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위로가 필요한 그대에게

머니투데이 최재욱 기자 ize 기자 2022.03.11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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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감동을 불러올 최민식-김동휘의 케미스트리

사진제공=쇼박스사진제공=쇼박스


수학이라는 학문은 많은 사람들의 삶에 학창시절 포기한 과목 정도로 남아있다. 미분, 적분에 피타고라스의 법칙 등등 학창시절 배운 수많은 수학의 법칙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의 산수만 수학이란 과목을 배운 흔적으로 남아 있다.

대부분이 사람들이 그렇게 수학을 포기하고 멀리하려 하지만 우리가 누리는 수많은 문명의 혜택이 수학을 기반으로 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인터넷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와이파이부터 수많은 문명의 기기들이 수학을 이용해 개발됐다는 건 분명한 사실. 그만큼 수학은 인간의 삶에서 실제적으로 가깝지만 심적으로는 가장 멀게 느껴지는 아이러니한 학문이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감독 박동훈, 제작 ㈜조이래빗)은 이런 아이러니를 2022년 대한민국 교육현장으로 끌고 온다. 수학을 무기개발에 사용하는 현실에 환멸을 느껴 탈북, 자사고에서 야간경비원으로 일하는 천재수학자 이학성과 사회자 배려 전형으로 자사고에 입학했지만 수학 때문에 전학 권유를 받고 있는 고등학생 한지우(김동휘)가 주인공. 사람의 삶의 질을 높이려는 수학을 사람을 죽이는 무기에 이용하는 북한이나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단순 입시 과목으로 전락한 남한이나 모두 ‘이상한 나라’인 건 마찬가지. 그 이상한 나라에서 두 사람이 수학을 매개로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과정이 아주 소박하면서도 따뜻하게 그려진다.

사진제공-쇼박스사진제공-쇼박스


우연히 이학성이 수학의 고수임을 알게 된 한지우가 수학을 가르쳐 달라고 조르면서 음지에 숨어살던 이학성의 삶에 따뜻한 봄햇살이 소리 없이 찾아온다. 늘 움츠리고 살았던 한지우는 정답보다 풀이과정을 중요시하는 이학성의 가르침에 어깨를 펴고 문제를 직시하는 법을 배우고, 이학성은 순수한 한지우의 열정에 가슴속 깊은 상처를 치유하며 세상에 다시 나설 용기를 얻게 된다. 단순히 멘토와 멘티의 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는 서로가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과정이 뭉클한 감동을 선사한다.

전체적으로 잔잔하고 훈훈하지만 한방이 없다. 특히 수학의 활용도가 예상보다 낮아 아쉽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란 영화 제목 때문에 ‘수학’이란 학문이 영화를 관통하는 매우 중요한 소재로 활용될 것처럼 보이지만 작가와 감독은 편안한 선택을 한다. 풀이과정을 생략한 채 정답만을 중요시하는 우리 현실처럼 영화는 모두가 행복해지는 해피엔딩이라는 정답을 위해 풀이과정을 모두가 예상할 수 있는 클리셰들을 통해 해결한다.

그런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는 건 좋은 배우들의 좋은 연기. 최민식은 왜 모두가 그를 ‘대배우’로 부르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명연기를 펼친다. 특유의 강렬함을 쏙 빼고 섬세하면서도 선굵은 감정연기로 관객들의 마음을 휘젓는다. 무뚝뚝한 비밀스러운 야간경비원에서 과외수업을 통해 한 꺼풀씩 벗겨지는 새로운 면모들이 몰입도를 높인다. 탈북자의 외로움과 아픔, 천재수학자의 수학을 향한 설렘과 애정 등 수많은 감정들을 절절하게 표현해낸다. 까마득하게 어린 후배 김동휘와의 호흡도 훌륭하다. 선배로서 잡고 끌고 가는 방식이 아닌 지켜봐주며 함께 발을 맞춰 동행한다는 느낌이 들어 더욱 감동적이다.


사진제공=쇼박스사진제공=쇼박스
김동휘는 ‘대선배’ 최민식에게 절대 기죽지 않고 당찬 연기를 펼친다. 왜 그가 25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한지우 역에 캐스팅됐는지 알 수 있을 정도. 실제 자사고에서 캐스팅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한지우를 자연스럽게 살아 숨 쉬는 캐릭터로 형상화한다.



이외에도 영화 속에서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지만 악역인 담임선생님 박병은을 비롯해 조윤서, 탕준상 등 조연배우들의 앙상블도 훌륭하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딱 떨어지는 수학공식처럼 완벽하게 유기적으로 연결된 영화는 아니다. 빈틈도 허술한 부분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영화 전체 흐르는 휴머니즘이 그런 아쉬운 부분들을 눈감아주게 만든다. 툭하면 만날 총 쏘고 칼로 찌르는 영화들 사이에서 이런 순수하고 따뜻한 감흥이 도대체 얼마만이던가? 힐링이 필요한 요즘 시대에 딱 들어맞는, 따뜻한 위로를 줄 수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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