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엔숍·유니클로도 가격 인상?…'엔저' 일본 "월급빼고 다 올라"

머니투데이 우경희 기자, 박진영 기자, 김주현 기자, 안재용 기자 2022.04.2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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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안전하지 않은 엔화?(下)

편집자주 안전자산으로 꼽히던 엔화가 전쟁 발발에도 되레 급격히 가치를 잃고 있다. 일본정부는 이를 지켜보고 있는데 대응이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엔저 현상은 왜 생겼고 일본경제엔 무슨 영향이 갈까. 또 우리나라는 이를 어떻게 보고 대응해야 할까.

"유니클로도 가격 올린다고요?"…엔저 시대 일본은 지금
일본 도쿄의 음식점 모습 /사진=AFP일본 도쿄의 음식점 모습 /사진=AFP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엔화 가치 하락(환율 상승)이 한층 가속화하면서 일본 서민들도 신음 소리를 내고 있다. 에너지 가격이 급등한 데다 일본 기업들이 들여오는 원자재, 식재료 값이 급등하면서 물가 부담이 그대로 서민들에 전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임금상승률이 정체된 상황에서 사실상 소득감소를 경험 중인 셈이다.

◇전기·가스요금 25% 인상, 도시락 값도 '훌쩍'



100엔숍·유니클로도 가격 인상?…'엔저' 일본 "월급빼고 다 올라"
19일 닛케이신문에 따르면 오는 5월 도쿄전력홀딩스의 전기요금은 전년 같은 달 대비 25%가량 상승된다. 도쿄가스도 24% 오르게 된다. 연료비 상승은 에너지 수입가격에 후행해 반영되는 경향이 있는 만큼 엔저와 유가 상승 등으로 인한 광열비 인상은 점차 가팔라 질 전망이다.

서민들의 '한끼 식사'를 해결하던 편의점, 저가 외식 체인점의 가격 상승도 눈에 띈다. 수입 밀 가격 급등에 엔저가 겹치며 식자재 부담이 급증해 이를 소비자 부담으로 전가하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에 내몰렸다.



일본의 대표적인 편의점인 패밀리마트, 세븐일레븐 등도 도시락 등 즉석식품 가격을 2~15%까지 인상키로 했다. 지난해 10월 쇠고기덮밥 가격을 39엔(약 380원) 올린 바 있는 덮밥 체인점 요시노야도 현재 가격유지가 어려울 정도다. 지난 14일 요시노야의 가와무라 야스타카 사장은 전세계에서 식자재를 수입하고 있어 "지나친 엔화 약세를 환영하지 않는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도쿄 유니클로 외관 /사진=AFP도쿄 유니클로 외관 /사진=AFP
◇유니클로 "가격인상 불가피" 100엔숍도 옛말?

패션업계의 상황도 만만치 않다. 일본의 '패스트패션' 선두주자인 유니클로도 가격 인상을 시사했다. 야나이 타다시 일본 유니클로 회장도 같은날 엔저가 해외실적을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지만, 손해가 훨씬 크다며 "엔화 추세를 우려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원재료 가격은 두 배, 심한 것은 3배까지 올라버렸다. 현재 가격으로 파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제품 가격 인상을 시사했다.


'일본의 자라'라고도 불리는 패스트패션 업체 '시마무라'는 엔화 약세와 원자재 가격 인상의 영향으로 올 가을·겨울 옷 단가를 평균 3~4% 인상한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도 유명한 100엔 균일숍 '다이소'도 정책을 바꿔나가고 있다.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다이소는 지난 15일 도쿄 긴자에 300엔의 균일가 상품을 중심으로 한 신규 브랜드들과 기존 100엔 제품을 함께 소개하는 신규 점포를 오픈했다.

100엔숍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상품을 소개하는 것'이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중국, 동남아 등에서 생산해 수입하는 비즈니스로 원재료 가격 상승, 해외 인건비 상승, 엔저의 타격을 받음을 인정하고 있다. 이에 향후로도 기존 고객들을 위해 100엔 상품을 유지하면서 이를 웃도는 가격대 상품의 비율을 늘려간다는 계획이다.

