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3학년인데 "미팅은커녕 동기도 몰라요"…코로나학번의 눈물

머니투데이 강주헌 기자, 홍재영 기자, 양윤우 기자, 황예림 기자 2022.03.1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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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코로나 그레이존(중)

편집자주 코로나19로 공공이 분담하던 역할이 제기능을 못하면서 가정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거리두기와 비대면 일상화에 따른 부작용도 커졌다. 매 맞는 아이, 학대당하는 부모가 있어도 주변에서 파악하기가 쉽지 않고, 홀로 살던 누군가 죽어도 알아채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코로나19가 만든 사각지대, 이른바 '코로나 그레이존'에 갇힌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짙어진 우리 사회의 그늘을 짚어본다.

코로나 2년에 늘어난 '금쪽같은 내새끼들'



코로나 2년 '학폭' 줄어 좋아했더니…"부모가 때렸다"
대학 3학년인데 "미팅은커녕 동기도 몰라요"…코로나학번의 눈물


"아이와 나, 서로 감정 소모가 더 심해졌어요."

초등학교에 막 입학한 아들을 키우는 김선경씨(39)는 아이와 냉전 중이다. 코로나19(COVID-19) 사태로 어린이집·유치원에 가는 시간이 제한됐을 때 감정 갈등이 증폭됐다.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오히려 더 사이가 소원해졌다.



밖에 나가는 시간이 줄어들자 아들은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시청하는 시간이 늘었다. 김씨는 "아들이 스마트폰에 과의존하는 걸 두고 볼 수 없어 어르고 달래봤지만 돌아오는 건 아이의 짜증이었다"며 "관계가 소원해지자 더욱 아이를 다루기 어렵고 또 그 공백을 스마트폰이 채우는 악순환"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 2년, 비대면 수업와 재택근무 증가로 가족 간 접촉면이 넓어졌다. 아이 양육에 가정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는 걸 의미한다.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로 대표되는 양육 예능이 인기를 끄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초등학생 5학년 아이의 엄마 이모씨(42)는 아이와 갈등을 겪던 때를 기억한다. 집에서 비대면 수업이 진행될 때 아이의 학습태도를 목격하면서다. 이씨는 "아이가 학교에 있을 때는 몰랐지만 수업에 전혀 집중을 하지 않고 휴대폰을 하며 딴짓을 하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고 말했다.


이씨는 "아이가 수업을 들을 때 제 시간에 맞춰 접속하는지 수업에 필요한 준비물을 챙겼는지 하나하나 다 따지게 됐다"며 "서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극대화됐고 내가 화가 많이 날 땐 아이에게 물리력을 행사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코로나로 학교 수업이 제한되면서 학교 폭력은 줄어들었다. 교육부의 2020년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학교폭력 피해를 봤다는 학생은 전체 응답 초·중·고 학생 295만명 중 0.9%(2만6900명)였다. 코로나 사태 이전인 2019년 1.6%보다 0.7%포인트 하락했다.

등교수업 일수가 늘어날 때는 학교 폭력 피해가 다시 증가했다. 교육부의 2021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학교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는 학생은 전체 응답자의 1.1%(3만6300명)로 2020년 조사보다 0.2%포인트 증가했다.

대학 3학년인데 "미팅은커녕 동기도 몰라요"…코로나학번의 눈물
코로나 사태 이후 아동학대 신고 건수 증가폭도 축소됐다. 8일 기준 보건복지부가 조사한 가장 최신 통계인 '2020년 아동학대 통계'에 따르면 아동학대 신고 접수 건수는 4만2251건으로 전년대비 2.1% 증가하는 데 그쳤다. 아동학대 신고접수 증가폭은 2017년 15.1%, 2018년 6.6%, 2019년 13.7% 였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수치를 보고 아동학대가 줄어든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코로나19 이전 시대에는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등에서 아동학대의 흔적들이 발견될 수 있었다면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하면서 학대받는 아동들이 외부의 도움을 받을 기회가 줄어들게 됐다. 취약계층 등 아동학대 고위험 가정의 경우, 발견되지 못한 채 학대에 시달리는 아동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아동학대 신고접수 증가폭은 예년보다 낮았지만 가해자가 부모인 경우(82.1%)는 2012년 이후 가장 컸다. 43명은 학대로 사망했다. 또 전체 아동학대 사례의 87.4%(2만6996건)가 가정에서 발생했다.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와 같이 아동을 돌보고 교육하는 기관에서 발생한 아동학대는 각각 658건(2.1%),129건(0.4%), 893건(2.9%)이었다. 아이와 부모가 집에 함께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다보니 갈등관계가 많아졌고 가정불화를 넘어 아동학대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아진 것이다.

