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소각→주가 3배 폭등'…"주주환원 기업 찾는 3가지 방법"

머니투데이 오정은 기자, 홍순빈 기자 2022.04.22 08:00
글자크기

[MT리포트]K-주식이 달라진다(上)

편집자주 '국장(한국 시장)은 안 된다'. 주식 투자자들의 푸념이다. 동학개미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만드는 시장의 비상식에 혀를 내두른다. 소액주주의 뒤통수를 치는 물적분할 후 재상장, 불합리한 합병 비율 산정, 저배당…. 그렇다고 절망할 수준은 아니다. ESG 흐름 속 주주를 비롯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고민하는 기업들이 속속 나타난다. 배당, 자사주 매입 등에 머물지 않고 자사주 소각 등 '진정한 주주환원'을 실천하는 기업을 통해 코리아 디스카운트 없는 시장으로 가는 길을 고민해본다.

"주주환원 찢었다" 주가 3배 폭등…이런 기업 찾는 3가지 방법
김민국 VIP자산운용 대표/사진=김휘선 기자 김민국 VIP자산운용 대표/사진=김휘선 기자


"올해 초 10개 기업에 15페이지가 넘는 장문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대부분 답변이 왔어요. CEO(최고경영자)나 최고재무책임자(CFO) 미팅이 이뤄졌습니다. 주주의 목소리를 듣고 반영하는 방향으로 K-주식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



대학생 때부터 25년간 K-주식에 투자한 김민국 VIP자산운용 대표(45·사진)는 스타 펀드매니저다. 가치투자로 유명한 그는 "어떻게 하면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주식의 만성적인 저평가 현상)'를 해소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올해는 "이대로는 안된다"는 각오로 액션을 취했다. 3개월 넘게 준비한 장문의 주주제안 편지를 기업들에 일제히 발송했다.

김 대표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바람을 타고 최근 3년 사이 기업이 주주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며 "우리의 목표는 대주주(오너)에게 불이익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모든 주주에게 좋은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VIP자산운용이 지분을 보유한 메리츠금융지주를 비롯 신도리코, 풍산홀딩스, 아세아 등 많은 기업이 진정성 있는 주주제안 레터를 받았다. 일부 기업은 CEO부터 부사장, 전무, CFO 등 임원 전부가 VIP운용의 레터를 돌려봤다. "여전히 K-주식 대부분이 소액주주는 물론 펀드매니저의 제안을 완전히 무시한다"면서도 "그럼에도 대주주가 열린 마음으로 주주의 목소리를 듣는 곳이 있었다"고 전했다.

'자사주 소각→주가 3배 폭등'…"주주환원 기업 찾는 3가지 방법"
가치투자에 행동주의를 더한 김 대표가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주주환원 정책의 꽃'은 바로 자사주 소각이다. 그는 기업들에게 '자사주 소각 전도사'를 자처하며 그 효용성을 설파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주가가 오르는 것"이라며 "주가를 올릴 수 있는 최고의 주주환원 정책은 자사주 매입·소각"이라고 강조한다. 자사주를 소각하면 EPS(주당순이익)이 올라가고 EPS가 오르면 주가가 오른다.


흔히 한국에서 주주환원 정책으로 각광받는 배당 증액보다 자사주 소각으로 주식수를 줄이고 EPS를 올리는 것이 최고의 '주주 보은'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주가가 쌀 때 자사주 소각을 실시하면 EPS가 확 좋아지면서 주가 부양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대표적 사례가 메리츠금융지주다. 지난해 메리츠금융지주는 1,2,3차에 걸쳐 대규모 자사주 매입·소각을 발표했다. 주주들조차 공시를 확인한 뒤 "주주환원 제대로 찢었다"고 외칠 정도였다.

시장은 환호했고 주가는 급등했다. 지난해 5월17일 1만6550원이던 메리츠금융지주 주가는 올해 1월14일 5만5900원으로 3배 이상(237.8%) 폭등했다.

