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가 OTT를 만나 보여준 미래

머니투데이 한수진 기자 ize 기자 2022.03.1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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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사진제공=넷플릭스연상호,사진제공=넷플릭스


줄곧 애니메이션만 내놓던 연상호 감독이 100억 원을 들인 첫 실사 영화 '부산행'을 공개했을 때, 평단은 그를 들어 '칼 맑스'라 칭했다. 영웅으로 표상되는 단순한 좀비 이야기가 아닌 현실주의가 담긴 함의적 세계관으로 공포심을 만들어낸 덕택이었다.

연상호가 이후 낸 작품들도 마찬가지의 결을 보여준다. 이야기의 뿌리로는 지극한 현실주의를 담고, 좀비나 초능력, 지옥의 사자와 같은 환상으로 화려한 곁가지를 친다. 서양학을 전공한 예술학도인 만큼, 작품 속에서 펼쳐내는 그의 세계관은 비상한 창작력과 만나 '예술성'을 동시에 품는다. 대중들이 그에게 열광하는 지점도 이것이다. 분방하지만 사려 있는 예술가의 상상력. 연상호의 이 예술가적 기질은 때때로 '방법: 재차의' '염력' 등 대중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이차원적인 결과물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지옥'과 같은 작품으로 재차 자신의 특별함을 증명한다.



감독으로서 그의 정체성은 OTT를 만나면서부터 더욱 포텐셜이 터졌다. '염력'으로 갸웃했던 고개는 첫 OTT 진출작 넷플릭스 '지옥'으로 바로 세워졌다. 여러 영화감독들이 OTT로 넘어오며 활약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연상호의 활약상은 독보적이다. 글로벌 흥행을 거둔 '지옥' 이후 티빙에서 '괴이' 공개를 앞두고 있고, 애니메이션 영화로 선보였던 '돼지의 왕'도 다른 이의 손을 타고 확장된 버전으로 공개된다. 보다 자율적이고 거대 자본력을 갖춘 OTT의 이점이 기존 플랫폼에서 표현하기 어려웠던 연상호의 거대 세계관을 실현 가능하게 했다.

사진제공=티빙사진제공=티빙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연상호 감독은 하나의 세계관을 작품 내에서 그려간다. 그러면서 신기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같이 해왔다. 자기 세계관이 확실한 창작자"라며 "그런 기질이 OTT에선 기회가 된 거라고 볼 수 있다. 생각이 트인 앞서 있는 창작자이자 감독, 각본가, 웹툰 작가 등 여러 포지션을 취하고 있는 아트테이너다. 특이한 인물"이라고 평했다. 특히 최근 들어 드라마, 영화, 웹툰, 소설 등이 서로 컬래버레이션 등의 결합을 시도하면서 여러 포지션으로 활약하던 연상호의 복합적 정체성이 시너지를 내고 있다.

OTT 입장에서도 연상호는 최적의 파트너이다. 플랫폼에 힘을 실을 수 있는 장르물에 최적화 돼있고, 최대한 창작자에게 자율성을 실어주는 OTT 특성 상 믿고 맡길 수 있는 네임벨류가 있다. 실험적일 수 있으나 결코 허튼 이야기는 하지 않는 만큼 대중성과 작품성 둘 중 어느 쪽이건 간에 구독자들의 신뢰를 허물 일이 없다. 티빙은 이러한 연상호의 이점을 활용해 두 작품 공개를 앞두고 있다. 구교환 주연의 '괴이'로는 극본가로, 김동욱 주연의 '돼지의 왕'은 원작자로 참여한다. 감독이 아닌 연상호라는 네임벨류 자체가 대중의 두터운 신뢰가 따르기에 전략적인 방법을 택한 것이다.

제작진은 '괴이'에 대해 "연상호 작가의 한계 없는 상상력이 또 하나의 독창적인 세계관을 만들어낼 것"이라며 홍보하고 있다. '부산행' '지옥' 등으로 이미 입증된 스토리텔러로서의 그의 능력은 '괴이'에도 마찬가지의 기대감을 심어 준다. OTT를 만난 연상호는 하나의 포지션에 머물지 않고 두루 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시대를 앞서간 연상호가 OTT로 보여주고 있는 다자 행보는, 한국 창작자들의 좋은 표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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