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기관으로 추산되는 공매도 투자자들은 지난해 5월부터 이달 현재까지 엔지켐생명과학 주식 277만884주를 공매도했다. 발행주식(증자전 833만1345주)의 33%가 넘는 수준이다. 금액으로는 1728억원어치가 넘는다. 시가총액(3300억원)과 비교해도 공매도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공매도 거래가 1년간 이어졌는데 집중 공격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이뤄졌다. 이 시기는 엔지켐생명과학이 유상증자를 추진(9월27일 발표)하던 시기와 맞물린다. 지난해 9월 8만원선을 유지하던 엔지켐생명과학 주가는 고밀도 공매도가 쏟아지면서 10월 권리락을 포함해 7만원대로 하락했고 연말에는 5만원대까지 떨어졌다.
공매도 공격 속 회사의 자금계획도 대폭 수정됐다. 유상증자 규모는 당초 예정했던 3164억원에서 1685억원으로 반토막 났다. 주주 가운데 28% 가량만 증자에 참여했고 실권주 공모도 실패했다. 결국 실권주(1212억원)를 주관사였던 KB증권이 모두 떠안으면서 지분 27.97%를 보유한 최대주주가 됐다. 회사 주인측(손기영 회장, 브리짓라이프사이언스 등) 지분율은 12%대로 낮아졌다.
비슷한 시기, 비슷한 방법과 규모로 증자를 추진했던 한국비엔씨는 공매도가 거의 없는 정상적인 거래가 이뤄졌고 증자도 계획대로 성공했다. 한국비엔씨는 코로나19(COVID-19) 치료제 개발을 위해 1500억원 가량을 증자했고 엔지켐생명과학의 유상증자도 코로나19 백신도입 자금 조달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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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매도 투자자들은 막대한 이익을 낸 것으로 보인다. 최근 1년간 엔지켐생명과학 공매도 거래의 평균단가는 6만2364원, 총 거래수량은 277만884주였다. 현 주가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이익이 1082억원으로 추정된다. 피해는 고스란히 기존 주주들이 입었다.
KB유상증자 물량→투자조합 3곳으로 블록딜
KB증권의 입장도 곤란하게 됐다. 실권주를 떠안아 최대주주(27.97%)가 됐지만 금산법(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때문에 20% 이상 지분을 보유하기 어렵다. KB증권은 지난 3월 21일 119만4538주(8.76%)를 투자조합 3곳(트리니신기술조합, 포스라빌조합, 폴리스니조합)에 블록딜로 넘겼다. 이들은 회사 전망을 좋게 보고 지분을 가져간 장기투자자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이 물량이 향후 공매도 투자자들에게 넘어가 공매도 환매수에 활용된다면 문제가 생긴다. 우선 자본시장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이 이슈가 된다. 주관사가 보유하게 된 물량을 받거나 신주인수권을 매수하는 사례도 공매도 투자자가 유상증자에 참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에 투자조합 3곳 관계자는 "당분간 주식을 매각할 계획이 없으며 공매도 투자자들과 접촉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금융위, 자본시장법 개정해 공매도투자자 유상증자 금지했지만…금융위원회는 지난해 3월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개정해 공매도 투자자가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했다. 집중 공매도를 통해 기업 주가를 끌어내린 후 낮은 가격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차익을 거두는 악성거래가 소액주주 피해로 연결된다고 판단했다. 참여가 금지된 유상증자에 참여했을 경우 부당이득의 1.5배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한 법무법인 관계자는 "법을 통해 공매도와 유상증자의 연결고리를 막았다 해도 정작 실무측면에 들어가면 해석이 어려운 것들이 있다"며 "주관사가 보유하게 된 물량이 시장에 풀려 2~3차 거래가 이뤄진 후 공매도 세력에 넘어갔을 경우 책임소재를 묻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공매도의 환매수 시한을 명확히 하고 총액인수 유상증자시 주관사의 지분매각 기준과 대상을 엄격히 하는 보완책이 필요하다"며 "유상증자가 진행되는 일정은 주가가 불안정한 시기인 만큼 공매도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는 만큼 일일 한도를 정하는 등 규제를 타이트하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매도-유상증자 규제에 사각지대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증자가 확정되는 마지막 1주일(증자 최종가격 결정일 다음날~증자대금 납입일)에 고밀도 공매도로 주가를 하락시켜 증자를 실패하게 할 수 있는 만큼, 이 기간에는 공매도를 금지시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