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3월3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삼성 부당합병 의혹' 38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겉으로 보이는 양상은 사뭇 다르지만 두 사건에서 겹치는 부분이 있다. 노조와 경제단체가 서로 목적은 다르지만 한날 한시 '이재용 역할론'에 대한 목소리를 냈다는 사실이다.
특히 그동안 재벌 체제에 각을 세워온 노조가 현안을 두고 총수의 집 앞으로 쫓아간 것은 되짚어볼 지점이 적잖다. 누군가에겐 '불편한 현실'일 수 있지만 의사결정권자로서의 기업 총수 역할론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는 얘기다.
김성훈 삼성전자노조동행 위원장이 25일 서울 용산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자택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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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업사(史)에서 총수들의 사법 리스크가 불거질 때마다 총수 체제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됐던 게 사실이다. 2016년 말 이후 지난 5년여 동안 삼성을 두고도 이 부회장이 없다고 해서 경영이 안 되면 글로벌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식의 가시 돋힌 언사가 오갔다. 하지만 어쩌면 쉽게 던질 수 있는 이런 비판과 달리 노조조차 현안 해결을 총수에게 요구하는 게 기업 현장의 현실이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시장과 외신에서도 삼성전자가 대규모 투자를 결행하는 경쟁사들과 달리 이렇다 할 '빅피처'를 내놓지 못하는 이유로 경영 전면에 나설 수 없는 이 부회장의 상황을 지목하는 것 역시 이런 배경에서다.
총수 체제와 전문경영인 체제의 장단점을 따지기에 앞서 당장 총수 체제로 움직이는 현실에서 태생적으로 1~2년 단기 성과에 따라 자리를 보장받는 전문경영인이 10년, 20년 뒤를 내다봐야 하는 수십조원 규모의 투자나 M&A(인수합병)를 결정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삼성전자의 마지막 대형 M&A(하만, 인수가격 약 9조원)도 2016년 이 부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불거진 시점과 정확히 맞물린다. 속쓰린 얘기지만 전문경영인에겐 노조와의 관계 설정 문제만도 버거운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우리만의 독특한 사례도 아니다. 일본 소니의 TV·가전 사업 퇴조와 미국 야후의 몰락은 전문경영인에게 지나치게 의지하다 경쟁력을 잃은 사례로 경영학 교과서에 단골로 등장한다.
기존의 위기론이 일종의 쇄신 카드로 그동안 삼성 내부에서 먼저 나왔던 것과 달리 최근의 경고음은 삼성이 애써 태연한 척하는 가운데 경쟁사와 외신에서 튀어나온다는 점에서 자못 심상찮다.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삼성전자 (77,600원 ▼2,000 -2.51%) 주가가 '6만전자'를 벗어나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도 이런 진단과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기업인 사면은 언제나 조심스러운 문제다. 다만 가석방과 취업제한 논란에 발묶인, 어정쩡한 의사결정 지연 사태가 불러올 '나비 효과'가 삼성을 넘어 경제와 국민 생활에 어느 만큼의 태풍으로 이어질지에 대한 고민은 더 미룰 수 없다.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은 "기업인 특별사면복권 조치로 우리 사회가 대립과 갈등을 치유하고 더 높은 차원의 국민통합을 이룰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국민통합을 이유로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사면하고 같은 사건에 연루됐던 기업인에는 법의 논리만 들이댄다면 다시 한번 사농공상(士農工商·고려 조선시대의 사회계급)에 대한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회장님이 10개월 만에?"…스벅·유니클로 창업주 돌아온 이유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임시 CEO. /AFP=뉴스1
■ 시총 53조 신화 '일본전산', 창업주 10개월 만에 복귀한 이유
닛케이신문 등에 따르면 지난 22일 세계 최대 모터회사 일본전산(니덱)의 창업주인 나가모리 시게노부 회장이 경영에서 손을 뗀 지 약 10개월 만에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복귀했다. 이 회사의 지난해 연매출은 1조 9182억엔(약19조원), 시가총액은 약 5조3000억엔(약 53조원)에 달한다.
나가모리 회장이 복귀한 것은 일본 내에서도 화제를 낳았다. 영입에 공 들인 전문경영인 세키 준 사장이 CEO 자리를 맡은 지 7개월 여 만에, 회장이 CEO 자리에서 물러선 지 10개월여 만의 복귀이기 때문이다. 신속한 복귀 사유는 주가관리가 전혀 안돼서다. 실적은 18%가량 늘었지만 세키 CEO 취임 당시 1만3000엔(약 13만원) 수준을 유지했던 일본전산의 주가는 지난 25일 종가 기준 8363엔(약 8만원)대까지 떨어졌다.
나가모리 회장은 CEO 교체에 대해 "매일 주가 그래프를 보며 절망했다"며 "단기간에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 결단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왼쪽부터) 나가모리 시게노부 일본전산 회장,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 야나이 타다시 유니클로 회장,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회장 /사진=일본전산 홈페이지, AFP
이 밖에도 일본에서는 전문경영인 체제가 성공적으로 자리잡지 못하고 창업주가 복귀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패스트 리테일링의 야나이 타다시 회장도 2002년 전문 경영인에 자리를 내줬지만 실적 악화로 2005년 복귀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 역시 니케시 아로라 부사장을 전폭지지하며 '후계자' 자리에 앉혔으나 1년 만에 복귀해 이후 여전히 본인이 이끌고 있다. 자신을 대체할 만한 전문 경영인 찾기는 여전히 난제로 여긴다.
세계적인 기업 소니 역시 창업주로부터, 평사원으로 출발해 창업주 사위가 됐던 이데이 노부유키 CEO, 또 하워드 스트링거 CEO로 경영권이 이양되면서 디지털 시대에 대응하지 못하고 점점 위상이 약해졌다.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 사이에서도 비슷한 사례들이 있다. 2018년 스타벅스 CEO직과 이사회에서 물러난 하워드 슐츠 회장은 이달 다시 임시 CEO로 복귀했다. △원재료 가격과 인건비 인상에 따른 비용 상승 △중국과 러시아 시장에서의 어려움 △미국 매장 내 노조 확대 등 회사가 다수 과제에 직면한 상황에서다. 스타벅스의 혁신을 도모해야 할 중요한 시점이라는 판단에서 내린 결정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때 시가총액 142조원에 달하던 검색엔진 야후도 위기를 겪으며 팀 모스, 스콧 톰슨 CEO 등 전문경영인들을 짧게 거쳐 구글 출신 말리사 메이어 CEO까지 영입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하고 결국 5조원 규모에 매각됐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테슬라 등 최근 세계 경제를 이끄는 기업들도 여전히 창업자가 경영하거나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