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콘 기업 통로 열어야" vs "'꾼'들 작전에 개미는 피눈물"

머니투데이 김근희 기자, 황국상 기자 2022.04.27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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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우회상장 규제, 이제는 풀자(下)

편집자주 머니게임에 악용될 소지가 크다는 이유로 우회상장 규제가 대폭 강화된 2010년 이후 사실상 국내 증시에서 우회상장이 자취를 감췄다. 시장은 건전해졌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로 무장한 신(新) 기업가들을 키워내기 위한 인프라는 취약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회상장 규제완화의 필요성, 대안 등에 대해 모색해보고자 한다.

셀트리온·JYP 우회상장의 좋은 예…'7000명 피눈물' 나쁜 예도
"유니콘 기업 통로 열어야" vs "'꾼'들 작전에 개미는 피눈물"


코스피 시가총액 13위 셀트리온, 하락장 속에서도 오르며 코스닥 시가총액 2조원을 넘어선 JYP Ent.(이하 JYP), 두 회사의 공통점이 있다. 코스피와 코스닥의 대표선수가 된 두 회사 모두 좌절 끝에 돌고 돌아 증시에 입성한 '우회상장' 기업이다. 우회상장이 미래 산업 기업들의 상장 통로로 활용된 좋은 예다. 반면 네오세미테크 사태 처럼 이를 악용해 개인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입힌 사례들도 있다. 이처럼 시장에는 우회상장의 빛과 그림자가 존재한다.

■ 막히면 돌아서 상장…셀트리온부터 카카오까지



셀트리온은 2006년 기술특례 상장을 추진하며 국내 증시의 문을 두드렸다. 현재 셀트리온의 항체의약품·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개발 기술은 세계적이지만 당시 한국거래소의 평가는 인색했다. 셀트리온은 2008년 다시한번 코스피 상장을 추진했지만 상장 기준을 총족하지 못했고 결국 우회상장을 선택했다. 같은해 코스닥 상장사인 오알켐과 역합병 방식으로 우회상장했다.

셀트리온은 성장세를 기반으로 코스닥 시가총액 1위 자리를 지키다 2018년 코스피로 이전상장했다. 25일 종가 기준 시가총액 규모는 21조8770억원에 이른다.



JYP 역시 2007년부터 코스닥 상장설이 돌았지만 상장 문턱을 넘기 쉽지 않았다. 3년 연속 당기순손실 등이 발목을 잡았다. JYP는 2010년 코스닥 상장사인 제이튠엔터의 최대주주로 올라서고, 3년간 사명변경, 합병 등을 거쳐 2013년 우회상장에 성공했다. 2014년 당시 상장사인 다음과 합병한 카카오도 역합병 형태로 증시 입성에 성공했다.

IB(투자은행) 업계 관계자는 "우회상장은 기존 방식으로 성장성을 평가하기 어려운 바이오, 엔터테인먼트, IT(정보기술) 벤처들이 상장할 수 있게하는 통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 네오세미테크 사태 후 우회상장 가뭄


이같은 우회상장 성공사례는 2014년 카카오 이후 찾아보기 힘들다. 우회상장을 악용하는 사례들이 늘어나면서 2011년 규제가 강화된 탓이다.

우회상장 정책을 바꾼 결정적 사건은 2010년 '네오세미테크 사태'다. 2009년 네오세미테크는 코스닥 상장 업체인 디앤티(옛 모노솔라)를 통해 증시에 데뷔했다. 이후 태양광 테마 대장주로 분류되며 시가총액이 6600억원까지 치솟았다.

우회상장 후 5개월 만인 2010년 3월, 2009년 결산을 담당했던 회계법인이 감사 결과를 토대로 '거절' 의견을 제시했고 이후 조사 결과 네오세미테크는 비상장사일 때부터 분식회계를 통해 실적을 부풀린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해 9월 네오세미테크는 시장에서 퇴출됐고 소액주주 7000여명이 피해를 봤다.

2010년 네오세미테크 뿐 아니라 엑스로드, 샤인시스템 등 다른 우회상장 기업들도 상장폐지됐다. 해당 기업들의 경우 우회상장한 기업은 흑자기업이었으나 기존 상장법인이 부실했다.

우회상장 기업들의 건전성 문제가 불거진 후 우회상장 규제는 2011년 신규상장 수준에 버금가게 깐깐해졌다. 자연스레 우회상장도 주춤해졌다.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2019년 10월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한해에만 23개를 기록했던 우회상장 기업 수는 2011년부터 2019년 10월까지 4개에 불과하다.