공진영 서울 동대문구 가족센터 상담사는 "재택근무·수업으로 가족 모두가 한 공간에 모여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부모·자녀 갈등도 많아졌다"며 "기관에서 단체로 부모·자녀 갈등 상담을 의뢰를 하는 경우도 있고 부모들이 직접적으로 자녀 관련 상담을 많이 신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 상담사는 "아이는 코로나로 외부활동도 못하는데 사회적 관계망이 가족 안으로 굉장히 좁혀진 상태에서 피로감이 누적된다. 부모와 자녀 간에 부정적인 상호관계를 하게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2년, '금쪽이' 보육·교육 모두 떠맡은 부모들
/사진=뉴스1/사진=뉴스1
#경북에 거주하는 안모씨(남·37)는 자녀 보육 문제로 고민이 많다. 올해 유치원에 입학하는 첫째 딸이 코로나19로 외부 활동을 많이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내는 인터넷으로 교보재나 놀거리를 구매한다. 보육과 교육을 모두 담당하게 되며 부모로서 부담과 고민이 이중으로 늘었다.

안씨는 지난해 둘째가 태어난 뒤로 외부 활동을 더욱 삼가고 있다. 안씨는 "아직 아이들 나이가 어려 교육보다도 체험 활동을 많이 시켜주고 싶은데 쉽지가 않다"며 "선생님이 체험 거리를 가져와서 하는 방문 교육을 신청한 적이 있지만 친구들도 없이 혼자 하는 거라 한계가 있다"고 했다.

◇코로나19로 상담 기회도 줄어든 부모들

공공이 수행하던 '돌봄'과 '교육'을 가정에서 대부분 수행하게 되면서 부모들의 고민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외부의 도움을 받기는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로 자녀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면서 부모들의 자녀에 대한 영향력, 바람직한 역할 수행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졌다고 말한다.

서소정 경희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현재 부모들이) 온라인상에서 무분별하게 제공되는 자녀 양육 관련 영상 프로그램 등을 수동적으로 시청하는데 그치고 있다"며 "많은 부모들이 부모 역할 수행에 있어 어려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처럼 자녀 양육에 대한 고민을 새롭게 떠안게 된 부모들이 있지만 외부의 도움을 받기는 쉽지 않다. 코로나19가 확산하고 관련 상담이 증가하면서 양육 상담 기관들도 활동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거나 대면 상담을 제한적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코로나 확산 초기에는 상담 기관에서 대기자가 밀리는 일도 발생했다.

8일 중앙육아종합지원센터(센터) 통계에 따르면 코로나 확산 이후인 2020년 전국의 육아종합지원센터로 접수된 전체 양육 상담 건수는 3만 9202건이었다. 직전 2019년의 9만 8741건에서 약 60%가 감소했다. 코로나19 여파로 부모들의 자녀 교육에 대한 고민은 늘어난 상황에서 상담 건수는 줄어든 이유 역시 코로나 상황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센터 관계자는 "2020년 당시 코로나가 처음 확산하면서 센터가 업무를 일시 중단하는 경우들이 있었다"며 "센터가 문을 닫으니 전화 상담 또한 운영하지 못했던 것이 전체 상담 건수가 줄어든 데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2019년과 2020년의 센터 인터넷 홈페이지로 접수된 상담 건수는 7934건과 7053건으로 큰 차이는 없었다. 그러나 전화 상담 건수는 5만 6086건에서 1만 6299건으로 71% 가까이 감소했다. 대면 상담의 경우 3만 4721건에서 1만 5492건으로 절반이 넘게 감소했다.

◇비대면 상담 여러 제약 해소하지만 한계 있어…"부모 교육 지원해야"

/사진=임종철 디자인 기자/사진=임종철 디자인 기자
상담 기관들은 코로나19 상황에 맞춰 비대면 상담을 늘리는 등 상담 수요를 충족할 방법을 찾고 있다. 전화, 화상 상담 등이 도입됐지만 현장에서 양육 상담을 하는 상담사들의 비대면 상담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코로나19 초반에는 비대면 상담에 대한 내담자들의 거부감이 있었지만 현재는 오히려 자신에 대한 노출을 줄일 수 있는 비대면 상담을 통해 덜 방어적으로 임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

비대면 상담도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모든 사례에 적용하기엔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미순 부산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상담사는 "상담에서 내담자의 눈이나 손 등 비언어적 특성은 중요한 탐색자료"라며 "화상 상담으로는 이런 특성들을 모두 파악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어 아쉽다"고 했다.