100엔숍·유니클로도 가격 인상?…'엔저' 일본 "월급빼고 다 올라"
◇값싼 노동력 '중진국' 추락하나…"원전 재가동"도 힘실려

에너지 가격을 비롯 전방위적인 물가 인상에 서민들의 불안감도 크다. 일각에서는 "일본이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중진국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또 값비싼 에너지 수입에 대응할 수 있는 '원전 재가동'도 힘을 얻고 있다. 일본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위험성을 인지해 대다수 원전의 가동을 중지한 상황이다.

일본의 진보 성향의 아사히신문이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여론조사에서, 지난 2월 원전 재가동 반대 의견은 47%로 1년 전(53%)보다 6%포인트 감소했고, 재가동해야한다는 의견은 6%포인트 늘어난 38%를 기록했다. 미즈호 은행의 카라카마 다이스케 치프 마켓·이코노미스트는 "원자력 발전소 정지로 인한 에너지 수입 증가도 무역적자의 주요인"이라며 "엔화 약세를 멈추기 위해 원전을 재가동해야 한다는 의견은 앞으로도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엔저'니까 韓 수출전선 비상등? "요즘은 상황이 달라요"
100엔숍·유니클로도 가격 인상?…'엔저' 일본 "월급빼고 다 올라"
글로벌 무역대국 일본의 엔화가 달러화 대비 약세를 보이는 엔저 현상은 십수년 전만 해도 한국 경제에 '적신호'로 여겨졌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기업과 치열한 수출경쟁을 벌여 온 일본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수출에 유리한 구조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달러당 130엔을 넘보는 엔저 현상이 다시 벌어지고 있지만 이번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수출전선엔 위기론보다는 좀 지켜보자는 신중론이 대세다. 수출시장에서 한국과 일본의 전공과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외려 일본 기업들의 원자재비 부담이 커져 한국 기업들에는 장기적으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엔저가 한국 기업에 얼마나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데이터는 없다. 기업들은 그럼에도 한일 수출경합도(수출품목이 겹치는 정도) 등 수치를 통해 영향을 간접 측정한다. 한국과 일본 간 수출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보여주는 데이터다.

20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일 간 수출경합도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UN 컴트레이드(comtrade)에서 지난해 발표한 글로벌 시장 한일 수출경합도를 보면 2016년 0.487(1을 기준으로 하는 비율)로 고점을 찍은 후 2017년 0.463으로 크게 떨어졌다. 2019년 0.481로 반짝 올랐지만 곧 다시 안정세를 찾았다. 세계 시장에서 수출경쟁 완화 추세가 뚜렷하다는 거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일본과의 수출경합도가 낮아지는 이유는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은 메모리, 일본은 시스템(비메모리) 반도체로 업역이 갈리는 것처럼 같은 품목이라 하더라도 주력이 차별화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며 "반도체, 기계, 자동차 및 부품, 철강, 비철금속, 플라스틱 등에서 모두 경합도가 낮아졌다"고 말했다.

100엔숍·유니클로도 가격 인상?…'엔저' 일본 "월급빼고 다 올라"
한일 간 수출 전공이 갈리는 흐름은 산업계에 이미 오래전부터 나타났다. 디스플레이와 가전, 반도체, 배터리, 조선 등 전통적으로 경쟁해 온 시장에선 이제 한국이 상대적 우위를 보이거나 일본과 각기 다른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여전히 혈전 중인 모빌리티분야에서도 전기차, 수소차, UAM(도심항공모빌리티) 등 업역이 세분화될 조짐을 보인다.

