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기성용 지적한 '논두렁 잔디'…골프장처럼 바꿀 '삼성 에벤저스'

머니투데이 유승목 기자 2022.03.04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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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잔디 전문 R&D 연구기관 '삼성물산 잔디 환경연구소'…잔디→식물 토털 솔루션으로 영역 확장

삼성물산 리조트부문 잔디환경 연구소. /사진=삼성물산삼성물산 리조트부문 잔디환경 연구소. /사진=삼성물산


최근 새 시즌의 막을 올린 K리그에서 '논두렁잔디' 논란이 도마에 올랐다. 지난달 26일 인천축구전용구장에서 열린 경기를 마친 FC서울의 기성용이 "여름이든 겨울이든 경기장 상태가 좋지 않다"며 "선수들은 부상에 노출되고, 경기력도 아쉬워질 수 밖에 없다"고 공개 저격하면서다. 축구종가 잉글랜드의 잔디까지 밟은 경험이 있는 국가대표 출신 베테랑의 작심발언에 축구계의 한숨이 커졌다.

움푹 팬 헐벗은 그라운드와 시든 잔디는 유럽축구를 보며 눈이 높아진 축구팬들이 K리그에서 정을 떼는 고질병이 된지 오래다. 국내 축구장은 사계절 푸른 빛깔을 내는 양잔디 '켄터키 블루그라스'를 쓰는데, 고온 다습한 환경은 물론 영하권의 한파에도 취약해 사계절 내내 경기를 치르는 K리그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는 특히 건조하고 추운 겨울의 여파로 잔디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단 점에서 문제가 더욱 커졌다.



하지만 매년 악순환을 반복해온 논두렁잔디 논란이 올해부터 잦아들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안양CC·가평베네스트GC 등 국내 최고 수준의 명문 골프장을 운영하는 삼성물산 (130,400원 ▼300 -0.23%) 리조트부문의 '잔디 어벤저스'가 해결사로 나서면서다. 지난 2일 경기 군포시 안양CC 내에 위치한 잔디환경연구소(이하 연구소)를 직접 찾아 해법을 들어봤다.

코로나 검사처럼 잔디도 PCR 받는다고?
김경덕 잔디환경연구소장이 잔디 연구를 하는 모습. /사진=삼성물산김경덕 잔디환경연구소장이 잔디 연구를 하는 모습. /사진=삼성물산
잔디를 생육하는 비닐하우스 정도로 생각하고 들른 연구소는 예상과 달리 각종 고가의 기계들로 체계적인 실험이 가동하는 '첨단의 장'이었다. 실시간으로 엽분석을 하는 근적외선분광분석기(NIR)부터 잔디·병원균 유전자를 분석하는 유전자증폭기, 잔디 건강도와 균일도를 정규화식생지수(NDVI)로 산출하는 식생지수 측정기 등이 쉴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김경덕 연구소 소장은 "근적외선분광분석기는 가격만 1억원 상당인데 국내에선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장비"라며 "코로나19(COVID-19) 확진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사람들이 PCR(유전자증폭) 검사를 받는 것처럼, 우리 연구소에선 잔디들도 건강을 체크하기 위해 PCR 검사를 받는다"고 소개했다. 잔디 관리와 각종 연구 측면에선 최고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는 얘기다.

1993년 국내 최초로 설립된 잔디 전문 R&D 기관으로 골프계에선 독보적인 위상을 자랑한다. 온갖 식물에 더해 골프장 잔디까지 관심을 가졌던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골프장 잔디관리 방법을 고민해달라고 주문하면서 세워졌다. 인원은 5명으로 소규모지만 병리 전문가인 김 소장을 비롯해 잔디관리 컨설팅(이형석 프로), 토양·수질(장공만 프로), 농약(홍범석 프로), 해충방제(박유정 프로) 등 잔디 생육과 관련한 전문가들이 모였다.

삼성물산 리조트부문 잔디환경연구소 연구원들이 드론과 각종 장비를 활용해 골프장 품질을 점건하는 모습(왼쪽)과 김경덕 연구소장이 각 잔디별 생육을 점검하는 모습. /사진제공=삼성물산삼성물산 리조트부문 잔디환경연구소 연구원들이 드론과 각종 장비를 활용해 골프장 품질을 점건하는 모습(왼쪽)과 김경덕 연구소장이 각 잔디별 생육을 점검하는 모습. /사진제공=삼성물산
30여년간 쌓은 성과도 화려하다. 안양중지·그린에버 등 양잔디를 대체할 수 있는 한국형 신품종 개발 뿐 아니라 △코스품질평가 시스템(2004년) △잔디예보시스템 (2011년) △드론 활용 작물생육 모니터링 시스템(2018년) 등을 개발하며 국내 골프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렸다는 평가다. 안양CC와 가평·안성·동래·글렌로스GC 등 삼성물산이 운영하는 5개의 골프장이 골퍼들이 사랑하는 명문으로 거듭난 이유다.


김 소장은 "우리 골프장 뿐 아니라 30여개 외부 골프장까지 맡아 잔디 등 골프장 코스 전반의 품질을 평가하고 컨설팅해왔다"며 "미국의 경우 옥수수 다음으로 큰 농장산업이 잔디인데 우리가 만든 잔디의 병해·건조 피해를 알려주는 잔디예보시스템이나 그린·티·페어웨이 마다 잔디품질을 평가하는 시스템은 없다"고 강조했다.

골프→축구→식물종합병원 확장 구상
축구장 잔디 관리를 하는 모습. /사진제공=삼성물산축구장 잔디 관리를 하는 모습. /사진제공=삼성물산
골프잔디에 천착했던 연구소가 축구장으로 눈을 돌린 건 2018년이다. 국내에서도 잔디 관련 산업이 조금씩 성장곡선을 그리고, 30년간 쌓아온 잔디 전문역량을 필요로 하는 분야가 많다는 점에서 '골프장 잔디 관리'에서 '식물종합병원'으로 영역 확장을 결정한 시점이다. 삼성물산도 골프코스관리 그룹장을 임원급으로 대우하는 등 연구소를 중요한 부서로 관리하고 있다.

김 소장은 "2018년 서울월드컵경기장에 컨설팅을 제안했고, 1년 뒤 첫 작업을 진행했는데 성과가 좋아 K리그 전체를 맡게 됐다"며 "축구장은 돔형태가 많아 환기도 안되고 축구선수들이 격렬하게 뛰며 답압(밟는 압력)도 큰데다 각종 콘서트·축제 등 행사에도 이용되다 보니 잔디가 자리잡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런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플랜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이달 말부터 제주를 시작으로 전국 출장을 다니며 각 구장별 지반 및 잔디상태 등을 점검하고 최적의 솔루션(해결방안)을 제공할 계획이다. 김 소장은 "잔디에 대한 전문성이나 장비·투자가 부족하다보니 잔디 관리자들이 어려움이 상당한 만큼 체계적인 시스템을 제시해 문제를 최소화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며 "향후 잔디를 활용하는 야구장 컨설팅 뿐 아니라 다양한 나무들 식물 전반을 관리하는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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