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애그플레이션 비상

머니투데이 이종우 경제평론가 2022.04.25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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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시평]애그플레이션 비상


국제 곡물가격 상승 흐름이 심상치 않다. 지난 3월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식량가격지수가 2월보다 12.6% 상승했다. 해당 지수가 만들어진 1996년 이후 최대치로 2월에 이어 두 달 연속 최고치를 경신했다.

20년 동안 국제 곡물가격은 두 번의 큰 상승이 있었다. 첫 번째는 2006년이다. 중국 등 신흥국의 수요증가로 곡물가격이 2년 동안 85% 상승했다. 두 번째는 2020년 코로나19 발생 직후다. 질병으로 식량공급이 차질을 빚을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40% 넘게 올랐다.



현재 세계 식량수급은 구조적으로 좋지 않다. 신흥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식량수요가 급증했다. 육류소비도 한 몫했는데 신흥국의 육류소비 증가로 사료용 곡물수요가 증가했다. 옥수수 등 곡물을 이용한 바이오 연료 생산도 늘고 있다. 2000년대 10년간 고유가로 바이오에탄올과 바이오디젤 생산이 연평균 7.5%, 15.1% 증가한 적이 있다. 최근 유가상승으로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수요증가에 비해 공급확대는 지지부진하다. 2020년 가을부터 예년보다 기온이 낮아 농산물 작황이 좋지 않다. 그 영향으로 소맥과 대두 재고가 5년 평균 밑으로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사태가 터졌다. 국제사회의 비난에 직면한 푸틴 대통령이 식량의 무기화를 검토하고 나섰다. 전 세계적으로 식량이 부족한 상황이어서 러시아가 해외 식량공급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으며 러시아를 적대시하는 국가들에 대한 식량수출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2010년 가뭄으로 식량공급이 좋지 않았을 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곡물수출을 제한한 사례가 있다. 자국 내 재고유지와 가격안정을 위해서였는데 8월 한 달 동안 국제 밀가격이 54%, 대두와 옥수수가격이 10%와 23% 급등했다. 이런 경험 때문에 최근 러시아의 행보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식량을 무기화하려는 시도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2009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과 함께 '흑해 곡물 블록'을 만들려 시도한 게 대표 사례다. 곡물시장에서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같은 역할을 하겠다는 의도였다. 곡물수출을 통제하는 국영 곡물회사 설립도 계획했다. 러시아 국영석유회사 가스프롬같이 곡물수출의 40~50%를 담당하는 기구를 만들어 국제 곡물시장의 수급을 쥐락펴락하겠다는 의도였다. 대부분 시도가 미국의 견제에 막혀 실패했지만 식량의 무기화는 언제든지 제기될 수 있는 문제가 됐고 우크라이나 사태로 그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이란 단어가 있다. 곡물가격 상승이 물가상승을 초래하는 현상을 말한다. 금융위기 직전이 대표 사례다. 가뭄으로 인한 작황부진에 신흥국의 수요가 겹치면서 곡물가격이 상승해 선진국에서 3% 넘는 인플레가 발생했다. 곡물가격이 상승하고 8개월 정도 지나면 식료품가격이 오르는 게 일반적이다. 코로나19 발생 직후 곡물가격 상승이 시작됐으니까 식료품가격이 오를 때는 이미 지났다. 이래저래 물가상승 압력이 가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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