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社, 각자대표 체제 속속 전환…중대재해법 방화벽?

머니투데이 박미리 기자 2022.03.30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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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社, 각자대표 체제 속속 전환…중대재해법 방화벽?


국내 제약·바이오사들이 잇따라 각자 대표이사 체제를 도입하고 있다. 표면적으론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결정이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일각에선 올해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에 대응하기 위해 위험을 분산하기 위함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중대재해법은 산업현장에서 근로자 사망 사고시 최고경영자에도 법적 책임을 묻는다.

30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제넥신 (7,040원 ▼110 -1.54%)은 최근 우정원 단독 대표이사 체제에서 우정원·닐 워머(Neil Warma) 각자 대표이사 체제로 전환했다. 닐 워머 신임 대표는 노바티스 스위스 본사에서 글로벌 제약 정책 및 마케팅 담당, 오펙사 테라퓨틱스와 바이오 테라퓨틱스 대표이사, 나스닥 상장사인 아이맵 바이오파마의 미국 총괄지사장 등 25년 넘게 제약·바이오 산업에서 경험을 쌓아 온 글로벌 경영전문가다. 회사 측은 이번 각자대표 전환과 관련 "경영 효율화를 위한 선출"이라고 설명했다.



경동제약 (6,260원 ▲10 +0.16%)도 류기성 단독 대표이사 체제에서 류기성·김경훈 각자 대표이사 체제로 전환을 알렸다. 창업주이자 류 대표 부친인 류덕희 명예회장 퇴임으로 류 대표 단독체제로 전환한지 약 9개월만이다. 김경훈 신임 대표는 글로벌 4대 회계법인이자 컨설팅 업체 어니스트앤영 감사본부 파트너 출신으로 2019년 경동제약에 최고재무책임자로 합류했다. 전반적인 재무·회계, 신사업 발굴, 투자 등의 업무를 총괄한다. 회사 측은 "각자대표 도입으로 전문성을 강화하고 회사 경쟁력을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클리노믹스 (1,870원 ▲48 +2.63%)는 김병철·정종태 공동 대표이사 체제에서 정종태·박종화 각자 대표이사 체제로 전환했다. 박종화 대표가 1년만에 대표로 복귀하는 게 특징이다. 울산과학기술원 교수인 박종화 대표는 연구개발에 역할의 무게가 실린다. 국민은행, 신한금융투자 등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정종태 대표는 경영 총괄이다. 회사 측은 "빠른 의사결정 등을 통해 경영 효율화를 이루고자 한다"고 했다. 김병철 전 대표는 대표에선 물러나나 사내이사로는 남는다. 그가 대표직을 내려놓은건 2011년 클리노믹스 설립 이후 처음이다.



그밖에 △마크로젠 (19,350원 ▼430 -2.17%) 이수강→이수강·김창훈 △파마리서치바이오 (29,250원 ▼700 -2.34%) 백승걸→백승걸·원치엽 △휴온스 (33,750원 ▼100 -0.30%) 엄기안→송수영·윤상배 △KPX생명과학 (1,845원 ▼42 -2.23%) 이기성→양준화·이기성으로 대표이사가 바뀐다. 모두 단독 대표이사에서 각자 대표이사 체제로의 전환이다. 클리노믹스와 마찬가지로 단디바이오 (3,115원 ▼175 -5.32%)는 박영민·김종원 공동 대표이사 체제에서 박영민·윤종선 각자 대표이사 체제로 전환했다.

각자 대표이사 체제는 여러명의 대표이사들이 각자 맡은 분야에 대해 대표이사로서 독자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공동 대표이사 체제는 여러명의 대표이사들이 합의 후 의사결정을 해야한다. 이론상으로만 보면 각자 대표 체제가 공동 대표 체제보다 속도감있는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각자 대표이사 체제 전환 배경으로 '경영 효율화'를 꼽는 이유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단독 대표이사 체제에선 대표 한명이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데 업무가 다양화된 요즘은 대표 한 명이 전문 분야를 다 세세히 알기가 사실상 어렵다. 그렇다보니 기업들에서 각자 대표이사 체제를 도입하는 사례가 많이 늘고 있다"며 "각자 대표이사 체제 하에서는 책임과 역할이 분담되기 때문에 최고경영자가 자신의 성과를 제대로 알 수 있다. 공동 대표이사 체제에 비해 추진력도 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최근 중대재해법 영향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김 교수 설명이다. 그는 "중대재해법은 사고발생시 최고경영자에도 책임을 지게 하는데 각자대표 체제 하에선 책임을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이 나눠지게 된다"며 "우리나라 산업재해 60%가 건설업에서 발생하긴 하지만 제약이나 바이오 산업에서도 화학, 의약품을 다뤄 재해가 많이 발생한다. 제약·바이오사들의 각자 대표이사 체제 전환은 올해 시행된 중대재해법도 감안한 결정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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