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리율 벌어지는 '원유 곱버스'…2년 전 눈물의 손절 사태 재현?

머니투데이 김사무엘 기자 2022.04.07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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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리율 벌어지는 '원유 곱버스'…2년 전 눈물의 손절 사태 재현?


국제 유가 하락에 베팅하는 ETN(상장지수채권)에 투자금이 몰리며 괴리율이 급속도로 벌어지고 있다. 괴리율이란 상품의 실제 가치와 시장 가격 간 차이로 괴리율이 벌어지면 그만큼 비싸게 샀다는 의미다.

2년 전 유가 폭락 사태로 수 많은 개미(개인 투자자)들이 눈물의 손절을 해야 했던 '원유 레버리지' ETN 사태가 이번엔 반대로 곱버스(인버스 레버리지)에서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가치보다 20% 이상 비싸게 산 '원유 곱버스' 투자자들
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 일일 변동폭의 역으로 2배를 추종하는 '삼성 인버스 2X WTI원유 선물 ETN'(이하 '삼성 원유 곱버스')은 전일 대비 10원(7.41%) 오른 145원에 거래를 마쳤다.

해당 상품의 이날 지표가치는 139.58원이다. 지표가치란 ETN의 실제 가치다. ETN은 발행사가 기초지수 수익률만큼 투자자에게 수익금을 지급하는 일종의 수익증권이므로 ETN의 실제 가치는 기초지수 가격과 일치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 거래될 때는 수요와 공급에 따른 시장 가격으로 거래되기 때문에 수급 불균형이 생기면 지표가치와 시장가격 간 차이가 발생한다. 이를 괴리율이라 한다.



이날 삼성 원유 곱버스의 괴리율은 3.88%다. 지표가치(139.58원) 대비 시장 가격(145원)이 3.88% 비싸게 형성돼 있다는 의미다.

유가 하락을 예상한 투자자들이 곱버스 투자에 몰리면서 실제 가치보다 더 높은 가격이 형성된 것이다. 개인 투자자들은 지난달 2일부터 지난 5일까지 약 한 달 간 삼성 원유 곱버스 ETN 1375억원 어치를 순매수했다. 신한과 QV 상품도 각각 553억원, 118억원 사들였다. 같은 기간 개인의 전체 ETN 순매수(1240억원)보다 많은 금액이다.

투자금이 몰리면서 원유 곱버스의 괴리율은 더 벌어졌다. 3월들어 10%대로 벌어진 괴리율은 중순 이후부터 20%대로 급격히 커졌다. 신한 원유 곱버스는 지난 24일 괴리율이 최고 28.55%까지 확대됐다. 괴리율 급등으로 지난달 16일부터 투자유의종목으로 지정됐음에도 괴리율이 진정되지 않자 한국거래소는 지난달 29일 하루동안 해당 상품의 거래를 정지했다.


삼성 원유 곱버스 역시 괴리율이 최고 25%까지 벌어지면서 지난달 24일부터 지난 5일까지 투자유의종목이 됐다. 투자유의종목이 되면 실시간 거래가 아닌 단일가매매가 적용된다.

LP 물량 급속도 소진…2년 전 '눈물의 손절' 사태 재현되나
임종철 디자인기자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임종철 디자인기자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최근 괴리율은 다소 진정된 상태지만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ETN은 괴리율 확대를 막기 위한 장치로 유동성공급자(LP)가 있다. ETN의 경우 보통 해당 상품을 발행한 증권사가 LP 역할을 한다. LP는 ETN 물량을 넉넉히 확보해 놓고 투자자들의 원활한 거래를 위해 실시간으로 매수·매도 호가를 제출한다.

통상적으로 LP는 전체 ETN 상장주식수의 90% 이상을 보유한다. 하지만 원유 곱버스 상품의 경우 수요가 몰리면서 현재 LP 물량이 80% 이상 소진된 상태다. 상품별 LP 보유 비중은 △삼성 원유 곱버스 15% △신한 원유 곱버스 15% △QV 원유 곱버스 28% 수준이다.

발행사들도 급격한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추가 물량을 계속 발행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삼성증권은 지난달부터 지난 5일까지 6차례에 걸쳐 총 5억4700만주를 발행했다. 총 수량은 3억5000만주에서 8억9700만주로 2배 이상 늘었지만 여전히 LP 보유 물량은 부족하다.

LP가 유동성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면 2년 전 원유 레버리지 폭락 사태가 재현될 수도 있다. 2020년4월 국제 유가가 폭락하자 투자자들은 반대로 상승에 베팅하는 레버리지 상품에 몰렸다. LP 물량은 금방 동이 났다. 유가는 계속 하락하는데 유동성 공급이 제때 되지 않자 괴리율은 90% 이상으로 급격히 벌어졌다. 실제 가치보다 2배 더 비싸게 샀다는 의미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2년 전 사태를 막기 위해 LP가 전체 발행물량의 20% 이상은 항시 보유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며 "이에따라 발행사들이 계속 추가 물량을 발행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원유 곱버스는 유가 하락에 베팅하는 상품인 만큼 유가가 떨어져야 이득이다. 배럴당 130달러 이상 치솟았던 국제 유가는 최근 진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100달러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삼성, 신한, QV 등 원유 곱버스 가격은 지난달 초 대비 34~35% 하락했다. 문제는 곱버스의 특성상 기초지수가 오래 횡보하거나 변동성이 심하면 원금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손실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국제 유가가 고공행진을 하고 있음에도 2년 전 폭락했던 원유 레버리지 ETN 가격은 아직도 마이너스 90% 상태다. 괴리율이 상당히 벌어진데다 유가 폭락까지 겹치면서 손실을 복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원유 곱버스 역시 유가 하락을 기다리며 '바이 앤 홀드' 전략을 취했다간 다시는 원금을 만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기초자산인 원유 선물의 롤오버(월물 교체) 비용과 기타 제비용 등을 감안하면 오래 보유할수록 손실은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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