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엔지켐생명, 증자틈탄 폭탄거래로 거액 챙긴 공매도 세력

머니투데이 반준환 기자, 정혜윤 기자 2022.04.20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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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원 넘는 공매도 수익, 고스란히 소액주주 피해로

최근 1년간 엔지켐생명과학 (1,867원 ▼1 -0.05%) 주가를 1/6 토막낸 공매도 투자자들이 논란에 휩싸였다. 이른바 '공매도 세력'은 엔지켐생명과학이 지난해말 유상증자를 준비하는 과정을 틈타 진입했는데 최대 1000억원 가량 이익을 낸 것으로 추산된다. 주가하락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소액주주들에게 돌아갔다.

2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기관으로 추산되는 공매도 투자자들은 지난해 5월부터 이달 현재까지 엔지켐생명과학 주식 277만884주를 공매도했다. 발행주식(증자전 833만1345주)의 33%가 넘는 수준이다. 금액으로는 1728억원어치가 넘는다. 시가총액(3300억원)과 비교해도 공매도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엔지켐생명과학, 코스닥 시총 270위권인데 공매도는 1위
엔지켐생명과학은 코스닥 시가총액 270위권인데 정작 공매도에선 코스닥 2위, 전체 상장사 6위에 올랐다. 공매도가 절정을 치닫던 3월 초에는 하루 거래의 25~33% 가 공매도였다.

공매도 거래가 1년간 이어졌는데 집중 공격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이뤄졌다. 이 시기는 엔지켐생명과학이 유상증자를 추진(9월27일 발표)하던 시기와 맞물린다. 지난해 9월 8만원선을 유지하던 엔지켐생명과학 주가는 고밀도 공매도가 쏟아지면서 10월 권리락을 포함해 7만원대로 하락했고 연말에는 5만원대까지 떨어졌다.



이후에도 공매도는 계속됐다. 특히 △유상증자 발행가액이 확정된 2월16일 전후 △주주들의 유상증자 대금납입 기간인 2월21~22일 △실권주 일반공모가 이뤄진 2월25일 △증자를 통해 신규발행된 주식이 상장된 3월21일 전후에 거래가 집중됐다. 거듭된 공매도 거래에 엔지켐생명과학 주가는 유상증자 발행가인 3만1800원이 깨졌고 지금은 2만3000원대를 겨우 버티고 있다.

공매도 공격 속 회사의 자금계획도 대폭 수정됐다. 유상증자 규모는 당초 예정했던 3164억원에서 1685억원으로 반토막 났다. 주주 가운데 28% 가량만 증자에 참여했고 실권주 공모도 실패했다. 결국 실권주(1212억원)를 주관사였던 KB증권이 모두 떠안으면서 지분 27.97%를 보유한 최대주주가 됐다. 회사 주인측(손기영 회장, 브리짓라이프사이언스 등) 지분율은 12%대로 낮아졌다.

비슷한 시기, 비슷한 방법과 규모로 증자를 추진했던 한국비엔씨는 공매도가 거의 없는 정상적인 거래가 이뤄졌고 증자도 계획대로 성공했다. 한국비엔씨는 코로나19(COVID-19) 치료제 개발을 위해 1500억원 가량을 증자했고 엔지켐생명과학의 유상증자도 코로나19 백신도입 자금 조달용이었다.


공매도 투자자들은 막대한 이익을 낸 것으로 보인다. 최근 1년간 엔지켐생명과학 공매도 거래의 평균단가는 6만2364원, 총 거래수량은 277만884주였다. 현 주가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이익이 1082억원으로 추정된다. 피해는 고스란히 기존 주주들이 입었다.

KB유상증자 물량→투자조합 3곳으로 블록딜
[단독]엔지켐생명, 증자틈탄 폭탄거래로 거액 챙긴 공매도 세력


공매도에는 회사와 유상증자의 업무흐름을 잘 알고 있는 관계자가 관여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들의 차익실현 방식에도 관심이 몰린다. 공매도는 매도를 먼저한 후 환매수해 거래를 마무리한다. 엔지캠생명과학 공매도 투자자들은 공매도한 물량(277만주)을 넘을 만큼 주식을 되사야 한다.

KB증권의 입장도 곤란하게 됐다. 실권주를 떠안아 최대주주(27.97%)가 됐지만 금산법(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때문에 20% 이상 지분을 보유하기 어렵다. KB증권은 지난 3월 21일 119만4538주(8.76%)를 투자조합 3곳(트리니신기술조합, 포스라빌조합, 폴리스니조합)에 블록딜로 넘겼다. 이들은 회사 전망을 좋게 보고 지분을 가져간 장기투자자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이 물량이 향후 공매도 투자자들에게 넘어가 공매도 환매수에 활용된다면 문제가 생긴다. 우선 자본시장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이 이슈가 된다. 주관사가 보유하게 된 물량을 받거나 신주인수권을 매수하는 사례도 공매도 투자자가 유상증자에 참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에 투자조합 3곳 관계자는 "당분간 주식을 매각할 계획이 없으며 공매도 투자자들과 접촉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금융위, 자본시장법 개정해 공매도투자자 유상증자 금지했지만…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3월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개정해 공매도 투자자가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했다. 집중 공매도를 통해 기업 주가를 끌어내린 후 낮은 가격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차익을 거두는 악성거래가 소액주주 피해로 연결된다고 판단했다. 참여가 금지된 유상증자에 참여했을 경우 부당이득의 1.5배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한 법무법인 관계자는 "법을 통해 공매도와 유상증자의 연결고리를 막았다 해도 정작 실무측면에 들어가면 해석이 어려운 것들이 있다"며 "주관사가 보유하게 된 물량이 시장에 풀려 2~3차 거래가 이뤄진 후 공매도 세력에 넘어갔을 경우 책임소재를 묻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공매도의 환매수 시한을 명확히 하고 총액인수 유상증자시 주관사의 지분매각 기준과 대상을 엄격히 하는 보완책이 필요하다"며 "유상증자가 진행되는 일정은 주가가 불안정한 시기인 만큼 공매도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는 만큼 일일 한도를 정하는 등 규제를 타이트하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매도-유상증자 규제에 사각지대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증자가 확정되는 마지막 1주일(증자 최종가격 결정일 다음날~증자대금 납입일)에 고밀도 공매도로 주가를 하락시켜 증자를 실패하게 할 수 있는 만큼, 이 기간에는 공매도를 금지시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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