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탈원전" "채권단 조기졸업"…'126살' 두산重, 다시 뛴다

머니투데이 김성은 기자, 우경희 기자 2022.03.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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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126년 명가 두산이 다시 뛴다(上)

편집자주 두산그룹이 다시 뛴다. 핵심 계열사인 두산중공업이 최단기간 채권단 관리를 졸업한데 이어 그룹 차원의 M&A도 재가동에 들어갔다. 차기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원전을 비롯, 신재생에너지, 가스터빈, 수소까지 완벽한 에너지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췄다는 평가도 나온다. 1896년 '박승직 상점'에서 출발한 대한민국 최고(最古) 기업, 두산의 행보에 재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126살' 두산이 다시 뛴다···'친환경' '원전부활' 양날개
지난해 준공된 '분당두산타워'. 분당두산타워는 부지 면적 8,943㎡, 연면적 128,550㎡, 높이 119m의 지상 27층, 지하 7층 규모로 건설됐다. 사우스(South)와 노스(North) 2개 동으로 나눠졌고 상단부가 스카이브릿지로 연결된 것이 특징이다./사진=머니투데이DB 지난해 준공된 '분당두산타워'. 분당두산타워는 부지 면적 8,943㎡, 연면적 128,550㎡, 높이 119m의 지상 27층, 지하 7층 규모로 건설됐다. 사우스(South)와 노스(North) 2개 동으로 나눠졌고 상단부가 스카이브릿지로 연결된 것이 특징이다./사진=머니투데이DB


'그냥'은 없었다. 지난달 말 2년도 채 안돼 채권단 관리체제를 벗어난 두산중공업 이야기다. 재계와 시장 관계자들은 100년 넘은 국내 초장수 기업 두산그룹이 다시 한 번 저력을 보여 줬다고 입을 모았다. 채무 부담을 덜어낸 두산그룹과 핵심 계열사 두산중공업은 올해 각각 CI(기업이미지 통합)와 사명을 바꾸고 본격 재도약에 나선다.

◇두산중공업→두산에너빌리티···채권단 관리 조기졸업 후 '재도약'



두산중공업은 이사회를 통해 사명을 '두산에너빌리티'(Doosan Enerbility)로 변경하는 안건을 의결했다고 10일 밝혔다. 오는 29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변경된 사명을 최종 확정한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에너지(Energy)와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결합한 조어다. 그 결합을 가능하게 한다는 'Enable'의 의미도 내포한다.

21년만의 사명변경은 채무부담을 덜어낸 두산중공업이 올해를 기점으로 재도약하겠다는 분명한 신호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원전(원자력발전) 최강국' 건설을 약속으로 내걸고 국내 뿐 아니라 세계 각국이 '탈탄소'를 외치며 풍력, 수소 등 친환경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열을 올리는 때 두산중공업은 제대로 기회를 잡았다. 지난 2년간 제 때 구조조정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면 제대로 누리지 못했을 기회다.



재계와 시장 의견을 종합하면 두산중공업은 2020년 초 코로나19(COVID-19)로 금융시장 경색으로 직면했던 유동성 위기 그 자체보다도 위기에 제 때 대처하지 못했을 때 시장에 퍼지는 우려의 위험을 잘 알았다. 은행 건전성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되면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사태)이 벌어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사태 조기 진화를 위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에 긴급자금지원을 요청한지 3개월도 채 안돼 총 3조원에 달하는 자금지원을 이끌어 낸 데에는 두산 측이 보여준 재무구조 개선에 대한 강한 의지와 진정성이 큰 역할을 했다.

두산그룹 전 계열사 임원이 30~50% 수준의 급여 일부를 반납했고 인력 구조조정 등 뼈를 깎는 비용 절감에 돌입했다. 박정원 그룹 회장을 비롯한 오너일가는 (주)두산 주식을 담보로 제공했고 실제 약정에 따라 재무구조 개선이 진행될 때에는 두산퓨얼셀 지분을 무상 증여해 두산중공업 자본력 확충에 쓰도록 했다.


두산타워(8000억원), 두산솔루스(6986억원), 두산인프라코어(8500억원) 등 알짜 매물을 내놓는 결단도 내렸다. 이같은 자산들에 유상증자까지 포함해 두산 측은 3조원에 달하는 자구안을 채권단에 제시했다. 이는 채권단으로부터 적기 수혈의 근거가 됐다.

