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통합정부' 프레임 전쟁[광화문]

머니투데이 김익태 정치부장 2022.03.04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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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대선. 사전투표 하루 전 이렇게 판세를 예단할 수 없는 전례가 있었나. 후보들에 대한 역대 급 비호감, 진흙탕 네거티브 전쟁. 민의의 축제는 진영 간 적대감이 극도로 표출된 전쟁판이 됐다. 그 어느 때보다 통합이 필요한데, 통합 얘기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절박한 쪽이 이긴다. 선거의 속설이다. 살얼음판 승부다. 지면 다 죽는다는 건곤일척 큰 싸움이다. 승리에 대한 간절함, 거대 양당 모두 만만치 않다. 선거판에서 실종됐던 '통합'은 간절함과 맞물리며 선거 막판에서야 등장했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닥치고 정권교체'라는 '민심의 쓰나미'를 넘기 위해 '통합정부'를 택했다.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전날이다. 사실 이 후보가 내세운 정치개혁은 문재인 대통령의 몫이었다. 5년 전 차가웠던 겨울 광화문 한 복판에는 진보·중도·보수가 어우러졌다. 탄핵으로 정권을 잡은 '촛불 정부'를 자임했다. 취임사처럼 '국민통합 정치개혁'을 실천했어야 했다. 반대로 갔다. 임기 내내 끊임 없이 이분법을 들이대며 척결대상을 찾아 나섰다. 입법·사법·행정을 넘어 지방 권력까지 다잡고 독주하다 좌초했다.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참패는 민심의 준엄한 경고였다. 민주당은 달라진 게 없었다. 대선에서 궁지에 몰리자 '86(80년대 학번·60년대생)용퇴론'이 튀어나왔지만, 누구 하나 선뜻 몸을 던지지 않았다. 이 후보는 한 발 더 나아가 '국민통합정치론'까지 꺼내 들었다. 대통령 4년 중임제, 통합·연합 정부, 선거제 개편…거대 정당의 기득권을 내려 놓겠다고 했다.



막스베버는 정치를 '악마와의 계약'이라 했다. 아무리 좋은 정치를 표방해도 고통은 수반되기 마련이다. 이 후보는 조원진 우리공화당 후보에게까지 손짓하는 광폭 행보를 펼쳤다. 집요하게 야권 단일화 무산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야겠다는 절박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런 굵직한 사안을 선거 며칠 앞두고 하겠다고 한다.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다. 진정성은 선거 후 다 드러나게 돼 있다. '당론'으로 정했다. 이번에는 손바닥을 뒤집지 않을까. 승패에 관계없이 실천하는지 지켜볼 일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상대적으로 절박함이 덜해 보였다. "안 돼도 이길 수 있다"는 오만 때문이었을까.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단일화 기회를 날려버렸다. 그러다 이 후보와 지지율 격차가 좁혀지자 사전투표를 하루 앞두고 전격 단일화에 합의했다. 기치로 내세운 게 '국민통합정부'다.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승자독식, 분열의 정치를 넘어서겠다는 거다. 어떻게든 정권 교체를 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읽혔다.

코 앞 대선. 지지층이 총결집했다. 남은 건 중도·부동층 표심이다. 누가 얼마나 더 끌어올 수 있느냐다. 그래서 벌어지고 있는 게 두 후보 간 생경한 '통합정부' 프레임 전쟁이다. 모두 자신이 통합의 적임자로 자부한다. 공허하다. 상대방을 고사시키겠다는 선거공학적 구호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이런저런 미사여구를 동원하지만, 결국 국민의힘(윤석열)은 빼고, 민주당(이재명)은 빼고 다 같이 가겠다는 것 아닌가. 대전환의 시기인데, 국론은 두 동강 나 있다. 누가 대통령이 돼도 정부 운영이 어렵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거대 여당과 야당을 적대시하며 배제한 체 정치개혁의 시발인 협치가 가능할까. 선거 후가 더 걱정이란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효율적 국정운영을 원하는 대통령은 협치를 원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급한 데 언제 합의하나' 야당을 무시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하지만 협치만이 갈등을 최소화하고, 공존과 타협을 이끌어 낼 수 있다. 권력 분산, 절제된 권력. 대통령이 사고의 틀을 바꾸지 않는 한 쉽지 않다. 닷새 후 새롭게 등장할 대통령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마지막 '통합정부' 프레임 전쟁[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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