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수출통제 예외, 韓 빠진 진짜 이유..."日·英과는 달라서"

머니투데이 세종=민동훈 기자 2022.03.02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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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로이터=뉴스1) 우동명 기자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2일 (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됐다고 규정하고 러시아를 향한 첫 제재를 발표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C) 로이터=뉴스1  (워싱턴 로이터=뉴스1) 우동명 기자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2일 (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됐다고 규정하고 러시아를 향한 첫 제재를 발표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C) 로이터=뉴스1


우리나라가 미국의 대 러시아 수출통제 조치인 FDPR(해외직접제품규칙)의 예외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 애초에 미국의 핵심 동맹국을 중심으로 한 사전 협의 상대국에 포함되지 못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제기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수출제도의 차이 때문에 FDPR 적용을 위해선 별도의 협상이 필요한데, 미국에게서 처음부터 사전 협의 요청을 못 받았단 얘기다. 이 경우 우리 정부가 러시아에 대한 독자제재를 빠르게 결정했더라도 FDPR의 예외로 인정받긴 어려웠을 수 있다.



이미 한국 정부가 미국의 대 러시아 제재와 유사한 수준으로 제재에 동참키로 한 만큼 현 시점에선 FDPR 예외 적용 협상을 통해 산업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국가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2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24일 자국 기업에 대한 전략물자 수출 통제와 제3국에 대한 FDPR 적용 등을 골자로 하는 러시아에 대한 수출규제를 발표했다. 미국에서 러시아로 가는 물자는 미국 스스로 통제하고, 미국산 기술과 SW(소프트웨어)가 사용된 다른 나라 제품·부품에 대한 러시아 반입도 미국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수출통제리스트(CLL)에 등재된 전자(반도체), 컴퓨터, 정보통신신기술, 센서·레이저, 해양, 항법·항공전자, 항공우주 등 7개 분야 57개 하위 기술 항목 제품이 규제 대상이다. 유럽연합(EU) 27개국과 일본·호주·영국·캐나다·뉴질랜드 등 32개국은 미국에 준하는 독자제재에 나서기로 한 만큼 FDPR 조치 적용을 예외했다. 원론적으로 FDPR 조치 예외 국가의 기업의 경우 러시아에 제품을 수출하기 전 자국 정부의 허가만 받으면 수출이 가능하다.

