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케이팝 팬덤은 왜 우크라이나에 침묵인가

머니투데이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 2022.03.03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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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식(대중문화 평론가)김헌식(대중문화 평론가)


"언론사는 2019년부터 지금까지 젤렌스키가 우크라이나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알고 있나? 젤렌스키를 지지하고 투표한 우크라이나 국민 72%가 바보라고 생각하는가."

이 말은 '대한외국인'으로 불리는 우크라이나 모델 올레나가 한 방송사의 보도에 관해 SNS에 올린 글 일부다.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의 참상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무능력 때문이라는 관점은 이 방송사만이 아니었다. 심지어 코미디언 출신이라며 전쟁의 발발이 그 때문이라는 지적이 횡행했다. 코미디언 경력의 사람은 대통령이 될 수 없는지 의문이었음에도 말이다. 이런 기준이라면 대통령이 될 사람은 따로 있는 셈인데 민주 공화정의 원칙에 어긋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마음을 얼마나 대변하는가다. 러시아의 속전속결 계획에 차질을 빚게 한 것은 우크라이나 국민의 필사적 연대적 저항이며 아프가니스탄과 달리 끝까지 수도에 남은 대통령은 저항의 상징이 됐다. KGB 정보기관 출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을 코미디언 출신 풋내기로 간주했다. 이러한 인식과 태도가 러시아를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뜨렸다. 우리도 그렇게 되면 곤란해진다.



미얀마의 반(反)쿠데타 시위에서 '저항의 상징'으로 떠오른 19세 '치알 신'은 한국어로 미얀마를 구해달라는 글을 SNS에 올렸다. 페이스북 계정 프로필에 '미얀마를 위한 정의'라는 한글문구도 게시한 치알 신은 한류 팬이었으며 태권소녀로 야다니본대학교 태권도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총격을 피해 엎드린 모습이세계에 알려졌지만 총탄에 결국 치알 신은 머리를 맞았고 시신탈취까지 당했다. 치알 신 외에도 많은 케이 팝 한류 팬이 미얀마의 현실을 알리고 한국에 도움도 요청했다. 한류는 우크라이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단적인 상징이 키예프 지하철역의 방탄소년단(BTS) 제이 홉 광고였다. 2월18일 그의 생일 2주 전부터 게시됐지만 불과 며칠 뒤인 24일 제이 홉의 사진이 걸린 지하철은 거대한 방공호가 됐다. 이 한류 팬은 BTS 제이 홉의 사진을 배경으로 구겨지듯 대피한 우크라이나인들의 두려운 현실을 알렸다. 제이 홉의 이름이 희망을 뜻하기에 어떤 소망이 담겼는지 알 수 있었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한국은 우크라이나가 본받아야 할 모범적인 국가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룬 나라로 높이 평가했으니 사실상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한국의 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서는 민주주의자들이 코미디언 출신 대통령이라고 비하하거나 책임을 오히려 물으려 했다. 그런데 이런 점이 이들에게 한정된 것일까. 2020년 봄 미국의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이 케이팝 팬 사이를 휩쓸다시피 했다. 유수의 세계적 언론들이 차별과 배제를 넘어선 공정과 정의를 외치는 케이팝 팬들에게 주목했다. 하지만 미얀마 민주화 시위나 우크라이나 침공에 케이팝 팬덤의 관심은 상대적으로 저조하며 이를 다루는 언론들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점은 케이팝 민주주의 담론이 어느 곳에 선택적으로 집중했는지 추정하게 한다.



케이팝 팬덤과 저널리즘이 어느 자리에 있는 것일까. 영국이나 미국, 프랑스에서 우크라이나 같은 사태가 일어났다면 어떤 움직임이 일어날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의 침공으로 같은 민족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상처를 안게 됐다. 더는 그 상처가 심화하지 않도록 케이팝 팬덤이 나설 수 있는 사례는 2013년부터 한류잡지 '언니'를 발간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출신 청년들이다. 케이팝 컬처를 좋아하는 그들이 제국주의나 독재의 나라를 꿈꾸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케이팝이 세계민주주의에 이바지하는가. 케이콘텐츠가 성찰해야 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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