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억 치료제 맞으면 살 수 있는데"…생후 24개월 골든타임 '째깍째깍'

머니투데이 박다영 기자, 이창섭 기자 2022.04.20 09:30
글자크기

[MT리포트]'5억 주사' 건보 시대(下)

편집자주 말기 혈액암 환자들에게 그림의 떡이었던 치료제 '킴리아'가 손에 잡히는 희망이 됐다. 건강보험 급여 적용으로 환자가 부담할 비용이 5억원에서 600만원 아래로 뚝 떨어져서다. 연간 200여명으로 파악된 말기 혈액암 환자 대부분이 킴리아 처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킴리아 이후로도 건보 적용을 앞둔 초고가 의약품들이 즐비하다. 당연히 인구 고령화로 적신호가 들어온 건보 재정에 장기적 부담이 된다. 죽음을 앞둔 소수의 생명이냐, 다수의 건보료가 투입된 재정이냐 사이에서 솔로몬의 해법이 필요하다. 중증·희귀질환치료제 건보 적용 확대를 약속한 새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5억 주사' 건보 시대, 건보의 역할과 실현 가능한 보장 범위를 짚어볼 때다.

200여 아이들 살길은 '25억 치료제'…골든타임 흘러가는데 건보 등재 헛바퀴
"25억 치료제 맞으면 살 수 있는데"…생후 24개월 골든타임 '째깍째깍'


1회 투약에 25억원에 이르는 노바티스의 '졸겐스마'는 1년째 건강보험 급여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킴리아의 건강보험 등재 이후 초고가 의약품의 건강보험 급여 등재 가능성이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심사 기간이 길어지면서 국내 200여명의 환자 중 일부는 '생후 24개월'인 치료 골든 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졸겐스마 외에 '럭스터나', '빈다맥스'도 등도 건강보험 등재 문턱에서 정부 결정만 기다린다. 이 약들은 국내에서 처방을 허용하는 품목허가를 받았지만,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현재까지 투약받은 환자는 제약사의 무상기부 프로그램 참가자나 의료진이 본사에 직접 연락해 요청한 경우로 총 10명 남짓이다. 업계와 환자들은 건강보험 등재 확대 시그널을 보낸 새 정부에 기대가 크다.

19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 7일 개최한 올해 4차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 졸겐스마는 논의 대상으로 오르지 못했다. 한국노바티스가 지난해 5월 졸겐스마의 급여 등재를 신청했지만 1년이 다 되도록 심평원의 적정성 평가 단계도 이르지 못한 것이다.



약제가 건강보험 급여 적용 대상이 되려면 총 4단계를 거쳐야 한다. 먼저 제약사가 급여 등재 신청을 해야 한다. 이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최대 120일간 비용효과성, 급여적정성 등 경제성을 평가한다. 경제성이 적정하다는 평가를 받으면 건강보험 약가 협상에 최대 60일, 보건복지부 고시까지 최대 30일이 걸린다. 총 210일 정도 걸린다.

문종민 한국척수성근위축증 환우회 이사장은 "24개월 미만 환우 가족들은 24개월을 넘기기 전에 급여 적용이 되기만을 바라고 있다"면서 "급여 적용이 될 때까지 환자가 기다려주지는 않는다. 병은 계속 진행되기 때문에 하루라도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한국노바티스 관계자는 "건강보험 등재 신청 이후 공식적인 절차에서 진전이 없다"면서 "보완 요청이 온 부분에 대해서는 다 전달했다. 1년 정도를 기다리게 되면서 졸겐스마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 중 24개월이 넘어 못 맞게 되는 아이들이 생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심평원은 건강보험 등재 과정에서 필요한 자료를 철저히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심평원 관계자는 "제약사에 자료 보완을 요청하고 다시 검토하는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양측이 자료에 대해 논의중인 기간은 급여 심사 기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졸겐스마는 척수성 근위축증(SMA) 치료제다. SMA는 태어날 때부터 SMN1 유전자의 결핍이나 돌연변로 인해 척수와 뇌 사이에 존재하는 운동신경세포의 기능이 손상된 질환이다. 근력저하, 근위축 등 식사와 움직임이 어렵고 호흡 문제로 생명까지 위협한다. 전 세계적으로 신생아 1만명 당 1명꼴로 발병한다. 국내 환자는 200명 정도로 추산된다.