"저평가된 기업이 자사주를 태우면 주가의 차원이 달라집니다. 미국에서 자사주 소각은 이미 애플을 필두로 주주환원 정책의 대명사죠. 반면 한국에선 아직도 생소한 정책입니다. 주로 대기업 오너들이 자사주 소각을 주저하고 있습니다. "

'자사주 소각→주가 3배 폭등'…"주주환원 기업 찾는 3가지 방법"
김 대표가 두번째로 꼽는 최고의 주주환원 정책은 물적분할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것이다. LG화학이 LG에너지솔루션을 물적 분할해 재상장한 것과 반대로 지주사가 자회사를 흡수합병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실제 SK가 SK머티리얼즈를 흡수합병해 주주가치를 제고한 사례가 있다.

그는 "SK 오너 입장에서는 SK머티리얼즈가 자회사로 있는게 유리하지만 이를 지주사로 흡수합병한 것은 SK를 키우겠다는 의지"라며 "구글(알파벳)이 유튜브를 물적분할해 상장한다면 이득을 보겠지만 나스닥에는 오직 알파벳만 상장돼 있으며 이런 지주사는 PER 20~30배의 가치를 인정받는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연초 지주사들에 주주제안을 보낼 때 주식교환이나 합병을 통해 상장사는 지주사 1개만 남겨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중복 상장은 결국 주주가치 훼손이 불가피하다"고 역설한다. 하지만 자회사가 줄줄이 상장된 한국 증시엔 PER 3배~4배까지 '만년 저평가' 지주사 주식이 수두룩하다.

특히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처럼 실적이 좋고 현금 흐름이 좋은 회사, 심지어 이미 훌륭한 주주환원 정책을 펴고 있는 기업이 향후 주주환원 정책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 그는 "잉여현금이 많아 자사주 소각·배당 등 주주환원 정책을 펼 여지가 있는가"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김민국 VIP자산운용 대표/사진=김휘선 기자김민국 VIP자산운용 대표/사진=김휘선 기자
그는 딥 밸류(Deep Value) 펀드매니저다. 초저평가된 굴뚝주를 좋아한다. 지난해 VIP자산운용은 순이익 661억원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 K-주식에 대한 치열한 고민은 수익률로 돌아왔다. 김 대표가 직접 운용하는 VIP 딥밸류 사모펀드는 2020년 3월 설정이래 346.29% 누적수익률을 기록했다. 최근 1년 수익률만 132.47%에 달한다.

"한국의 상장사들은 '올바른 주주환원'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이사회는 주주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너의 눈치만 봅니다. 하지만 소액주주가 달라진 것처럼 세대를 거듭하며 대주주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소액주주 행동주의와 대주주의 변화가 맞물린 한국 자본주의의 '줄탁동시'는 이제 시작입니다. "

주주환원의 꽃 '자사주 소각'…9000원→4.5만원, 주가 불 붙었다
'자사주 소각→주가 3배 폭등'…"주주환원 기업 찾는 3가지 방법"
K-주식이 달라지고 있다. 그간 한국 기업들은 배당으로 '주주 달래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최근 선진국 기업과 같이 대규모 자사주 소각을 단행하며 적극적 주주환원에 나서는 기업이 나타난다.

자사주 소각은 자사주 매입보다 더 강력한 주주환원 정책으로 꼽힌다. 자사주 매입은 기업 스스로 자사 주식을 매수하는 것을 뜻한다. 유통되는 공급 주식 물량을 줄인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기업이 매입한 자사주를 필요에 따라 대량으로 매각할 수 있다는 게 차이점이다. 이 경우 주가가 다시 하락해 기존 주주들의 이익 개선에 큰 도움을 주진 못한다. 반면 '자사주 소각'은 시장에 유통되고 있는 발행 주식수를 줄여 주당순이익(EPS)를 높여 주주가치를 제고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올초부터 기업들은 기존 주주들에게 가치를 환원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워 자사주 소각을 단행했다. 카카오 (54,100원 ▼300 -0.55%)(3000억원), 미래에셋증권 (8,050원 ▼80 -0.98%) (1741억원), KB금융 (70,500원 ▲200 +0.28%)(1500억원), 금호석유 (138,100원 ▼2,400 -1.71%)(1500억원), 신한지주 (46,300원 ▼900 -1.91%) (1500억원) 등이다.

