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로 문빈&산하, 사진제공=판타지오
걸그룹은 한때 청순과 섹시로 콘셉트가 양분됐을 만큼 그 쓰임이 지배적이었다. 씨스타나 A.O.A가 대표적인 섹시 걸그룹이었다. 아래로 레인보우, 나인뮤지스, 달샤벳, 스텔라 등이 존재했다. 또 다른 인기 걸그룹인 포미닛, 티아라, 시크릿, 카라 등도 섹시 콘셉트를 곧잘 활용하곤 했다. 보이그룹은 2PM 정도가 '짐승돌'이라는 애칭으로 "섹시하다"는 말을 듣곤 했다. 아이돌에게는 성별에 따라 주어진 콘셉트가 명료했다. 걸그룹은 청순과 섹시, 보이그룹은 카리스마와 청량.
사진출처=(여자)아이들 '톰보이' M/V 스틸
요즘 걸그룹의 대세는 크러시(Crush)다. 크러시는 섹슈얼한 감정이 동반되지 않은 강렬한 호감 혹은 감탄을 뜻한다. 크러시 콘셉트에서 주요하게 운반하는 건 파워풀함이다. 노래로는 자의식 강한 주체성을 강조하고, 퍼포먼스에는 역동적이면서 파워풀한 안무를 활용하는 것이 크러시의 완성이다. 다리나 엉덩이 같은 섹슈얼한 신체 부각은 최대한 지양하고, 칼군무 중심의 절도 있는 브레이킹 등을 적극 이용한다. 파워 퍼포먼스를 하던 보이그룹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니스커트가 아직 주 무대 의상으로 쓰인다는 점에서 섹시 요소가 전혀 배제된 것은 아니지만,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은연 중에 띄우는 것이 추세다.
한 가요 관계자는 "성인지 감수성이 높아지면서 섹시 콘셉트에 대한 위험 요소가 많아졌다. 신인 걸그룹의 경우 10대 멤버들이 많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다"며 "크러시한 콘셉트의 경우 이러한 위험 요소를 배제하면서도 글로벌 팬들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진다. K-팝의 인기 요인은 파워풀한 퍼포먼스인데 이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게 크러시한 콘셉트다. 특히 청순 콘셉트의 경우는 아시아권에선 잘 먹히지만, 미국이나 유럽 등에선 그렇지 못하다"고 설명했다.
사진출처=2PM '해야 해' M/V 스틸
젠더리스가 시대의 변화를 이끌면서 보이그룹도 걸그룹의 전유물이던 섹시 콘셉트를 자연스럽게 흡수했다. 태민처럼 과감한 접근은 아니더라도 퍼포먼스에 있어 파워나 카리스마가 깃든 남성성만 강조하지 않고, 몸을 쓸어내리거나 웨이브를 타고 몸매 윤곽이 드러나는 의상을 입는 식으로 소화하고 있다. 섹시함을 운반한 2PM의 '우리집'이 알고리즘을 타고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온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시대의 변화 앞에 더욱 다양성을 품게 된 K-팝. 글로벌 음악 시장의 메인스트림으로 올라서게 된 건 이러한 시대 흐름을 잘 읽어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