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권 몰아주기가 답은 아니다 [광화문]

머니투데이 양영권 사회부장 2022.04.2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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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명동서일필''용두사미'
지난달 경찰이 부동산투기의혹 수사 결과를 발표했을 때 언론의 평가는 박했다. 전현직 국회의원 12명이 직간접적으로 부동산투기에 연루됐다는 점을 밝혀냈지만 1년 전 세상을 뒤흔든 'LH(한국토지주택공사)사태'를 계기로 특별수사본부까지 꾸려 벌인 수사의 성과라고 하기엔 너무 볼품없다는 지적이었다. 남구준 국가수사본부장은 수사 결과를 브리핑하며 "성과와 관련해 국민 기대치에 못 미친다는 점을 안다"고 했다.

대형 사건 수사에는 이처럼 '국민의 기대치'를 맞춰야 한다는 부담이 따른다. 형사조치 대상에 유명인사가 포함돼 있지 않거나 구속자가 다수 발생하지 않았을 경우 으레 부실수사 논란이 일고 '수박겉핧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성공한 수사'라는 말은 거물급이 범죄에 연루된 사실을 밝혀냈을 경우에나 듣는다. 국가적 재앙인 주택가격 급등 사태의 배경에는 반드시 권력과 유착된 '거악'이 존재한다는 '국민적 믿음'이 있었다. 그 믿음은 '반증이 가능해야 한다'는 과학의 정신으로 접근할 수 없다. 부동산투기의혹 수사는 이에 부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한 수사'라는 평을 들었다.



유능한 수사기관 소리를 들으려면 결론이 거창해야 한다. 수사 착수 시점부터 결론을 정해 놓고 그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증거를 취사선택하고 법논리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유혹을 이기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유혹에 지면 수사의 목적은 '실체적 진실 규명'에서 멀어지게 된다. 극단적으로 범죄가 있어서 수사가 이뤄지는 게 아니라 수사가 있어 범죄가 있는 상황에 이른다. 정치적인 의도와 결합할 때 폐해는 두드러진다.

과거 간첩을 찍어내던 공안의 시대까지 갈 것도 없다. 대표적으로 근 몇 년간 다수의 기업인에 대해 불명확한 법규정을 악용해 자의적 판단으로 배임죄 수사와 기소가 이뤄졌다는 비판을 받은 것을 들 수 있다. 포스코 전 회장, SPC 회장, KT 전 회장은 배임죄로 기소됐지만 힘든 법정 투쟁 끝에 무죄가 확정됐다.



또 백복인 KT&G 사장은 '하명수사'논란을 겪은 뒤 배임수재 등의 혐의로 기소됐고, 결국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사법농단'수사로 기소된 법관들도 줄줄이 무죄가 확정돼 수사 자체가 '기획성'이었다는 의구심이 더욱 짙어졌다.

항상 유죄 판결을 받아내야만 수사와 기소의 정당성이 입증되는 것은 아니지만 수사기관들에게 100명의 범인을 놓쳐도 1명의 무고한 범인을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법언은 더이상 통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수사가 '국민의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했을 때 수사책임자가 송구한 마음을 갖는 현실의 배경에는 수사기관에 대한 불신이 있다. 수사기관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수사의 결론도 신뢰하지 않는다. 수사기관이 중립성과 공정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진실규명에 대한 '의지'도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 의심'인 시대다. 순환논리가 아니라 악순환의 고리다.


따라서 검·경개혁은 '신뢰받는' 수사기관을 만드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 수사기관간 견제는 활발해야 하고 중립성은 보장돼야 한다. 구성원들이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사회의 다른 분야와 소통도 잘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수사기관이 어떤 결론을 내놔도 국민이 수긍할 수 있다.

여당이 추진하는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박탈)'은 기존에 검찰이 갖던 막강한 권한을 경찰에 이전해 또다른 권력기관을 완성시키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답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국민은 수사기관만큼이나 정치권도 불신한다. 그런 현실을 직시하고 수사권 개혁에 대한 '국민의 기대치' 를 맞추려는 시늉이라도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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