재계에서는 이같은 두산의 결단을 두고 고(故)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의 '걸레론'이 또 한 번 회자됐다. 외환위기가 불어닥쳤던 1990년대 후반 "나에게 걸레면 남에게도 걸레"라며 지론을 갖고 알짜기업이던 OB맥주 등 식음료사업을 매각, 기업을 지켰다. 이는 전화위복으로 두산그룹이 소비재 기업에서 중공업 기업으로 변신·존속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재무구조 개선을 통해 두산중공업도 친환경 에너지 기업으로 거듭날 전망이다.

"굿바이 탈원전" "채권단 조기졸업"…'126살' 두산重, 다시 뛴다
한 은행 관계자는 "구조조정시 골든타임을 놓치느냐 안놓치느냐는 오너의 결단에 달린 경우가 많다"며 "두산은 초기 약 3개월 동안은 물론, 계획 이행 과정에서도 채권단과 신뢰관계를 형성했고 이는 시장 전반을 안심시키는 데에도 긍정적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두산중공업에서 시작한 혁신···그룹 전반으로 번진다

결과적으로 두산이 이번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난 것도 이같은 그룹 문화에서 비롯된 박정원 현 회장의 승부사 기질이 통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 회장은 고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이기도 하다. 그는 위기가 그룹 전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정도로 커지지 않게 과감하고 빠르게 결단했다. 또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을 직접 만나 의지를 전달하는 등 정면돌파의 방법을 택했다.

유동성 위기 불식이 두산중공업이 재도약할 수 있는 전부는 아니었다. 기저에는 10년 넘게 미래를 내다 보고 체질개선을 준비해 왔던 박지원 두산중공업 회장(그룹 부회장)의 노력도 자리했다. 박지원 회장은 두산중공업이 두산그룹으로 인수되던 2001년부터 회사에 몸담았다. 박정원 그룹 회장의 친동생이기도 하다.

두산중공업이 밝힌 4대 신성장동력(신재생에너지, 가스터빈, 차세대원전, 수소)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풍력으로 대변되는 신재생에너지다.

2005년부터 두산중공업이 친환경 시대를 내다보고 연구개발에 뛰어들었다. 예상보다 더뎠던 정부 발주에도 불구하고 국내 대기업 중 20년 가까이 명맥을 이어온 곳은 사실상 두산중공업 한 곳이었다. 국내 유일하다시피 한 발전설비 대기업으로서의 책임론도 작용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전력수급계획에 따라 국내 풍력 포급 계획은 앞으로 10여년 간 14배 가까이 커질 전망이다.

아울러 두산중공업은 SMR(소형모듈원전)을 중심으로 다수 해외 사업을 추진중일 뿐만 아니라 글로벌 대형원전사업 수주도 기대된다. 기존 가스터빈 기술력을 바탕으로 석탄발전 대비 친환경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LNG(액화천연가스), 수소를 활용한 가스터빈 사업 규모도 늘려나갈 계획이다.

두산중공업의 사명 변경에 앞서 두산그룹도 올해 초 새 CI를 공개했다. 기존 3색 블록을 없애고 단색으로 구성됐다. 그룹 측은 "과거의 틀을 벗어나 미래를 향해 역동적이고 민첩하게 움직이며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새로운 두산의 모습을 상징한다"고 밝혔다. 두산은 올해 6년 만에 M&A 시장에 나서 최근 반도체 후공정 시험점검 전문기업 테스나를 인수, 반도체 사업 진출을 알렸다.

두산중공업이 올해 3월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사명을 두산중공업에서 두산에너빌리티로 변경할 예정이다. 두산에너빌리티의 새 로고/사진=두산중공업두산중공업이 올해 3월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사명을 두산중공업에서 두산에너빌리티로 변경할 예정이다. 두산에너빌리티의 새 로고/사진=두산중공업
17년 투자 결실···풍력·가스터빈·원전·수소, 다 있는 두산중공업
"굿바이 탈원전" "채권단 조기졸업"…'126살' 두산重, 다시 뛴다
두산그룹의 핵심 기업인 두산중공업이 밝힌 신성장 동력은 △신재생에너지 △가스터빈 △차세대 원전 △수소 등 크게 네 가지다.

지난 2월 두산중공업이 내놓은 '2021년 연간 기업설명회'에 따르면 올해 연결 기준 수주계획은 성장사업 3조2000억원, 기존사업 3조9000억원, 자회사 1조7000억원 등 총 8조9000억원이다. 이를 2023~2026년까지 연평균 기준, 성장사업 5조3000억원, 기존사업 2조4000억원, 자회사 2조4000억원 등 총 10조1000억원 이상으로 늘린다는 목표다. 전체 수주에서 성장사업 비중이 현재 36%에서 52%로 높아지는 게 골자다.