로슈의 '에브리스', 바이오젠의 '스핀라자' 등이 치료제로 처방되고 있고 스핀라자는 건강보험 급여 적용 대상이지만, 졸겐스마는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하다는 차이가 있다. 기존 치료제는 백업 유전자인 SMN2에 관여해 평생 투약해야 하는데 졸겐스마는 SMN1 유전자를 기능적으로 대체해 한 번 투약만으로 치료 효과가 나타난다.

심사 기간이 길어지면서 신생아 기준에 벗어나 투약을 받지 못하는 환아가 생길 수 있다. 철저한 평가 과정을 거치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시간이 지체되면 약이 필요한 환자 중 일부는 치료 시기를 놓친다. 미국과 일본 등 앞서 졸겐스마를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 적용한 국가에서는 급여 적용 제한을 24개월로 설정했다. 전 세계적인 가이드라인을 따라 우리나라도 비슷한 기준을 둘 것으로 전망된다. 심사 기간 동안 생후 24개월을 넘어선 아이들은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다.

노바티스의 '럭스터나', 화이자의 '빈다맥스'도 건강보험 급여를 신청한 이후 정부만 쳐다본다.

럭스터나는 유전성 망막질환(IRD) 치료제다. 망막색소변성을 유발하는 유전자 변이 발현 환자에 투약하는 약으로 치료비가 약 5억원에 이른다. 노바티스는 지난해 10월 건강보험 등재 신청을 했다. 빈다맥스는 희귀질환 트랜스티레틴 아밀로이드 심근병증(ATTR-CM)의 치료제다. 비정상적인 트랜스티레틴 단백질을 안정화해 체내 아밀로이드 축적을 지연시킨다. 국내에서 허가받은 유일한 치료제로 약물 치료 비용만 연간 2억5000만원에 달한다. 화이자는 두 차례 건강보험 등재 신청을 했다.

고액의 치료제가 건강보험이 등재되기 전 환자 본인부담 100%로 투약받는 환자는 거의 없다. 세 약을 투약받은 환자는 국내에서 총 10명 정도다. 제약사의 무상 기부 프로그램이나 의료진이 직접 제약사에 요청한 환자들만 치료제를 맞았다. 국내 투약자들은 졸겐스마 6명, 빈다맥스 3명, 럭스터나 1명 등이다.

김동현 아밀로이드증 환우회 회장은 "ATTR은 대부분 유전성이라 가족 내 환자가 또 있을 수 있다"며 "한 집에 환자가 3명이나 있기도 하다. 가족 내 복수의 환자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경제적 부담이 어마어마하다"고 했다.

차일피일 정부 결정만 기다리는 상황에서 업계와 환자 가족들은 새 정부에 거는 기대가 크다. 새 정부 출범 전 국민의힘은 중증 희귀질환 환우 가족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고가 항암제·중증 희귀질환 신약 신속등재제도 도입'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최근에는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 이사장단이 보건복지부와 '신약 보장성 확대'를 주제로 실무 협의를 했다. KRPIA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와도 관련 논의를 진행 중이다.

업계에서는 새 정부가 초고가 의약품 보장 확대를 추진할 것으로 기대한다. 업계 복수 관계자는 "새 정부가 들어서면 의약품 건강보험 등재와 관련한 분위기가 더 좋아질 것이란 기대가 지배적"이라면서 "다만 희귀질환의 위험성을 감안해 하루라도 빨리 환자가 맞을 수 있도록 신속한 움직임이 필요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했다.

다국적사 전유물 아니다…수십억 초고가 희귀질환 신약 노리는 국내사
"25억 치료제 맞으면 살 수 있는데"…생후 24개월 골든타임 '째깍째깍'
26억원, 12억7000만원, 12억원, 10억9000만원…

지난해 미국에서 연간 치료 비용이 가장 비싼 약의 1위부터 4위까지 가격이다. 극소수에게만 발병하는 희귀질환을 치료하는 약들이다. 초고가를 받을 수 있음에도 국내 제약사는 그동안 희귀질환 신약 개발에 소극적이었다. 높은 개발 난이도에 비해 환자 수가 적어 시장성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로벌 제약사의 상징적 영역으로만 여겨졌던 희귀질환 시장에 국내 제약사들도 본격 뛰어들고 있다. 높아진 R&D(연구개발) 수준으로 미충족 수요 시장을 공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세포치료제부터 이중항체 항암제까지 다양한 초고가 신약을 개발 중인 국내 제약사를 살펴봤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서도 제2의 킴리아 개발을 꿈꾸는 업체들이 있다. 각각 SK플라즈마와 HK이노엔과 손잡은 큐로셀·앱클론이 대표적이다.

