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동성끼리 혼인신고 접수가능...LGBT "의미있는 기록·변화"

머니투데이 하수민 기자, 강주헌 기자 2022.04.0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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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관계등록 시스템상 '접수'만 가능, '수리'는 불가능…정부 "전산상 성별 오류로 혼인신고 등록안되는 경우 방지목적"이라지만 LGBT "동성혼인 신고시도, 정부 전산기록에 남는 것 자체도 의미 있어"

/사진=뉴스1  /사진=뉴스1


"[성별이 남성인데 배우자(아내)로 등록하겠습니까] → [예]"

혼인신고 및 출생신고 시 양측이 동성일 경우에도 접수가 가능하도록 시구청의 '가족관계등록 전산시스템'이 변경됐다. 다만 동성 혼인신고와 출생신고 수리는 여전히 불가능하다.

LGBT(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 운동을 지지해온 측은 '동성 혼인신고 등록 접수'가 공식적으로 가능해지면서 현행법 해석상 법적 인정이 어려운 동성부부의 권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있다. 동성부부가 혼인신고를 했다는 시도가 시스템에 남게 되면서 통계 자료로 활용될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1일 머니투데이 취재를 종합하면 시구청의 가족관계등록 전산시스템이 정비된 지난달 25일부터 같은 성별일 경우에도 혼인신고서 접수가 가능해졌다. 신고서를 접수 받은 공무원이 해당 서류를 받고, 신고서를 전산망에 등록하는 과정 자체는 진행된다.

동성끼리 혼인신고를 할 때 전산에 입력하는 과정에 '동성의 경우에도 등록하시겠습니까?'라는 팝업창이 뜨지만 '예' 버튼을 누르면 서류 접수가 진행된다.



하지만 그 이후 과정에서 해당 신고서는 불수리된다. 가족관계증명서와 관련 서류를 기입하는 '기록' 과정과 '등기' 과정에서 '불수리' 처리 된다.

일반적인 혼인·출생신고 절차는 3단계(접수→기록→교합) 과정을 거친다. 구청 담당 공무원이 신고서를 전산시스템으로 접수 받은 뒤 신고자 양측의 가족관계증명서와 관계 서류를 기록한다. 그 이후에 해당 서류를 법원으로 보내기 위해 등기번호를 부여하는 교합과정으로 절차는 마무리된다.

정부는 이같은 시스템 개선이 동성혼 제도화를 위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전산시스템 상 오류로 이성끼리 혼인신고를 하더라도 접수 자체가 막히는 경우가 있어 성별에 상관없이 우선 접수는 가능토록 시스템을 변경했다는 취지다.


서울의 한 구청관계자는 "앞서 수기 기록을 전산화 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생물학적으로도 주민등록상으로도 성별이 여자인데 가족관계등록 시스템 상 남자로 등록되어 있거나그 반대의 경우가 있어 혼인신고에 어려움을 겪은 사례가 있었다"며 "그런 문제를 조정하기 위해 3월 25일자로 등록 시스템이 정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전산시스템 정비 이전에는 동성혼의 경우 시스템에 입력 자체가 되지않아 접수하지 못한 채 법원의 판단을 기다렸다 최종 불수리되는 형태로 처리됐다.

2020년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를 집필한 김규진 작가는 종로구청을 방문해 동성의 배우자와 혼인신고를 하기 위해 4시간 정도 기다린 후 법원의 최종 불수리 판단을 받고 돌아갔다. 앞서 김씨는 2019년에 동성의 배우자와 미국에서 혼인신고를 마치고 돌아와 한국에서 결혼식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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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BT 당사자들도 이러한 변화가 동성혼 시도를 역사에 기록하는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혼인신고가 수리되지 않은 경우에도 10년 간 신청 당시 제출된 데이터가 보관된다. 21년 전 이날(2001년 4월1일) 세계 최초로 네덜란드에서 동성혼이 성립됐다. 하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에서는 동성 커플은 법적인 동반자로 인정받지 못하고있다.

소수자 차별금지 법안 마련에 힘써온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이러한 시스템적인 변화에 "한 시민의 적법한 권리로서 자기가 원하는 사람하고 혼인을 하고자 하는 명확한 시도가 있었음이 증명되는 것"이라며 "이것이 바로 제도적인 변화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겠지만 (법 제도화의) 근거로 삼을 수 있는 기록이 남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앞서 장 의원은 2020년 국정감사에서 인구주택총조사에서 동성배우자를 기타 동거인으로 구분하는 현 방식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기도 했다.

본인을 바이섹슈얼(양성애자)로 소개한 A씨(22)는 "당사자로 그리고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도 반가운 소식"이라며 "동성혼이 수리되거나 법제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동성혼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꾸리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기록되고 가시화되는 것은 중요한 변화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퀴어 혐오 진영에서 많은 비난을 받았던 것을 생각해보면 동성혼인신고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이 남는 것은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면서도 "다만 실재하는 사람들의 삶과 연결된 문제인 만큼 보다 빠르고 확실한 변화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실질적인 법제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성소수자로서 첫 정당 원내 대변인을 맡았던 오승재씨는 "행정이 동성 배우자의 존재 가능성을 전제로 내부 시스템을 자체 정비했다는 점에서는 일말의 의의가 있다"면서도 "행정 시스템이 동성결혼을 제도화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보다 판단의 책임을 사법부에 떠넘기기 위해 시스템을 정비했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법 제도화에 필요한 통계 수치를 지자체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생산해낼지는 의문"이라면서도 "그래도 변화의 의지만 있다면 10년동안 기록에 남는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발굴해 동성혼 법제화를 위한 통계수치로 이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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