'자사주 소각→주가 3배 폭등'…"주주환원 기업 찾는 3가지 방법"
◇애플도 자사주 102조원 태웠다…주가 '쑥쑥'

자사주 소각은 주주환원 정책의 꽃으로 불린다. 주주들의 투자금으로 기업활동을 하고 벌어들인 영업이익을 주주들에게 환원하는 선순환 구조를 이룬다는 의미에서다. 미국을 포함한 글로벌 상장사들은 또한 주가 부양, 안정화 수단으로 자사주 소각을 활용한다.

애플은 지난해 9월 약 855억달러(102조원) 정도의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했다. 이후 주가가 130달러 선에서 170달러 선까지 상승했다. 올초 (1월3일) 애플의 시가총액은 세계 최초로 3조 달러를 돌파했다.

김세환 KB증권 연구원은 "한국 주식의 총 주주 환원율(순이익 대비 배당, 자사주 매입·소각 비율)이 지난 10년간 26% 수준이었다면 미국은 87%였다"며 "미국은 자사주 소각률이 70%를 넘고 자사주를 매입한 뒤 되팔거나 이를 소각하지 않을 경우 주주들에게 소송당할 정도"라고 했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자사주 소각을 통해 적극적으로 주주환원에 나선 기업들이 있었다. 지난해 '메리츠 3형제'라고 불리는 메리츠금융지주 (81,400원 ▼300 -0.37%), 메리츠증권 (6,100원 ▼200 -3.17%), 메리츠화재 (51,600원 ▼2,700 -4.97%)는 각각 1500억원, 3400억원, 2082억원의 자사주 소각을 단행했다. 메리츠금융지주는 지난해 1월 주가가 9000원 선을 유지했는데 올해 초 4만5000원 선까지 뛰었다.

'자사주 소각→주가 3배 폭등'…"주주환원 기업 찾는 3가지 방법"
이제껏 한국 기업들은 자사주 소각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KB증권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국가별 총 주주환원율은 미국이 89%인 반면 한국은 28%에 그쳤다. 대주주들의 입장에선 '내 돈'이 없어진다는 인식 때문에 자사주 소각 자체를 꺼렸다. 주가가 하락하면 누적잉여금을 배당금으로 지급하면서 소액주주 달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실제 지난해 코스피, 코스닥 시장에서 자사주 매입을 한 기업은 총 283곳이나 자사주 소각을 한 기업은 25곳이다. 그중에서도 즉시 소각을 단행한 곳은 8곳이고 나머지는 전년도에 취득했던 자사주를 소각한 곳들이다. 전문가들은 선진국처럼 기존 주주들에게 이익이 돌아가면서 기업도 투자자금을 모을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그간 대주주가 기업의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이익을 주주들에게 나눠주지 않는 등 주주환원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건 사실"이라며 "기업과 함께 장기성장을 도모하는 주주들이 늘어날 수 있도록 미국식 주주 환원정책을 따라가는 게 좋다"고 밝혔다.

물적분할 대신 자회사 합병으로 주주 챙긴 SK
"분할상장, 이제 금지해야되는 거 아닌가. 주식시장이 말이 아니다."

지난 1월27일 LG에너지솔루션 (396,500원 ▼5,000 -1.25%) 상장 첫날 LG화학 (440,000원 0.00%) 주식 토론방에 올라온 글이다.

