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장, 충분히 선진화" vs "일반투자자에 리스크 떠넘기기"

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김근희 기자 2022.04.26 17:33
글자크기

[MT리포트][우회상장 규제, 이제는 풀자]우회상장 규제완화 의견 대두 속, 반대 강경론도 여전

편집자주 머니게임에 악용될 소지가 크다는 이유로 우회상장 규제가 대폭 강화된 2010년 이후 사실상 국내 증시에서 우회상장이 자취를 감췄다. 시장은 건전해졌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로 무장한 신(新) 기업가들을 키워내기 위한 인프라는 취약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회상장 규제완화의 필요성, 대안 등에 대해 모색해보고자 한다.

임종철 디자인기자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임종철 디자인기자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미래 성장 잠재성만 있고 수익성이 담보되지 않은 신산업 기업의 육성을 위해 우회상장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 시세조종과 같은 부정거래 정황이 적발되면 일벌백계 차원에서 강하게 처벌하면 될 일이다. 시장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G20(주요 20개국)에 들어간 한국이지만 당국 스스로가 우리 시장을 후진적으로 보는 듯하다."(한 회계법인 파트너)

"우회상장 규제의 완화는 프리IPO(Pre IPO, 상장 전 지분투자) 단계까지 투자를 집행해왔던 FI(재무적 투자자)들이 감당해야 할 리스크를 일반 투자자들에게 전가하는 조치다. 지금의 상장제도만으로도 신산업 기업들이 시장에서 성장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에 부족함이 없다."(한 대형 증권사 임원)



"12년된 우회상장 규제를 풀자"는 쪽과 "규제완화는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선다. VC(벤처캐피탈)이나 회계법인 등은 우회상장 규제 완화를 주장한다. 반면 우회상장 규제완화가 시기상조라거나 규제완화 필요가 없다고 보는 의견은 한국거래소 등 시장관련 당국과 증권사 쪽에서 나온다.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는 이유는 분명 존재한다. 규제 완화 찬성파은 주로 창업부터 성숙단계에 진입하기 전 단계의 기업을 어떻게 육성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규제완화 반대파는 시장의 퀄리티(Quality)에 보다 중심을 둔다. 출발선이 다르다.



규제완화 찬성론자들은 '유니콘 기업', 즉 장외에서 기업가치가 조(兆) 단위를 넘어서는 신산업 부문 기업들이 국내 증시 입성이 어려운 이유로 우회상장 규제를 꼽는다.

성숙 단계로 진입하기 전의 초기 단계 기업들이 우회상장을 통해 빨리 상장사 지위를 획득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다. 이들 기업이 이후 시장에서의 일반공모 또는 3자배정 유상증자나 CB(전환사채) BW(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을 통해 성장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있게 하자는 것이다.

한 회계법인의 파트너 A씨는 "우회상장에도 IPO(기업공개)와 같은 질적심사를 요구하다보니 우회상장의 가장 큰 장점인 '절차의 간소성' 등이 사라졌다"며 "국내에서는 우회상장이나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과의 합병상장, IPO를 통한 직(直)상장 사이의 절차적 차이가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A시는 "우회상장을 필요로 하는 다수의 기업들은 IPO에서 제값을 받기 어려운, 성장 잠재력은 있어도 매출·이익이 확인되지 않은 기업들인 경우가 많다"며 "이들 기업이 상장사 지위를 획득해 시장에서 원활히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해줘야 4차산업 및 신산업 기업들의 성장이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유니콘 기업들의 상장이 어려운 것도 우회상장 규제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 VC 대표 B씨는 "국내에서 1년에 투자를 유치하는 기업의 수는 3000개 정도이지만 연간 IPO를 통해 상장되는 기업은 3% 수준인 100개 안팎에 불과하다"며 "엑시트(수익실현) 통로가 다변화돼야 자금의 순환구조가 만들어지고 이 과정에서 기업들의 창업과 성장이 활성화된다"고 강조했다.
임종철 디자인기자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임종철 디자인기자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B씨는 "(장외) 시장에서 밸류만 뛰었으니 이 기업을 상장시켜줄지 말지가 논란이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의 상장제도 하에서는 유니콘 기업의 밸류에이션 고평가 논란만 반복돼 우회상장 입성이 어렵고 그만큼 증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유인도 적다는 설명이다.

또 "시장을 흐리는 행위에 대한 감시체제는 강화하되 진입규제는 풀어주는 게 필요하다"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이유로 아예 진입도 못하게 하는 것은 또 다른 선량한 피해자를 낳을 수 있다"고 했다.

반면 국내 대형증권사 임원 C씨는 "과거 밸류에이션의 적정성이나 상장 적격성이 걸러지지 않은 회사들이 우회상장을 통해 증시에 입성하는 바람에 많은 피해자들이 양산됐다"며 "이 때문에 우회상장이라도 상장심사를 제대로 거치게 하는 제도가 생긴 것"이라고 전했다. 우회상장 규제는 일반투자자들이 자유롭게 투자하는 정규 증시로 입성하는 종목을 걸러내기 위한 최소한의 심사틀이라는 설명이다.

또 다른 증권사 임원 D씨는 "우회상장 규제완화 주장은 비상장사의 상장 적격성을 갖췄는지 검증하는 절차를 일반 투자자에게 넘겨버리자는 것"이라며 "이는 초기단계 기업이나 이들 기업에 프리IPO를 한 투자자들의 이익만 생각한 주장이다. 신산업 육성만큼 일반투자자 보호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부정거래 적발 시스템이 발전했으니 이제 우회상장을 풀어줘도 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의견이 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시장 건전성이 개선됐다는 이유로 우회상장 규제를 풀자는 것은 시장이 이만큼 발전했으니 IPO 심사절차도 아예 하지 말자는 주장과도 같다"며 "우회상장 규제완화 주장은 논리적으로 모순이 있다"고 말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