(서울=뉴스1) 이광호 기자 =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24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가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관련 브리핑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무력 침공을 억제하고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경제 제재를 포함한 국제사회 노력에 지지를 보내며 이에 동참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하고 있다.2022.2.24/뉴스1  (서울=뉴스1) 이광호 기자 =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24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가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관련 브리핑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무력 침공을 억제하고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경제 제재를 포함한 국제사회 노력에 지지를 보내며 이에 동참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하고 있다.2022.2.24/뉴스1
당시 한국은 러시아 제재 동참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던 상황이었기에 FDPR 조치 예외국가에 포함되지 않았다. 액면 그대로 해석하자면 한국 기업이 러시아 수출을 허가를 받으려면 한국 정부가 아닌 미 상무부를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때문에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가 미국을 중심으로 한 EU 등 동맹국 공조의 시험대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대 러시아 제재 동참이 늦어진 탓에 기업들의 불확실성만 높아졌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정부는 미국이 FDPR 조치를 발표하면서 곧바로 한국을 예외국가로 지정하는 것은 불가능했다는 입장이다. 애초에 FDPR 조치를 한국이 즉각 실행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앞서 미국이 중국 화웨이에 적용했던 FDPR 조치에서도 한국은 처음부터 예외 적용을 받지는 못했다. 미국은 추후 FDPR 예외국가 리스트를 추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번에 미국이 발표한 FDPR 조치는 과거 중국 화웨이 등 특정기업을 상대로 시행했던 FDPR과도 일부 성격과 내용이 다르다"면서 "이번에 새롭게 마련된 러시아 FDPR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의 무역, 수출규제 제도와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어 곧바로 FDPR에 연동할 수 없는 기술적인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문제를 동맹외교의 실패 사례 가운데 하나로 보는 시각도 있다. 미국이 대 러시아 제재에 나서기 전 핵심 동맹국인 파이브아이즈(미국·호주·영국·캐나다·뉴질랜드)나 일본 등과는 사전협의를 통해 제도적 문제를 풀었을텐데, 유독 한국과는 그런 협의가 없었다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문종철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우크라이나 사태 초기부터 미국이 러시아 제재 가능성을 시사했던 만큼 정부가 발빠르게 대응했다면 (다른 핵심 동맹국들처럼) FDPR 예외국가로 인정받았을 수도 있다"면서 "결과적으로 미국이 FDPR 등 수출규제를 서두르면서 한국을 예외국가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 러시아 제재 동참을 압박하는 메시지로 읽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이 FDPR 적용의 예외를 받지 못했다고 해서 동맹이 훼손됐다고 보긴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이시욱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FDPR 예외 국가에서 한국을 배제한 결정이 미국 입장에서 큰 실익이 있는 건 아니다"면서 "절차적 이유로 늦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이 때문에 한국이 동맹을 훼손했다고 미국정부가 판단할 정도로 위중한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FDPR 예외 국가로 지정됐다고 러시아 수출길이 열리는 건 아니라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FDPR 예외를 받기 위해선 미국과 유사한 수준의 대 러시아 제재 조치를 취해야 해서다. 그럼에도 정부가 FDPR 협상에 나서는 이유는 FDPR 예외 국가에 포함될 경우 수출허가를 미국 상무부가 아닌 자국 정부로부터 받아도 되는 만큼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뉴스1) =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무역센터에서 '러-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긴급 수출입업계 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2022.2.28/뉴스1  (서울=뉴스1) =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무역센터에서 '러-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긴급 수출입업계 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2022.2.28/뉴스1
현재 정부는 FDPR 예외를 적용받아 수동적으로 수출 규제를 당하는 것보다 한국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게 이익이라고 보고 있다. 그래야 수출 통제에 동참하는 등 국제 공조를 통해 미국과 최대한 유사한 수준에서 기업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미국 입장에서도 대 러시아 제재 전선을 넓혀야 하기에 다수의 국가들이 제재에 동참할 수 있도록 FDPR 예외 적용의 문을 열어두고 협상에 나설 수 밖에 없다"며 "개별 기업들이 미국 상무부에 수출규제 면제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생길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정부는 사태 해결을 위해 미 행정부와의 전방위 협상에 나섰다. 박성택 산업부 무역안보정책관은 전날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과 화상으로 국장급 실무회의를 진행했다. 미국의 러시아 수출통제 제재 조치 시행에 앞서 FDPR 예외 적용 등 국내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이날 실무회의에서도 FDPR을 비롯해 대 러시아 제재에 대한 폭넓은 논의가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논의를 토대로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이 3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대 러시아 수출통제 담당부처인 상무부와 백악관 고위 관계자들과 연이어 만나 미국 측과 FDPR 적용 예외를 인정받기 위한 협의를 집중적으로 전개할 예정이다. 앞서 이억원 기획재정부 1차관도 미국에서 고위급 접촉을 진행 중이다.

통상교섭본부 관계자는 "결과를 속단할 수는 없지만 다양한 채널로 미국 정부와 소통하고 있다"면서 "기업의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미국의 협조를 끌어내는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미 상무부가 이르면 3일 FDPR 등을 포함한 대러시아 수출통제 조치를 연방 관보에 고시할 것으로 보고 있다. 관보에 게시된 이후 유예기간까지 고려하면 발효까지 1~2주 정도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 기간 동안 불충분한 정보로 기업들이 겪는 혼선을 줄이는 것이 중요한 상황이다. 이에 정부는 산업부 산하 전략물자관리원 '러시아 데스크'를 통해 기업들의 FDPR 적용 여부에 대한 자문을 지원키로 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향후 제재 품목이 구체화되고 영향을 받는 기업의 범위가 명확해지면 지원방안도 구체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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