LG화학과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2020년 이후 시장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물적분할, 재상장 등은 지난 대통령 선거때 주요 공약이 될 정도였다.

핵심 사업 성장을 위한 물적 분할, 자금 조달을 위한 상장 등 취지는 옳았지만 소액주주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한편에선 자회사를 합병하며 모회사 가치를 올린 기업도 있다. SK (178,800원 ▼3,800 -2.08%)는 자사주 매입, 소각 계획 등을 추가 발표하며 주주환원 모범 기업으로 꼽힌다.

'자사주 소각→주가 3배 폭등'…"주주환원 기업 찾는 3가지 방법"
◇SK, 자회사 100% 합병…주주가치 함께 올라간다

지난해 SK가 SK머티리얼즈를 100% 자회사로 합병한 사례가 회자됐다. 모회사가 자회사를 합병하면서 SK그룹의 지주사인 (주)SK의 주주가치가 제고된 보기 드문 사례이기 때문이다.

SK머티리얼즈는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특수가스 NF3 WF6(삼불화질소 육불화텅스텐)를 제조하는 세계 1위 회사다. 합병과정에서 SK머티리얼즈는 주식매수청구권이 있는 주주들에게 5728억원이라는 대규모 자금을 지급하면서까지 주식을 사들였다.

김장원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소재 계열사 합병으로 SK와 SK스퀘어 중심으로 반도체 사업 강화가 이뤄질 것이고 지주회사의 직간접 투자 활동 확대가 예상된다"고 했다.

게다가 올해 자사주 매입, 소각 계획까지 발표하며 (주)SK는 주주가치 환원에 나서고 있다. 매년 시가총액의 1% 이상의 자사주 매입과 기존 자사주 소각 혹은 점진적 소각 규모 확대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자회사 IPO(기업공개)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익과 상장 후 지분매각 이익에 대해서도 주주 배당 재원으로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지난달 SK 정기 주주총회에선 지난해 SK바이오팜 (92,600원 ▲100 +0.11%)의 일부 지분 매각 과정에서 발생한 이익을 배당금 재원으로 포함시키고 연간 주당 배당금을 역대 최대치인 주당 8000원으로 결의했다.

'자사주 소각→주가 3배 폭등'…"주주환원 기업 찾는 3가지 방법"
◇분할 후 동시상장…대기업 지주사 저평가 이유

지주사가 저평가받는 원인으론 분할 후 동시상장이 꼽힌다. 하나의 모회사에 딸린 5~6개의 자회사가 함께 상장돼 있는 상황에서 지주사는 중복 상장된 자회사 가치 만큼 할인(디스카운트)을 받으며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

LG그룹의 경우 지주사 LG (88,700원 ▲1,100 +1.26%)외에 LG에너지솔루션 (396,500원 ▼5,000 -1.25%), LG이노텍 (196,000원 ▼1,500 -0.76%), LG전자 (95,300원 ▼1,500 -1.55%), LG유플러스 (10,040원 ▼10 -0.10%), LG생활건강 (386,000원 ▼500 -0.13%), LG화학 (440,000원 0.00%), LG디스플레이 (10,680원 ▲100 +0.95%), LG헬로비전 (3,515원 ▼15 -0.42%)이 상장돼 있다. 전문가들은 동시상장 시 투자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와 근거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김민국 VIP자산운용 대표는 "과도하게 저평가된 지주사 가치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중장기적으로 자회사의 합병 또는 주식 교환을 통한 100% 자회사 편입이 궁극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 증시를 비롯한 선진 시장에서는 주주간 이해충돌과 임원의 배임 문제 때문에 지주사와 자회사가 동시에 상장된 경우가 드물다"고 말했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회사가 100% 신설 회사로 돼 지배주주들의 지배력이 유지된다는 점 때문에 재벌기업들이 물적분할을 선호하는 편"이라며 "기업들이 물적분할 시 투자자들이 납득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와 근거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