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된 우회상장 규제, 이제는 풀자"

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김근희 기자 2022.04.2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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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우회상장 규제, 이제는 풀자]

편집자주 머니게임에 악용될 소지가 크다는 이유로 우회상장 규제가 대폭 강화된 2010년 이후 사실상 국내 증시에서 우회상장이 자취를 감췄다. 시장은 건전해졌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로 무장한 신(新) 기업가들을 키워내기 위한 인프라는 취약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회상장 규제완화의 필요성, 대안 등에 대해 모색해보고자 한다.

"12년된 우회상장 규제, 이제는 풀자"


우회상장 규제가 강화된 지 12년이 지났다. 머니게임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자는 취지였는데 미래 성장 잠재력을 지닌 벤처·스타트업의 통로를 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바이오·제약 산업의 불모지에서 바이오 산업의 가능성을 연 셀트리온,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을 시작으로 플랫폼 경제의 미래를 만들어낸 카카오, 케이팝(K-POP) 정착의 주역 중 한 곳인 JYP ENT.(JYP엔터테인먼트) 등은 우회상장을 통해 증시에 입성해 자리잡은 대표 기업들이다.



우회상장 규제의 합리화는 제2의 셀트리온, 카카오, JYP 등의 증시 입성을 가능케 해 자본시장은 물론 경제 전반의 활력을 제고시킬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26일 한국거래소와 성희활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에 따르면 국내 증시에서의 우회상장 건수는 2006년 45건에서 2007~2008년 40건 안팎을 기록한 후 2009~10년에 20여건 수준으로 떨어졌다. 2011~19년 기간의 우회상장 건수는 5건에 불과했다. 이후 지금까지도 우회상장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2011년은 2010년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거래소 등의 우회상장 규제가 본격 발표된 이후 시점이다.



비상장사가 상장사와 합병이나 영업양수도 계약 등 방식으로 사실상 증시에 입성하는 효과를 낳는 우회상장은 국내에서 주로 백도어리스팅(Back door listing), 즉 '뒷문상장'으로 불린다. 명칭 자체가 부정적 뉘앙스를 담고 있다. 비슷한 의미로 '역합병'(Reverse merger), 즉 비상장 대형사가 상장 소형사를 합병한다는 의미의 용어도 있지만 국내에선 거의 쓰이지 않는다.

유독 부정적 이름표가 붙은 이유는 이른바 '꾼'들의 작전에 우회상장이 종종 악용됐기 때문이다. 태양광 테마로 투자자들을 현혹시켰던 네오세미테크를 비롯 엑스로드(내비게이션), 샤인시스템(3D), CT&T(전기차), 포넷(자원개발) 등 다양한 테마의 기업들이 우회상장을 통해 증시에 입성했다가 대거 상장폐지됐다.

부작용이 커지자 2010년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등은 우회상장 방지책 3개 방안을 내놨다. 비상장 우량사가 간소한 절차로 상장할 수 있도록 허용돼 왔던 우회상장 제도가 머니게임에 악용된다는 이유였다. 금융위 등은 △우회상장 심사시 질적 심사를 도입하고 △비상장사의 회계투명성을 강화하며 △합병가액 산정의 공정성을 제고하기 위해 외부평가를 강화하는 등의 조치를 발표했다. 이 중 핵심이 '질적 심사' 도입이었다.


종전에는 경영성과 등 재무요건과 감사의견, 부도·소송 등 사유해소와 같으 형식적 요건을 중심으로 심사를 했던 데 비해 2010년 이후에는 경영투명성과 건전성, 기업의 계속성 등에 대해서도 집중 심사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우회상장의 가장 큰 장점이던 '절차적 간소성'은 이 조치후 사라졌다. 기업의 매출·매입 등 영업활동의 안정성이나 수익성 등이 심사요건으로 추가됐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당장 IPO(기업공개)를 통해 신주발행을 할 여력이 되는 기업이라면 당연히 직상장 경로를 밟을 것"이라며 "미래의 잠재 성장성이 높지만 당장 수익성을 증명하지 못한 기업들로서는 기존의 상장제도 하에서 성장기반을 마련하기가 무척 어렵다"고 했다.

또 "이미 수익성을 검증받은, 제도권에 안착한 산업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로 출발한 이들의 기업가 정신을 고취하고 성장시키는 데에 현재의 상장제도가 충분한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우회상장은 초기 단계의 아이디어를 성숙시키고자 하는 기업에 성장동력을 제공해주는 좋은 수단이 될 것"이라고 했다.

당국이 우회상장 규제를 강화하면서 대안을 마련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상장된 돈 주머니 개념의 스팩(SPAC)이 2010년에 최초로 도입됐다. 성장성이나 사업모델을 일정 정도 충족할 때, 또는 코넥스에서 코스닥으로 이전상장하려고 할 때 일정 부분 가점을 주는 등 특례상장 제도도 만들었다. 하지만 현장의 체감은 다르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내 증시에서는 우회상장, 스팩합병 상장, IPO를 통한 직(直)상장 등 제도가 이름만 다를 뿐 실질적으로는 전혀 차이가 없다"며 "투명성에 문제가 있다면 엄벌하면 되고 밸류에이션에 문제가 있다면 시장이 판단하도록 하면 되는데 당국이 나서서 진입 자체를 규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거래소만 해도 IT 시스템을 활용해 시세조종 등 부정거래를 적발하는 시스템이 충분히 고도화돼 있다"며 "우회상장을 시세조종과 같은 머니게임에 악용하는 등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확인될 경우 그것만 일벌백계식으로 다스리면 될 일"이라고 했다.

물론 우회상장 규제 완화에 대해 부정적 시각도 여전하다. 한 증권사의 IPO 담당 임원은 "과거 밸류에이션의 적정성이나 상장 적격성 등이 걸러지지 않은 회사들이 우회상장을 통해 증시에 입성하는 바람에 많은 피해자들이 양산됐고 그 결과 우회상장이라도 상장심사를 거치게 한 것"이라며 "머니게임 가능성이 완전히 없어졌다고 장담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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