부모들이 새롭게 경험하는 양육의 어려움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공공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지자체별로 운영되는 육아종합지원센터의 기능 재정비와 더불어 상담과 부모 교육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온라인상 부모 모임을 오프라인과 연계해 심리, 상담 전문가 등과의 수시 상담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부모 바우처 등 실비 지원을 통해 1:1 멘토-멘티제를 구축할 수 있다"고 했다.

아이들 몸에 늘어나는 상처…'SOS' 못 보는 모니터 속 선생님들
"아이들이 끼니를 못 먹어서 깡말랐는데 수개월이 지나서야 발견됐어요."

코로나19(COVID-19)로 원격수업이 이어지던 2020년 하반기, 미정이(가명)와 소정이(가명)는 아동권리보장원의 도움으로 정신의학과를 찾았다. 초등학생·중학생이던 미정이와 소정이는 평균 체중에 한참 못 미치는 마른 몸에 눈에 띄게 왜소한 키를 갖고 있었다. 밥과 간식을 주던 학교와 지역 아동센터가 코로나19 여파로 문을 닫으면서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 탓이었다.

한눈에 봐도 아동학대가 의심됐다. 미정이와 소정이는 잔뜩 위축돼 있었다. 상담 내내 의사와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미정이와 소정이를 상담한 칠곡경북대병원 정운선 정신의학과 교수는 "코로나19로 학교가 록다운(봉쇄 조치)된 뒤 아이들이 매일 라면과 인스턴트 식품만 먹은 것으로 추정됐다"며 "지속적인 학대 의심 정황이 곳곳에서 발견됐는데 2020년 하반기 무렵에서야 아동권리보장원에 신고가 됐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며 아동학대가 '음지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아동학대 비율이 높아지는 가운데 이를 감시할 눈은 줄어들면서 학대 문제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기 쉬운 환경이 형성됐다.

◇등교 않자 매 끼니 라면으로 때워…학원 강사가 뒤늦게 학대 신고하기도

/사진=게티이미지뱅크/사진=게티이미지뱅크
15살 정은이(가명)도 코로나19 이후 엄마로부터 지속적인 학대를 받아왔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엄마에게서 볼 수 없던 모습이었던 탓에 아이들은 어디에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했다. 원격수업이 전면적으로 시행되던 때라 학교에서도 정은이의 학대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정은이가 학대받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곳은 학원이었다. 정은이의 몸에 상처가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학원강사가 신고하면서 정은이의 학대 사실이 알려졌다.

조사결과 정은이의 어머니는 물건을 던지고 아이들을 때리는 등 지속적으로 학대해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처음에는 정도가 약했지만 학대는 지속됐고 강도는 점차 강해졌다. 정은이의 어머니는 "코로나19로 자녀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학대에 이르게 됐다"고 진술했다.

정은이를 상담했던 가정폭력 전문상담사 김모씨는 "학원 강사가 발견하기 전까지 학대가 조금씩 지속됐던 것으로 파악됐다"며 "아버지는 평일에 외부에 나가 있어 학대 사실을 전혀 몰랐고 원격수업이 전면적으로 시행되던 때라 학교에서도 알아채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가정 내 학대 7.9%p 느는 동안 교사 신고는 '반토막'

아동학대 음지화 현상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보건복지부가 매해 발간하는 '아동학대 주요 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유행 이후 아동학대 신고 건수와 재학대 건수는 직전 2년에 비해 모두 증가했다.

아동학대 신고 접수 건수는 △2018년 3만6417건 △2019년 4만1389건 △2020년 4만2251건으로 증가 추세를 보였다. 재학대 건수도 △2018년 2543건 △2019년 3431건 △2020년 3671건으로 집계됐다.

반면 학대를 감시하는 일은 어려워졌다. 가정에서 은밀하게 발생하는 학대는 늘었지만 등교가 제한적으로 이뤄지면서 교사들이 학대 정황을 발견할 기회는 줄었기 때문이다.

실제 '가정 내'에서 발생한 아동학대 건수는 △2018년 1만9748건 △2019년 2만3883건 △2020년 2만6996건으로 늘었다. 전체 장소 중에서 가정 내에서 발생한 사건이 차지하는 비율도 2018년 80.3%, 2019년 79.5%에 비해 2020년 87.4%로 크게 증가했다.

같은 기간 신고 의무자에 해당하는 초중고교 직원에 의한 아동학대 신고 비율은 2018년 19.1%, 2019년 15.4%에서 2020년 9.8%로 대폭 줄었다.

