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잠 설치는 우크라 이웃에 건네는 위로…"당신과 함께 합니다"

머니투데이 김성진 기자, 최경민 기자 2022.03.04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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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터뷰 : ZZINTERVIEW]7-②우리 이웃집 우크라이나인

편집자주 '찐'한 삶을 살고 있는 '찐'한 사람들을 인터뷰합니다. 유명한 사람이든, 무명의 사람이든 누구든 '찐'하게 만나겠습니다.

사샤씨는 지난 1일 직장 동료들이 직접 쓴 '러시아 규탄' 피켓을 들고 러시아대사관 근처 반전 시위에 참여했다. 피켓에는 "전쟁 반대, 푸틴 반대(No War, No Putin)"란 뜻의 우크라이나어 문장이 적혀 있다./사진=최경민 기자사샤씨는 지난 1일 직장 동료들이 직접 쓴 '러시아 규탄' 피켓을 들고 러시아대사관 근처 반전 시위에 참여했다. 피켓에는 "전쟁 반대, 푸틴 반대(No War, No Putin)"란 뜻의 우크라이나어 문장이 적혀 있다./사진=최경민 기자


"Нi Вiйнi Нi Путiну"

지난 1일 서울 정동 러시아대사관 인근에서 진행된 반전시위에 한 우크라이나 여성이 이같은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사샤(28세). 5년 전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온 뒤 석사학위를 따고 회사에 취직까지 한 사람이다.



사샤씨에게 '찐터뷰'가 피켓의 의미를 물어봤다. "전쟁과 푸틴에 반대한다(No War, No Putin)"라는 뜻이라고 했다. 지난달 24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회사 동료들이 써준 것이다.

사샤씨의 동료들은 우크라이나 국기와 "우리는 우크라이나와 함께 합니다", "전쟁을 멈추세요" 등의 문구가 써진 피켓들을 직접 만들어 그에게 건넸다. 그리고 사샤씨가 그 중 하나를 들고 반전시위에까지 나온 것.



이같은 사례에서 보듯 우크라이나 사람들도 우리의 평범한 동료이자 이웃이나 다름없다. 한국에 있는 '이웃집 우크라이나 사람들' 3800명은 러시아가 조국을 침공한 이후 밤잠을 설치며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국인들과 호흡하며 반전여론 확산에 힘을 모으고 있다.

잠못이루는 이웃집 우크라이나인들
지난 1일(한국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크이우(키예프)의 한 지하 대피소 모습. 공간이 협소해 여러 가족들이 한 방에 모여 지내야 한다./사진제공=재한 우크라이나인 아나스타샤 샤포발로바지난 1일(한국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크이우(키예프)의 한 지하 대피소 모습. 공간이 협소해 여러 가족들이 한 방에 모여 지내야 한다./사진제공=재한 우크라이나인 아나스타샤 샤포발로바
사샤씨는 수도 크이우(키예프) 남서쪽에 위치한 빈니차가 고향이다. 아직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곳은 아니다. 그는 "부모님께서는 다행히 아직까진 안전하시지만, 굉장히 무서워하시고 있더라"며 "크이우나 동부 하르키우에서 사람들이 많이 죽고 있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아나스타샤씨(25세, 여성)와 삼성전자에서 근무하고 있는 보단씨(41세, 남성)는 모두 크이우가 고향이다.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고 있지만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고향의 소식에 연일 가슴이 무거워진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중심으로 수도를 사수하겠다는 의지는 높지만, 러시아군의 공세는 계속 강력해지고 있다.


아나스타샤씨는 친구 한 명이 향토예비군에 입대했다며 그의 안위를 걱정했다. 전쟁과는 거리가 먼 친구. 대학교 잔디밭에서 기타를 치며 노는 걸 즐겼던 친구. 그런 친구가 전선에 소총 한 자루를 들고 나갔다는 것이다. 친구가 "전선에서 아침에 죽 조금, 낮에는 설탕과 물만 먹고 있다"고 전해온 소식을 접한 아나스타샤는 "가슴이 찢어진다"고 반응했다.

한국에서 평범한 주부로 살고 있는 태티아나씨(25세, 여성)는 전쟁 발발 이후 신경 안정제를 복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의 고향은 최근 전투가 시작된 자포리자다. 이곳의 원전 단지를 러시아가 공격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어떤날에는 어머니와 통화하다가 수화기 너머로 공습경보 사이렌 소리를 들었다. 어머니는 지하철역 대피소에 가야 한다며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역시 주부인 폴리나씨(27세, 여성)의 고향은 러시아 국경에서 불과 10km 떨어진 작은 마을이다. 그는 "잘 수도, 먹을 수도 없다"며 "사랑하는 사람들에 연락이 올지 몰라서 휴대폰을 붙잡고 살고 있다"고 말했다.

변화를 만드는 연대…"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은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러시아대사관 앞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재한 우크라이나인 약 150명이 모였다./사진=뉴스1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은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러시아대사관 앞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재한 우크라이나인 약 150명이 모였다./사진=뉴스1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러시아와 싸움을 시작했다. 지난달 27일 러시아 대사관 앞에는 우크라이나인 약 150여명이 모여 "푸틴, 우크라에서 손 떼(Putin, Hands-off Ukraine)"라고 목소리를 냈다. '우크라이나인 이웃'의 외침에 한국 사람들도 호응하기 시작했다. 반전시위는 부산·인천·제주 등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변화도 만들어지고 있다. 그동안 '키예프'로 알려졌던 우크라이나의 수도 이름이 현지 말 그대로 '크이우' 혹은 '키이우'로 표기되기 시작했다. "러시아식 표기법을 정정해달라"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의 요청이 한국 사람들에게 즉각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후원 물결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세이브더칠드런, 대한적십자사 등 구호단체들은 이미 모금액을 우크라이나에 1차 전달했거나 후원 계좌를 개설해 모금 활동을 진행 중이다. 우크라이나 대사관을 통한 배우 이영애(1억원), 래퍼 겸 배우 양동근(1000만원)의 기부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은 한국인들의 '연대'에 사의를 표했다. 아나스타샤씨는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에게 큰 정서적 지지를 받고 있다"며 "어떻게 감사의 말을 전할지 모르겠다. 지금의 도움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직장 동료들에게 '피켓 응원'을 받은 사샤씨는 "한국 사람들이 정말 착한 것 같다. 마음으로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위하고 있는 것 같아 정말 감사하다"고 밝혔다. 이어 "요즘 정말 감동을 많이 받는다. 우크라이나를 위한 모금에 응해주는 것도 정말 대단하다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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