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인류가 겪은 팬데믹(전염병 대유행)은 시대의 전환점이 됐다. 14세기 유럽을 휩쓴 흑사병은 교회의 권위를 끌어내리고 봉건질서를 무너뜨려 중세의 종말을 앞당겼다. 20세기 초 스페인독감은 무역량 감소와 경기 후퇴, 대공황을 연쇄적으로 불러일으키고 결국 독일 나치스로 대표되는 전체주의의 득세를 불러왔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역시 확산세가 통제가능한 수준으로 잡힌다고 해도 팬데믹 이전과 이후의 사회는 같을 수 없다.
혐오가 확산된 것은 국내라고 다를 게 없다. 코로나19는 성적 소수자와 비주류 종교, 또는 정치적으로 성향이 다른 지역을 배격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나중에는 백신 비접종자에 대한 차별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또 코로나19 확산을 막는다는 이유로 개인의 일상에 대한 통제는 그 어느 때보다 심했다. 확진자 동선을 공개하는 것에 이의를 달 수 없었고, 사회활동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녀간 장소마다 기록을 남겨야 했다. 집회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 또한 유보돼야 했다.
급속하게 늘린 재정지출은 세대 갈등의 씨앗을 품고 있다. 통합재정수지 적자는 국내 코로나19 발생 원년인 2020년 역대 최대인 71조2000억 원에 이르렀고 작년에도 30조 원에 달했다. 올해 역시 70조 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한다. 나랏빚을 현세대가 부담하는 세금으로 갚을 것이냐 아니면 미래세대의 부담으로 남길 것이냐를 놓고 벌어지는 논쟁은 갈수록 가열될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겪은 코로나19는 존중보다는 혐오, 자유보다는 통제, 공존보다는 소외, 화합보다는 갈등과 함께 왔다. 코로나19 자체의 특성이라기보다는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불러들였거나 증폭된 것들이다. 과거의 팬데믹 사례를 보면 변화한 관계와 태도는 바이러스보다 오래 지속되며 새로운 시대의 동력이 된다. 혐오, 갈등, 소외, 통제라는 감정과 상태는 소유한 자가 반드시 타락하게 돼 있는 절대반지와도 같다. 그들이 시대정신이 된다면, 우리는 여전히 코로나19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