◇코로나19로 가정 내 스트레스 커졌는데…사회적 감시는 사라졌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전문가들은 학교·지역 사회와 분담했던 양육 부담이 코로나19 이후 전적으로 부모에게 떠맡겨지면서 가정의 양육 스트레스가 커졌다고 지적한다. 이와 동시에 아동학대를 감시할 사회적 장치가 사라지며 음지화 현상이 나타났다고 분석한다.

정 교수는 "아동학대는 양육자가 스트레스에 압도된 환경에선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며 "과거엔 아이들이 학교에서 공부와 끼니 등을 챙겼는데 코로나19 이후 이 모든 것이 부모 책임이 됐다. 양육자의 스트레스가 높아져 폭력이 일어나기 쉬운 환경이 조성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코로나19 영향으로 실직한 가정이나 바이러스에 취약한 노인을 부양한 가정은 더 높은 스트레스를 경험했을 것"이라며 "사회적 만남이 활발히 이뤄지기라도 하면 아이의 몸을 보고 남들이 눈치챌 수 있다는 생각에 조심하겠지만 코로나19 상황에선 이를 기대하기도 어려워졌다"고 덧붙였다.

가정폭력 상담소 '마음치유공간 품다'의 박민서 대표는 "코로나19 이후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아동학대가 늘었는데 집 안은 정부가 멋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라며 "이 같은 상황에서 등교 제한으로 사회적 감시 장치까지 제거되면서 아동학대가 음지화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는 학교와 가정의 연계를 강화하고 정부가 선제적으로 나서 아동학대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배근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회장은 "현행법상 아이가 지각이나 무단결석을 하면 학교 교사가 전화나 방문 등을 통해 아이의 상황을 확인하게 돼 있다"며 "그러나 지난 2년처럼 원격수업을 시행하는 시기엔 늦거나 결석하지 않더라도 아이와 교사가 주기적으로 소통할 창구가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이 회장은 "감시 조직이 생기면 부모는 사회적 압력을 느껴 마음대로 아이를 학대하지 못하게 된다"며 "아이들도 부모 외에 본인을 보호해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정서적 안정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 "시군구의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과 아동보호 전문기관, 경찰이 지금보다 더 강하게 공조할 필요가 있다"며 "아동학대 발생 가능성이 높은 가정을 미리 파악하고 신고가 들어오지 않아도 이 가정들의 상황을 관심 있게 지켜보면서 학대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고 했다.

"꿈에 그리던 곳인데…" 동기도 강의실도 모르는 '미개봉 중고 대학생'
지난해 12월 7일 서울 동대문구 한국외국어대학교 서울캠퍼스에 오미크론 확진자가 발생해 건물이 통제되고 있다 /사진= 뉴스1  지난해 12월 7일 서울 동대문구 한국외국어대학교 서울캠퍼스에 오미크론 확진자가 발생해 건물이 통제되고 있다 /사진= 뉴스1
"학교 입학하고 지난 2년 동안 학교를 7번 밖에 못 가봐서 캠퍼스 건물이 어디 있는지도 몰라요."

코로나19(COVID-19)가 장기화되면서 대학생들은 노트북에 앉아 수업을 듣는 노량진 학원가의 '수험생'과 다를 바 없어졌다. 대학에서 어울리며 인간관계를 배울수 있는 기회는 사라졌다. 실제로 한번 더 수능시험을 준비하는 재수생, 삼수생은 물론 대학 입학금을 내고도 수능시험을 준비하는 이른바 '반수생'도 크게 늘었다.

◇이제 3학년인데 건물 위치도 모르는 20학번

"삼수해서 대학 왔는데...미팅 한 번 못해봐서 사수도 생각했어요."

이화여대 한국음악학과 20학번인 정은서씨(가명·22)의 대학 생활은 혼돈 속에서 이뤄졌다. 정씨가 입학하자마자 코로나19(COVID-19) 감염증이 전국으로 확산했다. 대학 수업은 전면 비대면으로 전환됐다. 정씨를 포함한 20학번 학생들은 '꿈에 그리던' 대학 생활을 누리지 못했다.

정씨는 "동기 50명 중 5명이랑만 연락을 하고 있다"며 "동기들과 밥을 먹고 미팅을 나가는 등 친목 모임을 하고 싶었지만 거리두기 때문에 그러지 못해 아쉽다"고 털어놨다.

