙박물관의 설명이다.


인왕제색도.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인왕제색도.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이수경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은 "미술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들을 선보인다"며 "일상이 한국적이라고 느낄 때 문화적 경쟁력이 생긴다고 했던 이건희 회장의 말대로 이번 기증이 한국 예술품을 접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이건희 회장이 직접 소개하듯 제1부 '저의 집을 소개합니다'와 제2부 '저의 수집품을 소개합니다'로 구성됐다. 1부에선 회장의 안목과 취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볼 수 있다. 가장 돋보이는 작품은 단연 프랑스 인상주의 거장 모네가 만년에 그려낸 '수련이 있는 연못'이다. 국내 처음으로 전시되는데, 해외 유수 미술관에서나 볼 수 있는 작품이란 점에서 미술 마니아들의 관심이 뜨겁다.

다산 정약용이 남긴 '정효자전'과 '정부인전'.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다산 정약용이 남긴 '정효자전'과 '정부인전'.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다산 정약용이 강진 유배생활 중 한 가족의 애달픈 사연을 글로 남긴 '정효자전(鄭孝子傳)'과 '정부인전(鄭婦人傳)'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추천하는 작품이다. 한국적 정서가 짙게 밴 가족애를 서예로 남겼다. 이 중 정부인전은 다산의 문집 '여유당전서'에도 실리지 않은 작품으로, 이번 전시를 통해 일반에 처음 공개된다.

2부는 수집품에 담긴 인류의 이야기를 △자연과 교감하는 경험 △자연을 활용하는 지혜 △생각을 전달하는 지혜 △인간을 탐색하는 경험으로 나눠 살펴본다. "기록 문화가 자리잡지 못하면 정보화 사회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는 사명감으로 이건희 회장이 수집한 국보 '초조본 현양성교론(初雕本顯揚聖敎論), 금속활자로 인쇄한 초간본 '석보상절(釋譜詳節) 권20' 등 귀중한 옛 책도 전시한다.

운무가 걷힌 인왕산의 풍경을 담아낸 '인왕제색도'도 볼 수 있다. 다만 인왕제색도는 전시 기간 첫 한 달만 만날 수 있다. 고서화 작품은 빛에 쉽게 손상될 수 있어 순차적으로 김홍도의 '추성부도'와 박대성의 '불국설경', 남계우의 '나비'로 한 달씩 선보일 예정이다. 이수경 학예연구관은 "인왕제색도 같은 서화류는 작품 보존을 위해 3~4개월 정도만 전시할 수 있다"며 "순회전도 해야하는데 빠질 수가 없는 작품이라 한 달씩 전시를 잡았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를 보려면 한 달 전 미리 관람권을 예매해야 한다. 5월 2일, 5월 30일, 6월 27일 월요일 오후 2시부터 인터파크 티켓 홈페이지나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해 예매할 수 있다. 회차당 관람 정원은 100명이며 온라인 발권으로 70명, 현장 발권은 30명이다. 현재 다음달까지 티켓은 대부분 매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공동 주최한 고 이건희기증 1주년 기념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 언론공개회가 열린 27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기자가 백남준 작품을 취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공동 주최한 고 이건희기증 1주년 기념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 언론공개회가 열린 27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기자가 백남준 작품을 취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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