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일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은 달러당 123엔을 넘어섰다. 이는 2015년 12월 이후 6년여 만에 최저 수준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강제 침공한 지난달 24일 이후 6% 이상 떨어졌다. 주요국 통화 가운데는 터키 리라화 다음으로 낙폭이 크다.
일본 엔화는 한국 원화와 비교해도 가치가 낮아졌다. 이날 외환시장에선 엔화 환율은 100엔당 995원을 기록했다. 한국 돈 1000원을 들고가면 일본 엔화 100엔 이상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23~25일 장중 100엔당 1000원 밑으로 떨어졌다가 마감 때는 가까스로 1000원대를 넘어섰는데 이날은 종가 기준으로 900원대로 주저 앉았다. 100엔당 원화가 1000원 아래로 추락한 것은 지난 2018년 12월 이후 약 3년여 만이다.

올 들어 달러가 초강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미국과 정반대 통화정책을 펴는 등 탈동조화가 두드러진 일본의 엔화 가치 약세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나타나고 있지만 장기 저성장 상황인 일본은 지난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9%에 그쳤다. 일본은행이 국채를 계속 매입해 10년물 국채 금리 0%대를 유도하려는 완화적인 통화 정책을 지속하고 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는 18일 금융정책결정회의 후 "미국의 물가 상승률은 8%, 유럽은 6%에 가까운 반면 일본은 1%가 채 안 된다"며 "미국과 유럽이 금리를 올리는 등 통화정책에 나서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일본이 따라 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밝혔다.
일본 경제가 역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것도 일본은행이 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하는 이유다. 오는 7월 참의원(의회 상원) 선거를 앞두고 있어 경기 부양에 나서야 하는 점도 한 요인이다. 엔화가 약세일 경우 가뜩이나 높은 에너지 수입 가격을 더 끌어올린다는 문제가 있지만 일본 금융당국은 현재 통화정책을 유지하는 것이 경제에 더 이롭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블룸버그는 짚었다.


일본 내에서 환율 방어선으로 알려진 '1달러=125엔'이 무너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노지 마코토 SMCB닛코증권 수석 전략가는 "일본의 경상수지 적자가 일상화하면 엔화 가치가 달러당 125~130엔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봤다.
앨버트 에드워드 소이에테제네랄(SG) 전략가도 "외환 트레이터들이 이를 악물고 엔화를 팔아 치우고 있다"며 "엔·달러 환율이 1990년 이후 최고인 150엔까지 치솟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위험을 피하려고 엔화를 샀다가는 오히려 손해 볼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엔저 현상이 한국 수출 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세계무역 시장에서 한국과 일본이 경합을 벌이는 분야가 많기 때문이다. 김찬희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단기적으론 큰 문제가 없지만 하반기까지 엔저 기조가 이어질 경우 업종별로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석유, 철강, 기계, 자동차 등 일본과 수출 경합도가 높거나 추가로 확대된 산업은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