같은 학교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대학교 3학년 박모씨(24)씨는 "지난 2년을 집에서 줌(Zoom) 수업을 들으며 살았다"며 "OT는 수차례 미뤄지다 결국 취소됐고 MT도 취소됐다"고 말했다. 이어 "삼수를 해서 대학에 왔는데, 미팅 및 동아리 활동 등 꿈에 그리던 대학 생활을 하지 못해서 수능을 다시 치를까도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밝혔다.

박씨는 친해진 선후배가 한 명도 없다. 박씨는 "수시 전형 합격생들은 입학할 때부터 학과가 정해져서 동기들끼리 서로 만날 수 있지만, 입학할 때 자율전공으로 배정된 400여명의 정시 입학생들은 1학년 때 전공이 없어서 모임을 할 기회조차 없었다"고 했다.

재수, 삼수를 택하는 경우는 크게 늘었다. 2018년도에 치른 2019학년도 수학능력시험에서 전체 수험생 중 졸업생의 비율은 22.8%, 2020학년도 수능 시험 중 졸업생 비율은 25.9% 수준이었다. 하지만 2021학년도에는 졸업생 비율이 전체 수험생의 27%, 2022학년도 수능에서는 26.4%로 늘었다.

성균관대 21학번 김모씨(22·여)는 "온라인으로 대학 강의를 듣다보니 시간이 많아 반수를 준비해 작년에 재입학했다"며 "주변에 저처럼 대학 등록해놓고 수능을 준비하는 반수생이 많다"고 말했다.

◇'대면 수업' 원하는 21학번·신입생·학부모..."대학 비대면 수업, 인터넷 강의와 다를 게 없어"

사회적 거리두기가 비교적 완화됐던 2021년에도 학생들의 대학 생활은 2020년과 다를 게 없었다.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21학번 최모씨(21)는 "방에서 컴퓨터로 수업을 듣는 대학 강의가 고등학교 시절 들었던 인터넷 강의와 완전히 똑같았다"며 "시험 기간에 한 학기 수업을 다 몰아서 듣는 학생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면 수업은 확실히 집중이 잘 안 돼서 수업을 듣고 얻는 것도 기억에 남는 것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서울의 한 여대에 올해 입학한 22학번 박모씨(20)는 교육부의 '대면 수업' 권고와 다르게 비대면 수업을 받는다. 박씨의 학교는 오미크론 확산세 우려로 비대면 수업을 하기로 했다. 박씨는 "새로 입학하는 학교에서 동기들 얼굴을 보고 친해질 생각에 설렜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쉽다"며 "비대면 수업은 인터넷 강의와 다른 점이 없어서 대면 수업을 받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등학교 3학년 때 1년 동안 대면 수업을 한 결과, 방역 수칙을 잘 지키면 확진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다"고 했다. 이어 "중학생 때부터 학생회 활동을 하며 여러 학생의 의견을 수렴해서 개선하는 과정이 보람찼다"며 "대학교에서도 학생회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포부를 전했다.

대학생 3학년 자녀를 둔 성남시 분당구에 사는 주부 이모씨(49)는 자녀가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서 오해가 잦아졌다고 밝혔다. 이씨는 "온종일 집에 있는 아들에게 마트 심부름 등 집안일을 시켰는데, 아들은 수업 중이었다"며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으니 공부하는지 노는지 확인할 수 없어서 노는데 집안일을 거부하는 거로 오해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비대면 수업은 취업 진로 준비에도 방해돼...전문가 "학교에 답이 있다"

대학생들은 비대면 수업이 취업 준비에 방해가 된다고 말한다. 방송사 취업을 지망하는 건국대학교 21학번 최모씨는 "코로나로 인해 미디어 아카데미는 비대면으로 전환돼 기존에 선배를 만나는 기회는 사라졌고 방송국 견학 또한 없어졌다"며 "강의를 듣는 형식으로 바뀌어서 실질적으로 배운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부에 재학 중인 대학교 2학년 최모씨(22)도 "2년 동안 대외활동을 못 하고 있고 동기들과 함께 공부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하고 있어서 취업 관련 궁금한 점을 혼자 풀어가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마련됐으면 한다"고 했다.

전문가는 학교에 답이 있어서 학생들이 학교에 와야 한다고 조언한다. 배상훈 성균관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는 "교육은 전달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학생이 성찰하고 반대로 질문했을 때 피드백을 받아야 완성된다"며 "하지만 온라인 수업에서는 피드백이 효과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람은 수업만으로 성장하진 않는다"며 "학생들은 강의실 밖에서도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으며 자신을 이해해야 하고, 실패를 경험하며 내면적인 성숙을 배우는 등 살아있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렇지 않으면 노량진 학원에서 수업 듣는 것과 다른 게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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