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노조 무기한 천막농성, 그 뒤에 겹친 '이재용 사면론'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22.04.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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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기업인 사면론 그 뒤엔 기업의 위기③

편집자주 현장을 직접 발로 뛰면서 보고 들은 뒤 쓴 글에는 생동감이 넘쳐 흐릅니다. 단순히 눈에 보여지는 장면 뿐 아니라 그 이면에 숨어 있는 배경과 뒷얘기,직관적인 분석 등 하나의 팩트가 다양한 형태의 기사로 표출됩니다. 국내는 물론 글로벌 곳곳의 시장,산업현장 그리고 최고경영자(CEO)들의 신변잡기에 이르기까지 모두 [현장+]의 테두리에 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3월3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삼성 부당합병 의혹' 38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3월3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삼성 부당합병 의혹' 38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언론에 오르내린 두가지 사건이 있다. 해를 넘겨 임금·복지교섭을 진행 중인 삼성전자 노조가 이날 오후 2시 이 부회장의 서울 용산구 자택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섭 타결까지 24시간 천막농성을 선언했다.

공교롭게 비슷한 시간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한국무역협회 등 경제5단체도 청와대와 법무부에 가석방 상태의 이 부회장 등을 포함한 기업인의 사면복권을 요청하는 청원서를 냈다.



겉으로 보이는 양상은 사뭇 다르지만 두 사건에서 겹치는 부분이 있다. 노조와 경제단체가 서로 목적은 다르지만 한날 한시 '이재용 역할론'에 대한 목소리를 냈다는 사실이다.

노조는 이날 "2021년 임금교섭 타결은 삼성전자 최종 결정권자 이재용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문구의 현수막을 내걸었다. 경제5단체도 청원서에서 "코로나19 사태와 미·중 갈등,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국가경제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위기상황에서 역량 있는 기업인들의 헌신이 필요하다"며 '이 부회장 역할론'을 꺼내들었다.



특히 그동안 재벌 체제에 각을 세워온 노조가 현안을 두고 총수의 집 앞으로 쫓아간 것은 되짚어볼 지점이 적잖다. 누군가에겐 '불편한 현실'일 수 있지만 의사결정권자로서의 기업 총수 역할론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는 얘기다.

김성훈 삼성전자노조동행 위원장이 25일 서울 용산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자택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스1김성훈 삼성전자노조동행 위원장이 25일 서울 용산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자택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스1
국내 기업사(史)에서 총수들의 사법 리스크가 불거질 때마다 총수 체제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됐던 게 사실이다. 2016년 말 이후 지난 5년여 동안 삼성을 두고도 이 부회장이 없다고 해서 경영이 안 되면 글로벌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식의 가시 돋힌 언사가 오갔다. 하지만 어쩌면 쉽게 던질 수 있는 이런 비판과 달리 노조조차 현안 해결을 총수에게 요구하는 게 기업 현장의 현실이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시장과 외신에서도 삼성전자가 대규모 투자를 결행하는 경쟁사들과 달리 이렇다 할 '빅피처'를 내놓지 못하는 이유로 경영 전면에 나설 수 없는 이 부회장의 상황을 지목하는 것 역시 이런 배경에서다.


총수 체제와 전문경영인 체제의 장단점을 따지기에 앞서 당장 총수 체제로 움직이는 현실에서 태생적으로 1~2년 단기 성과에 따라 자리를 보장받는 전문경영인이 10년, 20년 뒤를 내다봐야 하는 수십조원 규모의 투자나 M&A(인수합병)를 결정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삼성전자의 마지막 대형 M&A(하만, 인수가격 약 9조원)는 2016년 이 부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불거진 시점과 정확히 맞물린다. 속쓰린 얘기지만 전문경영인에겐 노조와의 관계 설정 문제만도 버거운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우리만의 독특한 사례도 아니다. 일본 소니의 TV·가전 사업 퇴조와 미국 야후의 몰락은 전문경영인에게 지나치게 의지하다 경쟁력을 잃은 사례로 경영학 교과서에 단골로 등장한다.

삼성노조 무기한 천막농성, 그 뒤에 겹친 '이재용 사면론'
시쳇말로 연예인과 대기업 총수 걱정만큼 쓸데없는 게 없다고 하지만 적어도 우리 세대에서는 굳건할 줄 알았던 삼성에도 최근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진단이 고개를 든다. GOS(게임 최적화 서비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수율, 모바일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존재감을 두고 최근 이어지는 기술력 논란이 그렇다.

기존의 위기론이 일종의 쇄신 카드로 그동안 삼성 내부에서 먼저 나왔던 것과 달리 최근의 경고음은 삼성이 애써 태연한 척하는 가운데 경쟁사와 외신에서 튀어나온다는 점에서 자못 심상찮다.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삼성전자 (84,400원 ▼3,200 -3.65%) 주가가 '6만전자'를 벗어나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도 이런 진단과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기업인 사면은 언제나 조심스러운 문제다. 다만 가석방과 취업제한 논란에 발묶인, 어정쩡한 의사결정 지연 사태가 불러올 '나비 효과'가 삼성을 넘어 경제와 국민 생활에 어느 만큼의 태풍으로 이어질지에 대한 고민은 더 미룰 수 없다.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은 "기업인 특별사면복권 조치로 우리 사회가 대립과 갈등을 치유하고 더 높은 차원의 국민통합을 이룰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국민통합을 이유로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사면하고 같은 사건에 연루됐던 기업인에는 법의 논리만 들이댄다면 다시 한번 사농공상(士農工商·고려 조선시대의 사회계급)에 대한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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