채권단은 관리체제 종결시 단순 채무 상환 뿐만 아니라 기업이 자력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을지도 함께 판단한다. 두산중공업의 미래형 사업구조 재편을 높이 평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두산 그룹 내부에서는 두산중공업의 이같은 사업전환이 단 2년 만에 나온 것이 아닌, 십 수 년 전부터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해온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이미 여러 곳에서 실증사업이 진행되는 등 시장 개화기에 맞춰 실행가능력을 높여놨다는 점이 차별점이다.

두산중공업의 향후 중장기 성장 수주사업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풍력으로 대표되는 신재생분야(2조1000억원)다. 두산중공업은 2005년 풍력발전 연구개발(R&D)을 시작해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온 국내 유일한 대기업이다. 한 때 현대, 대우 등 대기업들이 풍력발전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늦어진 신재생에너지 개화로 정부 발주도 더디게 진행되면서 하나, 둘 사업을 접거나 중단했다.

2001년부터 두산중공업에 몸담았고 2007년 대표이사를 지낸 현 박지원 두산중공업 회장(두산그룹 부회장)이 당시 이미 "친환경 그린 에너지 시장의 급격한 확대에 대비한 기술 역량 확보 및 시장 선점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선언하고 이 사업공약을 지켜왔다.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다른 기업들이 사업을 접고 나갈 때에도 두산중공업은 우리나라 발전기자재를 담당하는 기업으로서 '풍력이 미래를 위해 꼭 해야 하는 사업'이란 생각이 강했다"고 말했다.

두산중공업의 17년 투자가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다. 우리나라 제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0~2034)에 따르면 국내 풍력 보급 계획은 1.8GW에서 24.9GW로 14배 가까이 늘어날 전망이다. 두산중공업은 국내 해상풍력 1위 사업자로 시장 확대의 최대 수혜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이달 초 국내 최대 규모 해상풍력단지 개발사업으로 꼽히는 제주한림해상풍력 사업의 장기유지보수 계약을 따냈다. 단지 준공 시점인 2024년부터 20년간 풍력발전 유지보수 서비스 업무를 수행하며 계약 규모만 1800억원에 달한다. 두산중공업은 현재 3MW급, 5.5MW급 해상풍력발전기 모델 보유중이며 8MW급 모델도 국제인증 취득 후 상용화를 목표로 한다.

가스터빈, 원전, 수소 사업에 대한 시장 기대도 크다. 발전용 가스터빈은 '기계공학의 꽃'이라 일컬어지며 1~2차 세계대전을 치르며 군수산업을 육성시킨 경험이 있는 미국, 독일, 일본, 이탈리아 등 서구 기업들이 꽉 잡고 있는 분야였다. 두산중공업은 2005년 5MW 소형 가스터빈 제작에 착수해 기술자립의 첫 발을 내디뎠다. 2013년에는 국책과제로 개발을 시작해 2019년 국내 최초 독자 개발한 대형 발전용 가스터빈 모델도 김포열병합발전소에 공급키로 했다.

김포열병합발전소는 액화천연가스(LNG) 가스터빈으로 전력을 1차 생산 후 폐열을 활용해 스팀터빈을 구동, 2차 전력 및 열을 생산한다. 특히 LNG를 활용하기 때문에 기존 석탄화력발전 대비 친환경적으로 평가받는다.

두산중공업은 또 이 기술력을 토대로 향후 획기적인 탄소감축을 위해 대형 수소혼소터빈 개발·상용화도 예고했다. 시장에 따르면 2030~40년쯤 수소전환가능 터빈 모델도 출시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력난이 대두되며 국내외 원전사업도 다시금 되살아날 분위기다. 차기 정부가 '원전 최강국 건설'을 내걸었다는 점도 천군만마다. 두산중공업은 기존 원전대비 안정성이 강화된 것으로 평가받는 소형모듈원전(SMR) 등을 중심으로 이미 다수 해외 사업을 추진중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두산중공업이 그동안의 미래 준비 노력에 대해 재평가 받는 시점이 왔다"고 평가했다.

(창원=뉴스1) 박정호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2020년 스마트그린 산업단지로 도약할 경남 창원 산업단지를 방문, 스마트공장 현장인 두산중공업 가스터빈고온부품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2020.9.17/뉴스1     (창원=뉴스1) 박정호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2020년 스마트그린 산업단지로 도약할 경남 창원 산업단지를 방문, 스마트공장 현장인 두산중공업 가스터빈고온부품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2020.9.17/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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