외려 엔저의 여파로 일본이 상대적 강세를 보이고 있는 첨단소재 분야에서 부담을 느끼게 될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일본은 금속과 화학 등 소재분야에서 탁월한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원재료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치솟는 원자재 가격이 소재산업에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한 국내 수출기업 관계자는 "일본이 원자재를 전혀 수입하지 않는다면 엔저가 일본에 유리하다는 논리가 맞겠지만 일본 기업들도 원자재 수입 부담이 크다"며 "반대로 국내 기업 입장에서는 일본에서 수입하는 소부장 수입가격이 싸진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저 현상이 초장기적으로 이어지지 않는 한 양국 경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다른 기업 관계자는 "일본 내에서도 엔저에 따라 소재 공급라인을 국내로 한정하는 등 대안을 마련해 여파를 최소화하려 들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이런 근본적인 변화는 엔저가 초장기적으로 계속될거라는 확신이 없다면 단행하기 어려우며, 현실적으로는 수출입 구조에 당장 큰 영향을 주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엔화 줍줍'으로 과거 110% 수익, 다시 한번?…"지금은 다르다"
최근 일본 엔화의 가치가 급락하자 엔화에 대해 '저가 매수 후 보유' 전략의 투자를 통해 차익을 거두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엔화의 안전자산으로의 매력이 떨어진 만큼 장기 보유보다는 단기 차익을 추구하는 전략이 유리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지난달 22일 120엔을 돌파한 엔/달러 환율은 19일에는 장중 128엔도 넘으면서 약 2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20일에는 100엔당 원화 환율이 960원선마저 깨지기도 했다. 엔화 가치는 달러 대비로 지난해 말보다 10% 넘게 떨어졌다. 주요국 통화 가운데 가장 큰 하락률이다.

이렇다보니 여유가 생기는 대로 엔화를 조금씩 사 모으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순수한 차익 목적으로 엔화에 투자하는 이들뿐 아니라 코로나19(COVID-19) 사태가 잦아들면 일본으로 여행을 가려고 미리 엔화를 사두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직장인 김모씨(37)는 "혹시 여행을 못가더라도 엔화로 환차익을 노려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엔화 가치가 떨어진 원인으로는 일본은행(BOJ)이 완화적 통화정책기조를 유지하면서 미국과의 금리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금리 차이로 자금이 미국으로 흘러가면서 엔화 약세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시장 관계자는 "엔화 약세 배경은 미국과의 금리차가 가장 큰 이유"라며 "금리차로 자금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엔화 약세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10년물 국채금리의 경우 미국은 2.8% 수준까지 올라온 한편 일본은 0%대에 머물러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다음달 3~4일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0.5%p 빅스텝 금리인상을 예고하고 있고, 일본 중앙은행은 계속해서 국채를 사들이고 있어 엔/달러 환율이 추가 상승할 가능성도 있다.

KB증권의 보고서에 따르면 과거 원화로 엔화에 투자해 가장 큰 수익을 낼 수 있었던 시기는 2007년 6월부터 2008년 12월까지다. 당시 원/엔 환율은 762.32원에서 1598.25원까지 뛰며 최대 110%의 수익률을 선사했다. 연환산 수익률로 따지면 68.9%의 차익이 가능했다.

당시는 엔화가 약세였다가 강세로 돌아섰을 때로, 특히 원화 약세와 엔화 강세가 동시에 나타나면서 수익이 극대화됐다. 그러나 지금은 엔화가 원화보다 강세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지 않고, 엔화의 안전자산 지위가 약화된 만큼 당시에 비해 엔화의 투자 매력은 떨어진다는 조언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달러당 엔화 가치가 추가 하락할 여지가 있다는 신중론도 나온다. 엔/달러 환율이 심리적 지지선으로 여겨지던 125엔을 넘어서면서다. 엔화에 대해 장기간 투자하는 것보다는 단기 차익을 노리는 편이 낫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전규연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엔/달러 환율이 125~126엔이 지지선이라고 봤는데 추세적으로 넘어가면서 추가 약세의 여지도 있을 것"이라며 "시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투자 매력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원화 기준으로 봤을 때 엔화가 저점 근처에 있어 투자 진입을 해도 된다고 본다"면서도 "안전자산인 달러처럼 장기간 보유하는 것보다는 어느정도 회복됐을 때 환차익을 얻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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