큐로셀은 지난해 2월 국내 최초로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CAR-T 치료제 CRC01의 임상 시험을 승인받았다. SK케미칼로부터 분사한 SK플라즈마는 큐로셀 프리 IPO에서 전략적 투자자(SI)로 참여했다.

앱클론은 B세포 림프종 치료제 AT101의 임상 1·2상을 진행 중인데 개발에 성공하면 HK이노엔이 상업용 대량 생산을 맡기로 했다. 대기업·전통 제약사와 협업으로 이들 CAR-T 세포치료제 개발도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의약품 가격 비교 업체 굿알엑스(GoodRX)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연간 치료 비용이 가장 비쌌던 약은 노바티스의 졸겐스마다. 척수성근위축증 치료제로 1회만 투여하면 되지만 투약 비용은 212만5000달러(약 26억원)에 달한다.

2위는 아이거 바이오파마슈티컬스가 만든 최초의 조로증(조기 노화 질환) 치료제 조킨비다. 1년 치료 비용이 103만2480달러(약 12.7억원)다. 조로증은 전 세계 성인 환자 수가 7800명, 소아 환자는 320명으로 추정되는 극희귀질환이다.

국내에서도 조로증 치료제를 개발하는 바이오 기업이 있다. 피알지에스앤텍은 소아·성인 조로증 치료제 후보물질 SLC-D011을 개발 중이다. 지난해 8월 미국 식품의약처(FDA) 임상 1상을 종료했다. 올해 임상 2상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약품과 에이비엘바이오는 이중항체 항암제를 개발 중이다. 현재 상용화된 이중항체 항암제는 암젠에서 만든 블린사이토가 유일하다. 블린사이토는 급성림프구성백혈병 치료제로 CD3와 CD19 단백질을 동시에 타깃한다. 1년 약값은 71만2672달러(약 8.8억원)로 미국에서 8번째로 비싼 치료제로 꼽힌다.

한미약품 중국 자회사 북경한미약품은 면역세포 활성 수용체인 4-1BB와 암세표 표면에 발현하는 PD-L1을 동시에 표적하는 이중항체 항암제(BH3120)를 개발 중이다. 한미약품 이중항체 플랫폼 팬텀바디가 적용됐으며 올해 미국암학회(AACR)에서 우수한 전임상 결과를 발표했다.

에이비엘바이오 (25,050원 ▼50 -0.20%) 역시 이중항체 항암제를 개발하고 있다. 최근 혈관 상피성장인자 VEGF-A와 DLL4을 동시 억제하는 이중항체 항암제 ABL001의 임상 1상 결과를 발표했으며 담도·췌장암에서 효과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올바이오파마는 중증근무력증(MG) 치료제 HL161을 개발하고 있다. 파트너사 하버바이오메드가 연내 중국에서 품목허가 신청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미국 파트너사 이뮤노반트도 같은 적응증으로 올해 임상 3상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12월 미국 식품의약처(FDA)는 알제넥스의 에프가티지모드를 세계 최초 MG 치료제로 승인했다. 업계에 따르면 에프가티지모드 연간 비용은 41만8100달러(약 5.1억원)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에프가티지모드 허가 전에 MG 치료제로 쓰였던 알렉시온의 솔리리스는 연간 투약 비용이 67만8392달러(약 8.3억원)로 미국에서 10번째로 비싼 약이다. 한올바이오파마 HL161도 개발에 성공하면 초고가 신약 반열에 오를 것으로 기대된다.

희귀질환 신약은 환자 수가 적어 그동안 개발시 '돈이 안된다'는 통념이 있었다. 하지만 시판허가를 받으면 수년간 독점권이 인정되는 등 개발 여건이 개선됐다. 게다가 시장 경쟁도 치열하지 않아 '계열 내 최초 신약(First-in-class)'을 출시하면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 이미 출시된 약이 존재하더라도 '계열 내 최고 신약(Best-in-class)'으로 미충족 수요를 공략할 여지도 있다.

FDA의 신속심사(Fast Track)나 가속승인(Accelerated Approval) 등 각종 특혜로 희귀의약품 개발에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업계에 따르면 졸겐스마의 임상 1상 시작부터 사용 허가까지는 60개월이 걸렸다. 글로벌 제약사 희귀질환 신약 개발 기간은 평균 5년 11개월로 알려졌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