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해군 흑해함대 순양함 모스크바호/사진=로이터
러시아가 이번 공격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자국 영토를 목표로 이뤄진 우크라이나의 공격이었다. 러시아 당국은 우크라이나와 접경한 서부 지역이 연이어 우크라이나의 공격을 받아 주택이 파괴되고 민간인이 부상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정권이 러시아 영토에 자행한 테러성 공격에 대응해 키이우 시설에 대한 미사일 공격 횟수와 규모를 더 늘릴 것"이라고 예고했다.
모스크바호의 침몰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러시아 해군이 입은 최대 손실로 평가된다. 모스크바호의 군항 미사일은 우크라이나 전역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을 뿐 아니라, 군함 30여척의 지휘까지 맡는 일종의 컨트롤 타워였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공격으로 모스크바호가 침몰했다는 주장을 전면 부인하는 것도 군의 사기와 직결되는 핵심 시설이기 때문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탄약이 폭발해 선체가 파손됐고, 이후 폭풍우를 만나 균형을 잃고 가라앉았다는 주장이 차라리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16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한 주택에서 한 주민이 잔해를 살피고 있다./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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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러시아군의 전력이 집중된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의 공세가 거세지고 있다. 파블로 키릴렌코 도네츠크 주지사는 전날 "이 지역 상황이 더욱 긴장되고 있다"라며 "포격과 공습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루한스크주의 세베로도네츠크시의 경우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도시의 70%가 파괴됐다. 전쟁 전 12만명이 살던 이 도시에는 현재 주민 2만여명이 남아있는 상태다.
러시아군의 포격 대상지역들에는 군사시설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주택지 구역들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르키우 주택가에도 포격이 이뤄져 생후 7개월 아기 등 민간인 10명이 숨지고 35명이 다쳤다. 미콜라이우에서는 이날 도시에 남은 집속탄 때문에 5명이 사망하고 15명이 다쳤다는 보도가 나왔다. 비탈리 김 미콜라이우 주지사는 주민들에게 낯선 물건에 접근하지 말라고 호소했다.
폴란드 접경지역으로 비교적 안전지대였던 서부 르비우도 이날 아침부터 공습이 보고됐다. 막심 코지츠키 르비우 주지사는 텔레그램을 통해 "러시아 침략군의 수호이(Su)-35 전투기에서 르비우 지역을 향해 미사일이 발사됐다"며 "우크라이나 공군 서부사령부 소속 대공미사일 부대가 순항미사일 4발을 파괴했다"고 전했다.
또 러시아는 크름반도와 돈바스 지역을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 마리우폴을 사실상 함락했다고 주장하며 우크라이나군에 항복을 요구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아직 함락당하지는 않았다고 반박하면서 마리우폴에서 자국군과 자국민을 없애면 협상을 중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평화적 해결'…"푸틴, 핵무기 사용할 수도"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협상을 통한 사태 해결은 사실상 무산되는 모양새다. 지난달 말 터키에서 열린 5차 평화회담에서 돌파구가 마련되는 듯 했으나, 부차 민간인 학살 의혹과 모스크바호 침몰로 상황은 악화하고 있다. 서방은 러시아에 민간인 학살에 따른 책임을 물으며 대러 제재를 강화하고,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나서고 있다.
서방의 압박의 심화하자 러시아도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러시아는 최근 외교문서를 통해 "우리는 미국과 그 동맹들에 무책임한 우크라이나 무장화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며 "이는 지역과 국제 안보에 예측 불가능한 결과를 의미한다"고 경고했다. 더불어 러시아 고위 관료들에 대한 강력한 제재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보리스 존슨 총리 등 영국 고위 관료와 정치인 13명의 입국을 금지했다.
전쟁이 길어지며 궁지에 몰린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도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술 핵무기나 화학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에 전 세계가 대비해야 한다"며 "누구도 핵무기 사용 가능성 여부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