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동부 헤르손 지하 대피소에서 다리아(34)와 소피아(2)이 서로를 안고 있다. 소피아는 친부를 따라 한국 국적을 갖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헤르손의 친정집을 찾아 우크라이나에 입국했다가 러시아의 침공으로 발목이 묶였다. 지난 3일 이들이 머무는 헤르손은 러시아군에 함락됐다./사진제공=다리아의 친구 우크라이나인 조 태티아나.
다리아는 소피아를 안고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그리고 한국에 살고 있는 친구 태티아나씨(25세, 여성)에게 이 사진을 보냈다. 나는 안전하진 않지만 그래도 가족들과 함께 무사하다는 뜻이 사진 한 장에 담겨있었다.
태티아나씨는 '찐터뷰'에 다리아의 사진을 건네며 우크라이나의 사연을 꼭 한국에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다리아가 보도에 동의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런 사례는 다리아뿐만 아니었다. 전국토가 러시아군에 의해 짓밟히고 있는 우크라이나, 그곳에 가족과 친구들을 두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 모두 각자의 사연과 함께 사진을 건넸다.
다리아의 딸 소피아가 헤르손 지하 대피소에서 책을 읽고 있다./사진제공=우크라이나인 조 태티아나.
헤르손은 이제 러시아군이 장악한 곳이 됐다. 다행히 다리아 가족은 러시아군의 점령 이후에도 무사하다고 태티아나씨에게 소식을 전해왔다고 한다.
태티아나씨는 "소피아가 겁에 질려 많이 운다더라. 소피아가 감기에 걸려 고열에 시달리기도 했다"며 "다리아와 소피아 모두 현 상황에 몹시 지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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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우크라이나 정부의 지원이 끊기면 헤르손 대피소의 음식과 물이 금방 떨어질 것"이라며 "소피아를 데리고 대피소를 떠나야 하는지 다리아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 우크라이나인이 지난 2일(한국시각) 헤르손 중앙 광장에 입성한 러시아군을 앞에 두고 우크라이나 국기 두개를 휘날리고 있다./영상제공=재한 우크라이나인 김올레씨
김올레씨는 헤르손의 영상 하나를 제보했다. 탱크와 전차를 앞세운 러시아군이 헤르손의 중앙광장을 장악한 가운데 한 남성이 그 앞에서 우크라이나 국기를 흔들고 저항하는 영상이었다. 헤르손을 러시아군이 점령한 지금, 이 사람은 어떻게 됐을까. 정확히 알 길은 없다.
역시 헤르손을 고향으로 둔 채 현재 한국에 와 있는 린다씨(21세, 여성, 가명)는 어릴 적 즐겨찾던 시내 쇼핑몰이 러시아군 폭격에 완전히 불타 없어진 모습을 사진으로 확인했다. 가족은 헤르손을 떠나 폴란드 인근의 서부 도시 르비우까지 피난을 갔다고 한다. 그들은 언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크이우 시민들, 기약없는 대피소 생활
5살 여아 올렉산드라가 지난 1일(한국시각) 크이우(키예프)의 한 지하 대피소에서 빵을 먹고 있다. /사진제공=재한 우크라이나인 보단 칼핀스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등 우크라이나인들이 사즉생의 각오로 수도를 사수하고 있지만 무차별 폭격의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 몫으로 돌아간다. 크이우 시민들은 기약 없는 지하 대피소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한 우크라이나인 여성이 대피소에서 아들을 출산했다는 소식은 전 세계를 안타깝게 만들었다.
크이우 출신으로 현재 한국에서 삼성전자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보단씨(41세, 남성)는 크이우 현지 지인의 딸 올렉산드라(5세)의 사진을 제보했다. 올렉산드라에게 대피소는 곧 유치원이자 놀이터다. 친구들과 뛰놀기도 하고, 지치면 옷을 입은 채로 그대로 간이 침대 위에 누워 잠에도 든다.
5살 여아 올렉산드라가 지난 1일(한국시각) 크이우(키예프)의 한 지하 대피소에서 옷을 입은 채로 간이침대에서 잠에 들었다./사진제공=재한 우크라이나인 보단 칼핀스키
헤르손 출신 린다씨는 크이우에 살던 절친과의 통화를 잊을 수 없다. 지난달 24일 러시아군의 침공 이후 친구와 통화를 하던 린다씨는 수화기 너머 폭격 소리를 들었다. 친구는 "내가 혹시 죽는다면 내가 너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기억해달라"라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한동안 연락이 되지 않았던 그 친구는 다행히 서부 르비우로 피난을 갔다는 사실을 이후 알려왔다.
지난달 27일 우크라이나 수도 크이우 아나스타샤 샤포발로바(25)의 가족이 사는 아파트가 러시아군에 폭격당했다. /사진제공=아나스타샤 샤포발로바
러시아군의 포격에 초토화된 하르키우 출신으로 현재 한국에 있는 50대 여성 옥산나씨는 지난 1일 서울 정동 러시아대사관 인근에서 열린 반전집회에 참석한 후 "우리는 이 세상에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왜 죽어야 하는가.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다"며 눈물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러시아군이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있지만 우리 국민들은 매우 강인하다. 절대로 항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