"우리 시장, 충분히 선진화" vs "일반투자자에 리스크 떠넘기기"
임종철 디자인기자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임종철 디자인기자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미래 성장 잠재성만 있고 수익성이 담보되지 않은 신산업 기업의 육성을 위해 우회상장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 시세조종과 같은 부정거래 정황이 적발되면 일벌백계 차원에서 강하게 처벌하면 될 일이다. 시장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G20(주요 20개국)에 들어간 한국이지만 당국 스스로가 우리 시장을 후진적으로 보는 듯하다."(한 회계법인 파트너)

"우회상장 규제의 완화는 프리IPO(Pre IPO, 상장 전 지분투자) 단계까지 투자를 집행해왔던 FI(재무적 투자자)들이 감당해야 할 리스크를 일반 투자자들에게 전가하는 조치다. 지금의 상장제도만으로도 신산업 기업들이 시장에서 성장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에 부족함이 없다."(한 대형 증권사 임원)

"12년된 우회상장 규제를 풀자"는 쪽과 "규제완화는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선다. VC(벤처캐피탈)이나 회계법인 등은 우회상장 규제 완화를 주장한다. 반면 우회상장 규제완화가 시기상조라거나 규제완화 필요가 없다고 보는 의견은 한국거래소 등 시장관련 당국과 증권사 쪽에서 나온다.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는 이유는 분명 존재한다. 규제 완화 찬성파은 주로 창업부터 성숙단계에 진입하기 전 단계의 기업을 어떻게 육성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규제완화 반대파는 시장의 퀄리티(Quality)에 보다 중심을 둔다. 출발선이 다르다.

규제완화 찬성론자들은 '유니콘 기업', 즉 장외에서 기업가치가 조(兆) 단위를 넘어서는 신산업 부문 기업들이 국내 증시 입성이 어려운 이유로 우회상장 규제를 꼽는다.

성숙 단계로 진입하기 전의 초기 단계 기업들이 우회상장을 통해 빨리 상장사 지위를 획득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다. 이들 기업이 이후 시장에서의 일반공모 또는 3자배정 유상증자나 CB(전환사채) BW(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을 통해 성장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있게 하자는 것이다.

한 회계법인의 파트너 A씨는 "우회상장에도 IPO(기업공개)와 같은 질적심사를 요구하다보니 우회상장의 가장 큰 장점인 '절차의 간소성' 등이 사라졌다"며 "국내에서는 우회상장이나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과의 합병상장, IPO를 통한 직(直)상장 사이의 절차적 차이가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A시는 "우회상장을 필요로 하는 다수의 기업들은 IPO에서 제값을 받기 어려운, 성장 잠재력은 있어도 매출·이익이 확인되지 않은 기업들인 경우가 많다"며 "이들 기업이 상장사 지위를 획득해 시장에서 원활히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해줘야 4차산업 및 신산업 기업들의 성장이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유니콘 기업들의 상장이 어려운 것도 우회상장 규제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 VC 대표 B씨는 "국내에서 1년에 투자를 유치하는 기업의 수는 3000개 정도이지만 연간 IPO를 통해 상장되는 기업은 3% 수준인 100개 안팎에 불과하다"며 "엑시트(수익실현) 통로가 다변화돼야 자금의 순환구조가 만들어지고 이 과정에서 기업들의 창업과 성장이 활성화된다"고 강조했다.
임종철 디자인기자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임종철 디자인기자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B씨는 "(장외) 시장에서 밸류만 뛰었으니 이 기업을 상장시켜줄지 말지가 논란이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의 상장제도 하에서는 유니콘 기업의 밸류에이션 고평가 논란만 반복돼 우회상장 입성이 어렵고 그만큼 증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유인도 적다는 설명이다.

또 "시장을 흐리는 행위에 대한 감시체제는 강화하되 진입규제는 풀어주는 게 필요하다"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이유로 아예 진입도 못하게 하는 것은 또 다른 선량한 피해자를 낳을 수 있다"고 했다.

반면 국내 대형증권사 임원 C씨는 "과거 밸류에이션의 적정성이나 상장 적격성이 걸러지지 않은 회사들이 우회상장을 통해 증시에 입성하는 바람에 많은 피해자들이 양산됐다"며 "이 때문에 우회상장이라도 상장심사를 제대로 거치게 하는 제도가 생긴 것"이라고 전했다. 우회상장 규제는 일반투자자들이 자유롭게 투자하는 정규 증시로 입성하는 종목을 걸러내기 위한 최소한의 심사틀이라는 설명이다.

또 다른 증권사 임원 D씨는 "우회상장 규제완화 주장은 비상장사의 상장 적격성을 갖췄는지 검증하는 절차를 일반 투자자에게 넘겨버리자는 것"이라며 "이는 초기단계 기업이나 이들 기업에 프리IPO를 한 투자자들의 이익만 생각한 주장이다. 신산업 육성만큼 일반투자자 보호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부정거래 적발 시스템이 발전했으니 이제 우회상장을 풀어줘도 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의견이 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시장 건전성이 개선됐다는 이유로 우회상장 규제를 풀자는 것은 시장이 이만큼 발전했으니 IPO 심사절차도 아예 하지 말자는 주장과도 같다"며 "우회상장 규제완화 주장은 논리적으로 모순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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